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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Jun 09. 2022

세상은 응당 그러해야 한다.

직장 생활 소고

우리 회사는 왜 이럴까?

신규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아직 TFT도 꾸려지진 않았지만, 일단 회의부터 참석했다. 략 추진일정을 공유했다. 장 내가 이번 달에 할 일은 2가지로 압축이 되었다. 정관변경과 홈페이지 화면 구성.


오키. 일단 이 사업이 정관에 포함됐는지 함 보자. 정관은 어느 부서 소관이더라? 누구는 변호사가 있는 기획부, 누구는 등기부등본을 관리하는 총무부라고 한다. 의견이 다르다. 일단 둘 다 물어본다. 서로 아니라고 한다. 그래 우리 회사가 그러면 그렇지. 총무부에서도 이게 누구 업무인지, 장장 4명을 돌아가며 전화통화를 했다. 마지막에 전화가 연결된 분은, 내년에 정년퇴직을 앞둔 시니어 사원이었는데, 목소리에 짜증이 가득했다. 평화롭게 살고 있는 나에게 왜 그러는 거냐?라는 느낌? 정관변경을 해야 하는지 여부와 방법을 알고 싶다. 회사에 연결된 법무사와 통화를 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분은 그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란다. (도대체 이게 안 쉬운 건 뭐란 말인가?) 검토를 해봐야 하니 사업기획서와 추진일정 등을 보내라고 하셨다. 내가 원한 건 단 한 가지. "그냥 나에게 회사와 거래하는 법무사 연락처를 알려주세요."였다. 5분 통화면 해결될 일을 왜 이렇게 하는 거지? 또다시 생기는 의문. 같이 일하는 선배랑 전화통화를 하다가, "이러다 일은 시작하기도 전에 지치겠어요."라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누가 그랬다. 우리 회사에서 회사 생활 잘하는 방법은 시키는 일 하고 자기 삶에 집중하는 거라고. 어쩌리. 성격이 팔자인데. 덜 지루한 일을 할 수 있는 게 어디냐! 다시 마음을 다진다.


다시 전화를 돌려가며 쪼아야지?라고 다짐하고 있던 중, 둘째가 다쳤다는 말에 부랴부랴 집으로 갔다.

그날 저녁, 변호사가 속해있는 기획부에서 의견서를 보내왔다. 몇 페이지에 걸친 보고서 결론은 1회성 프로젝트건 장기로 가는 것이건 정관 변경이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그래 애썼네. 이제 변경절차 알아보러 다시 전화를 돌리면 되겠군.


나는 왜 이럴까?

그래 내가 또 조급했구나. 시간이 걸릴 뿐, 다들 알아서 하는데, 뭘 그리 전화를 여러 군데를 돌리게 하냐며, 혼자 씩씩 댔나.


결국 내 뜻대로 하고 싶어서다. 온갖 불만이 거기서 생긴다. 좋게 이야기하면 손이 빠르고 나쁘게 이야기하면, 미적거리는 꼴을 못 본다. 이걸 치워야 다른 걸 할 수 있는데, 잔여물처럼 과제가 남아있는 게 싫다.


하고 싶은 게 많아서 일 수도 있다. 아마도 내 머릿속에는 이런 말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을 것이다. '이걸 언제까지 붙잡고 있을 거야? 다른 일로 넘어가야지.' 남과 하는 일은 얽힌 사람의 숫자만큼 변수가 있더라. 적절히 버퍼를 두고 해야 안 지친다. 알면서도 계획을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최적의 상황에 맞추어 짠다. 그 일정이 버퍼를 30% 둔 거라 착각한다. 그래서 늘 시간이 부족하다.


명상을 못하는 이유도 간단하다. 5분, 10분이라도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다른 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주변에 아무런 방해물이 없는 시간은 나에게는 아침이 유일하다. 그 시간에 나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운동을 하고 싶다. 어찌 보면 이기적인 건데, 아이들이 이뻐 죽겠어도, 3분, 5분 단위로 말을 걸고 집중력이 흩어지는 상황은 힘들다.


차라리 뭘 안 하고 있으면 될 텐데, 그것도 내가 바라는 상황은 아니다. 저녁은 포기한다 해도, 아침 시간만으로 부족할 때도 많기 때문이다. 결국 잠을 줄여야 하는 건가? 수면이 부족하면 치매 걸리기 쉽다던데? 진퇴양난.

<출처:Pixabay>

26세대 다국적 기업 임원으로 승진 가도를 달리다가, 스님으로 입적해서 17년을 태국에서 숲 속 스님으로 살고 속세에 나온 분이 있다. 루게릭 병을 진단받고 돌아가시기 전에 자전적인 에세이를 책으로 남기셨다. 제목이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이다. 이 어찌 겸허한 말인가.


절에서 재무관리 업무를 맡게 되면서, 속세에서 CFO였던 경력을 십분 발휘하여, 효율적으로 예산을 관리하느라 스트레스를 받았던 그에게 주지 스님이 이렇게 이야기를 하셨다.


“나티코, 나티코. 혼돈은 자네를 뒤흔들지 모르지만 질서는 자네를 죽일 수 있다네.”

그렇습니다. 저는 또다시 주먹을 너무 세게 쥐었던 것입니다. 세상이 마땅히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다 안다고 상상한 것이지요. 그런데 세상의 모습이 제 생각과 맞지 않자 울컥한 것입니다. ‘세상이 이렇게 했어야 한다’는 생각은 늘 저를 작고 어리석고 외롭게 만듭니다.

- <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지은이/ 토마스 산체스 그림 / 박미경 옮김 > 중에서


어차피 내 뜻대로 안 되는 걸, 뭘 그리 붙잡고 안달복달하는지 나도 참,

내려놔야지 x 10번 외치기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x 10번 외치기


결국 마음 여유라는 것도 내 마음먹기 달린 것인데, 조금 천천히 가보자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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