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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Jan 23. 2022

출장의 즐거움

직장 생활 소고

비행기를 타는 것은 언제나 즐거웠다. 심지어 그게 일일 때도 그랬다.

결혼을 하고 한국에 정착하고 나서는 한동안 비행기를 탈 일이 거의 없었다.

비행기 표 값이 한 두 푼인가.


일로 비행기를 다시 타게 된 선 지금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이다.

지금은 HR 업무만 하지만, 초반 1년 간은 해외 계약사를 관리하는 팀의 업무를 가끔 했었다.

해당 팀은 1명이 결원인 상태였다. 나는 고양이 손이 되어 가끔 한국에 방문한 해외 계약 업체 사람들과 만났으며, 아주 가끔 출장을 갔다.


가장 인상이 깊었던 곳은 레바논이었다.

시내 한 복판에 한 무리의 무장한 군인들을 보고 신기했고, 군데군데 무너진 건물과, 벽에 남아있는 총탄 흔적에 마음이 불편했다.

한 때 중동의 파리라고 불렸다는 곳이라던데, 해안 절벽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그 별칭답게 아름답고 평화로웠지만, 전쟁의 흔적은 곳곳에 남아있었다.

친절하게 우리를 안내해준 회사 직원분은 4남매 중에 어머니와 자기만 살아남았다고 했다. 그는 아픈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레스토랑에서 바라본 지중해

제이타 석회암 동굴도 기억에 남는다. 사진을 못 찍게 되어 있었는데, 몰래 휴대폰을 꺼내 들고 사실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많았다. 안에서 누가 지키고 서서 체크하는 게 아니니, 사진을 찍는다고 제재를 가할 사람도 없었다. 세계 7대 자연경관이라던데..., 우리나라 단양 등지에 있는 석회동굴도 카메라 빛 때문에 종유석에 초록 이끼가 자라 뒤덮인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는데, 여기도 그렇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중생대 쥐라기에 형성되었다는 석회 동굴은 그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꼬마 기차를 타고 이동한 후에도 동굴 내부에서 작은 모터보트를 탔다. 

어차피 사진으로 찍어도 그 모습을 담지 못할 것 같아 사진은 찍지 않았다. 나중에 회사 분이 동굴의 전경이 담긴 대형 포스터를 하나씩 줬는데 그걸로 만족했다.

http://jeitagrotto.com/

제이타 동굴 기념품 가게로 기억한다. 유리병에 색색이 모래를 넣어 젓가락으로 푹푹 찍어 사막의 풍경을 그림으로 만들었다.

달팽이처럼 빙빙 돌아서 올라갔던 성모 마리아 상도 기억에 남는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낯선 곳에서 새로운 풍경을 보는 건 왜 이리도 가슴이 설레는지 모르겠다.

레바논은 우리가 계약사에 기술 이전을 해야 하는 것이 있어 프로그래머 분 같이 갔었다.

출장이 일이 아닌 사람들이라 그랬는지, 사장님 포함 3명은 회의가 끝나고 나면 부리나케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사장님도 대단하셨던 것이 그 나이에도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하셨다.

물담배도 사장님이 피워보자고 해서 피운거다. (물담배 물고 찍은 사진이 없어 아쉽다.)

사장님은 상대방 대표와도 통역 필요 없이 바로 어로 대화를 나누셨다. 래도 영어를 좋아했지만 아침마다 10분씩 꾸준히 전화 영어를  덕분인 것같다. 사장직을 물러나신 뒤에는 아내 분과 같이 아프리카 봉사활동을 가신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어찌 지내시는 가 모르겠다

좌측 상단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성모 마리아 상, 저녁 7시쯤 시작해서 10시까지 밥을 먹었던 식당, 야시장

HR 일로는 다른 나라로 출장을 갈 일은 요원해 보인다. 20대에 그리 많이도 돌아다녔건만, 아직도 아쉽다. 더 많이 돌아다니고 더 많이 즐길 것을. 괜시리 역마가 꼈다고 하는게 아니다.


60이 넘어 은퇴를 하게 되면 고등학교 베프와 또 다른 베프가 있는 밴쿠버에 가서 한 달을 살기로 했는데, 그때까지 아쉬운 마음을 사진으로 달래본다.


내 원껏 다시 외국에 갈 수 있다면, 나는 뉴욕의 센트럴 파크, 샌프란시스코의 피셔맨 베이, 홍콩의 야시장을 다시 가보고 싶다. 2000년대의 홍콩과 지금의 홍콩이 어떻게 달라졌을 지도 궁금하다.

센트럴 파크에서 양복 차림에 스니커즈를 신고 백팩을 메고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신기해했었던 기억, 피셔맨 베이의 어마어마하게 큰 갈매기들과 덩치 만큼이나 컸던 갈매기 똥을 머리에 맞고 공중 화장실에서 머리를 다시 감았던 기억이 난다. 당시 같이 갔었던 동기는 갈매기 똥을 자기 손으로 닦아내며 내 머리를 씻겨줬었다.


남는 건 사진이라고 사진을 보면 그때 추억이 새록새록하다. 풍경 사진 좀 많이 찍을 껄. 아쉽고 그립다.


아, 비행기 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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