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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Mar 13. 2022

    If they go low, we go high

직장생활 소고

똥 밟았다.

전임자가 당월 급여 파일만 덜렁 건네고 그만뒀다.

연말정산이 끝난 게 다행이지.

덜컥 업무를 맡았다. 구명줄을 붙잡는 심정으로, 연말정산 알바를 하던 아주머니에게 매달렸다.

다행히도 아주머니는 2달을 더 일하기로 했고, 나는 속성으로 급여를 배웠다.

이 분도 급여를 잘 아는 분은 아니었다. 젊은 시절 대기업 영업관리팀에서 전표처리를 했고, 이후 창업을 하느라 그만두셨는데, 급여는 그때 학으로 배웠다고 한다.

일하면서 짬짬이 설명을 듣고, 의문 나는 점은 더죤 홈페이지 Q&A를 보면서 비슷한 질문을 찾았다. 그 두 달 동안 새벽이 아닌 때 잠을 자 본 적이 거의 없었다.


부끄러운 이야기긴 하지만, 나는 문서 프로그램을 대학 때 이후로 써본 적이 없었다. 엑셀은 대학 때도 써본 적이 없었다. (97학번이다.)

급여와 더 프로그램을 익히는 것만 문제가 되는 상황이 아니었다.

어디 가서 배울 시간도 없었다. 엑셀 책을 몇 권 사서 정주행 했다.

- 지금은 남편보다 엑셀을 잘한다고 자부한다.


처음으로 급여를 혼자 한 날,

4대 보험 공제액을 기껏 맞춰놓고 프로그램을 돌리면, 번번이 총액이 틀어졌다.

분명히 공제부터 맞추라고 했는데?

이유를 몰라, 수도 없이 입력을 반복했다. 밤 10시가 넘었다. 밤을 새워서라도 오늘 맞춰야 한다. 오늘을 넘기면 급여일을 못 맞춘다. 가슴이 타들어갔다.


팀장에게 전화를 했다. 인근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팀장이 들어왔다.

- 다행히도 팀장은 이전에 급여를 해본 적이 있다.

보더니, "지급을 먼저 입력해야 공제가 되는데?"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4대 보험은 보수월액에 일정 비율을 곱해서 공제한다. 당연히 지급을 먼저 넣어야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자동으로 계산이 되는 걸 모르고 수기로 전 직원의 공제 값을 입력했다.

그 후로는 일사천리였다. 두어 시간이면 끝났을 일을 이 고생을 하다니.

25일에 무사히 급여가 나가고 몸살이 와서 몇일을 앓았다.


다들 각자의 사정이 있다.

고의적으로 회사 자료를 날리는 행위는 '배임'에 해당한다.

그 직원은 어차피, 업무를 맡을 사람이 나 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런 일로 회사가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을 것이란 것도 알고 있었다.

'엿 먹어라.' 

이 마음일 것이라 120% 확신한다.


당시 그 직원은 대리 직급이었고, 나는 잠깐 일했던 직장(비서직)에서 직급이 '과장'이라 '과장'으로 입사를 했다. 과장 초임이라 말년 대리보다 급여가 더 높았다.

'다른 분야에 있던 사람을 '가능성'만 보고 뽑는다는 게 말이 돼?' 

'난 이 일만 7년 했다고?'

-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다고 나에게 주어진 기회를 포기할 수도 없지 않은가?

난 찬밥 더운밥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게다가 이 자리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더운밥이었다.


사장님이 대 놓고 편애를 했던 것도 문제였다. 당시는 사범대를 나와서 선생님이 아닌 다른 일을 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분은 내 대학 선배로 심지어 같은 사범대였다.

사장님은 헤드헌팅 기반으로 HR컨설팅을 같이 하는 회사의 대표를 겸하셨.

회사에는 "채용"을 전담하는 사람이 없다고, "채용" 담당을 뽑고 싶어 하셨다.

한 시간이 넘는 면접 끝에, 사람을 대하는 업무가 잘 맞아 보이니 채용이나 홍보 쪽을 해보자고 하셨다.

"채용"이 주 업무니 소속은 당연히 HR.


억울해 보이는 사건도 각자의 사정이 있다.

그 직원은 나를 괴롭혔던 다른 팀원들에 비해서는 양반 축에 속했다.

이분은 그만하다.

그 정도면 회사를 그만두는 게 맞을 텐데, 나도 그만두지 못할 사정이 있었다.


If they go low, I go high

미셸 오바마는 트럼프의 비난에 이렇게 했다.

우리말에는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가 있다.

Go low 하기 싫은 이유는 상대방과 똑같은 ''이 되기 싫어서다.


똥이 되지 않으려면?

실력이 있어야 한다. 내가 내 자리에 합당한 경력이나 자격을 갖춘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회사에 대한 원망과, 나에 대한 개인적인 반감이 섞여서 그랬겠지.

회사 사정이 어려웠다. 퇴사자 비율이 연간 24%에 달했던, 여러모로 불안정한 회사라 더했. 보이지 않는 밥그릇 싸움이 치열했다.


차라리 나도 친해지려는 노력을 안 했다면 나았을 텐데, 잘해보고 싶은 마음에 한 달을 넘게 부원들에게 아침마다 커피를 돌리는 부질없는 짓을 했다.

그 직원은 안 마시는 방법으로 나를 피했고, 다른 동료들은 앞에서는 커피를 가져가고 뒤로는 나에 대한 비방을 했다. 비방의 종류는 다양했다. 굳이 말하지 않는 걸로. 내가 승무원 출신이었다는 것이 그들의 가장 좋은 먹잇감이었다는 것으로 알아서 짐작해보시길.


Go high 할만한가?

미셸 오바마가 Go high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믿음에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Go high 할만하지 못했다. 내가 미셸 오바마처럼 위대한 가치를 위해서 싸우는 것은 아니었다. 동료들과 점심에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고 싶었다. 그들은 나와 밥을 먹지 않았다.


내 안의 인정 욕구가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자기 확신' 있었다면 나도 그렇게까지 잘하려고 애쓰지 않았을 텐데. 잘해봤자임을 알았지만, 잘해보고 싶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

팀장은 나중에 당시 괴롭힘을 묵과하지 않으면 자기가 따돌림을 받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그게 사과였을 수도 있다. 그 사람들이 다 나가고 둘만 남았으니 잘해보자는 의미였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나는 분명 더 잘됐다.

대학 때 합격이 확실하지도 않은 시험을 붙잡고 있던 동기에게, "난 미래를 위해 오늘을 저당 잡히고 싶지 않다."라고 말했던 주제에, 일하고 아이 키우면서 공부한 걸 보면, 나도 그때 당한 걸 못 잊는 거다.

나는 마음을 다스리기보다는 독해지기를 선택하는 사람이었다.


파일 하나 주고 그만뒀던 직원은 옮긴 곳에서 적응을 못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퇴사를 했다고 들었다. 문제만 생기면 내가 하지도 않은 일을 내가 했다고 말을 맞추던 차장과 과장은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다른 계열사로 도망쳤다. 차장은 그 회사가 더 큰 회사에 인수 합병되면서 그만뒀고, 과장은 지금 그 회사가 렵다.


들 덕에 업무일지를 강박적으로 기록하는 습관이 생겼다. 내가 하지 않았다는 것을 남기기 위한 기록었다. 덕분에 좋은 습관이 생겼다.

사람에 대한 기대도 많이 접었다. 여전히 친절하다는 말을 곧잘 듣지만, 나도 안다. 이전과 다르다. 가족들에게는 더 잘하려고 한다.


지금 나는 go high 할 수 있는가?

내 답변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전보다 남에게 덜 기대하고, 자신을 더 아낀다.

난 go low하지 않을 거야. 너랑은 다르니까.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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