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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Jun 24. 2022

웅대한 자아를 가진 사람을 조심하자.

사람 사는 이야기

https://youtu.be/rWyIE9WwP4Q

#유별 났던 그 아이

사촌동생은 강원도에서 서울에서 공부하겠다는 포부를 품고 초등학교 6학년 때 전학을 왔다. 당시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나이 차이도 한참 나는 그 아이에게 그리 휘둘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모는 마흔 넘어 막내딸을 낳았다. 내리사랑이라지만 이모는 모성으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놀라운 사랑을 보여줬다. 그리고 이모의 맹목적인 사랑은 독이 되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친구랑 길을 걷다 길거리 리어카에서 숫자가 적힌 예쁜 티를 발견했다. 내가 살까 말까 고민하자 친구는 생일선물 겸 티셔츠를 사줬다. 사촌동생은 그 티셔츠를 보자마자 자기가 입겠다고 했고, 나는 생일 선물이니, 같은 티셔츠로 사주겠다고 했다. 당시 이모는 귀한 막내딸이 서울에서 공부하는 게 걱정이 돼서 몇 달씩 와있었는데, 이걸 보자마자,


"넌 동생이 옷 한번 달라는 게 그것도 못주니? 꼴랑 5천 원짜리 가지고!" 이러다니, 내 티셔츠를 뺏어서 동생에게 주었다.


그 아이는 자신의 자아를 위협하는 모든 것은, 그것이 친절일지라도, 친절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피자를 먹을 때 나이프랑 포크 사용하는 게 익숙하지 않아 보여, 손으로 들고 먹으라고 했더니, 그 자리에서 펑펑 울며 엄마랑 거의 30-40분을 통화했던 아이다. 나는 그 아이의 웅대한 자아를 알기에, 그 말도 조심스레 골라가며, 최대한 자연스럽게 하려고 했다만, 그 아이가 느끼기에는 그런 배려가 더 기분이 나빴을지도 모를 일이다.


유튜브에 금쪽이를 보다 사촌 동생이 생각이 났다. 초등학교 6학년이 서울에 상경을 하면서 내뱉었던 포부, "난 서울대 법대와 의대를 동시에 다닐 거야." 안타깝게도 그녀는 그리 스마트한 편도 아니었고, 그녀의 욕심만큼 노력을 하는 타입도 아니었다.


#욕심 많은 사람을 조심하자.

이모는 딸이 욕심을 부리는 게 대단해 보였던 것 같다. 금쪽이 상담소에 패널들과 아이의 아빠도 아이 포부가 세계 최초 '배우'가 올림픽 대회에 나가 '메달'을 따는 것이라고 하는 말에 대단하다. 멋지다는 말을 해댔으니. 우리 사회에서 아이가 욕심과 포부가 크면, 어른들은 아이들의 가능성을 믿고, 응원을 해주는 것 같다.


욕심을 가지라고 하는 이유는 욕심이 크면 그래도 그걸 이루려는 노력을 하게 되고, 노력을 하다 보면 목표한 바에 이르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목표에 다가서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보기에 '노력'을 하는 아이들은 양심적인 아이다. 자기 몸을 희생시키니.


그녀는 자기 가족을 희생시켰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큰 언니 신혼집에 얹혀살았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은 그 세월 동안 학원비며, 화장품비 등 그녀가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돈을 조달했다.


그녀는 자기가 성공하지 못한 이유가 집안이 안 받춰져서라고 이야기한다. 집안 식구들이 다 세뇌가 되었는지, 내가 좋아하는 그녀의 큰 언니 마저, '아이가 집안이 괜찮았더라면 성공했을 텐데.'라고 말을 하길래, 그냥 입 다물고 있었다. 대체 시험에 합격하는 게 집안이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욕심이 많다 > 자기 노력을 한다. - [자기 착취]

                      > 남을 (특히 만만한 가족을) 희생시킨다. - [타인 착취]

욕심대로 안되면 > 남 탓을 한다. - [자기합리화]


순서도를 그리고 싶군. 자기 탓을 하는 것도 나쁘지만 남 탓하는 건 더 나쁘다. - 대체로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사람들이 자기 탓을 하는 경향이 높더라. 그래서 자기 탓이 나쁘다고 하는 것이지, 자기 탓을 해야 개선의 여지도 있다고 믿는다. 성실하지도 않고 책임감도 없는 사람들은 자기 탓은 커녕 남 탓만 한다.


#금쪽이 처방전

오은영 박사는, 아이가 '제일', '최초'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에 주목했다. 남과 다른 특별한 내가 되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런데 '무엇'이 되는 것보다 '어떻게' 살지를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어떻게'는 삶의 가치다. 무엇을 우선순위에 놓을 것인지. 남에게 보이는 삶을 살 것인가? 나에게 충실한 삶을 살 것인가?

'어떻게'에 충실하게 산다면 '무엇'은 (반드시는 아니겠지만) 따라오게 되어있다.


수학시험이 어려웠다고 치자. 내가 남들보다 잘나 보여야 한다면(무엇), 시험을 못 볼까 전전긍긍하게 된다. 그 결과 문제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만약, 충실하게 공부를 했다고 생각한다면(어떻게), 문제가 어렵게 나왔네?라고 생각한다. 나에게만 어려운 게 아니라, 나도 어렵고, 다른 아이들도 어려울 거다. 문제에 집중하자.


'무엇'에 집중한다 하더라도, 그 '무엇'이 다양하면 좋을 텐데,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다양한 '무엇'을 찾기가 어렵다. 그녀에게 '무엇'은 학벌, 외모, 돈 이 3가지였다. 그 셋 중 그녀가 가진 건 외모뿐...

이제 그나마도 나이가 들어간다.


#문제 엄마는 노력 중

문제 아이의 뒤에는 문제 엄마가 있다는 아이에게 요 유튜브 동영상 링크를 보냈다. 우리는 동영상을 서로 나눠보는데, 이 영상에 대해 언급이 없는 걸로 봐서는 안 봤던가? 아니면 살짝 뜨끔했던 것 같다.


문제 아이 뒤에 있는 문제 엄마가 있기 마련이지만,

문제 엄마는 지금 노력 중이다. 같이 노력해보자.

너나 나나 '어떻게' 살아야 할 지는 모르지만, 그거 알지?

동서고금 진리가 하나 있단다.


'네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해라.'

'네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시키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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