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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Jul 08. 2022

너... 내 번호 지웠니? feat. 가스라이터 퇴치법

사람 사는 이야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나야."

"누구세요?"

"너... 내 번호 지웠니? 나야, OO엄마."

"어머! 언니 잘 지냈어요?"

"아니, 셋째 친구 엄마한테 전화를 하려고 했는데, 그 아이도 이름이 **(둘째 이름)이어서, 실수로 이쪽으로 했나 보네. 이사 가고 잘 지내고 있지?"

언니는 한참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역시 대단쓰!!!

번호 지운 게 뻔한데, 한참이나 대화를 이어가다니!

<출처 : Pixabay>

#넘의 집 애를 왜 댁이 돌보시오.

언니는 둘째 1학년 엄마 모임에서 알게 되었다. 생파를 준비하면서 둘째와 생일이 같았던 순딩 순딩한 엄마랑 친해졌다. 이하, 순딩이 엄마. 순딩이 엄마는 그 언니 아들(둘째)을 데리고 자기 집에서 피아노 교습을 시켰다. 언니가 바쁠 때면 언니 아들을 데리고 와서 자기 집에 데리고 있기도 했다. 그게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만나면 만날 수록 그 언니가 조금 이상했다. 순딩이 엄마가 자기 아이를 자기 대신 돌보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한 번은 축구하다가 언니 아들내미가 삐져서 집에 가서 쉰다고 다. - 그 집 아이는 자기가 세상에 주인공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황을 잘 못견뎠다. (그 아이를 돌본 경험담이다.)

순딩이 엄마는 아이에게 "집에 누구 있어?" 물어본 뒤 아이가 누가 있다고 하자 쇼핑몰에 옷을 바꾸러 갔다.

 

언니는 자기가 아는 모든 사람에게 순딩이 엄마가 자기 아이를 안 챙기고 쏙 가버렸다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 언니는 5시에 퇴근을 했다.


#난 그냥 옷을 돌려달라 했을 뿐인데...

한 번은 본인 유럽 여행을 가는 데 걸칠 카디건이 마땅한 게 없다고 해서, 내 카디건을 빌려줬다. 여행 전날 짐도 못 싸고 정신없다고 하길래 때마침 갈비를 하던 터라 갈비도 싸서 보냈다. 언니는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한참이 지나도 카디건을 주지 않았다. 세탁소에 맡길 시간이 없다고...

세탁 안 해도 되니 그냥 달라고 나는 분명 그렇게 말했는데,


자기 집에 오라고 하더니, 크린토피아 비닐 포장이 되어 있는 카디건을 건네며 하는 말,

"넌 꼭 그걸 세탁해서 받아야 해?"

순간 당황해서 어버버 말을 못 했다. 이어 덧붙이는 말,

"살쪄서 이제 이거 꽉 낄 것 같은데 나 주지 그래?"

아! 그 옷 브랜드가 마음에 들었나 보다. 사실 언니가 옷을 안주길래 그냥 가지라고 할까 잠깐 고민했는데, 일단 받아야겠다.


#많이 이상해

나보다 사람 보는 눈이 10배쯤 좋은 남편이 그 언니가 아들 둘을 데리고 (언니는 아들만 셋이다) 우리 집에 놀러 와서 밥을 먹을 때, 조용히 한 마디 했었다.

"많이 이상해."


어떤 면이 이상한지 물어보자,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대게 남의 집에서 밥을 먹을 때 주는 대로 먹지 저렇게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아. 남편에게 부러운 점이 이거다. 촉이 좋다.  촉이 없다.


#자연스러웠어.

언니는 순딩이 엄마가 1년 가까이해 온 피아노 교습을 그만두기로 하자 순딩이 엄마를 세상 몹쓸 사람으로 만들었다. 다행히도 나는 언니에 비해 바빴기에 언니가 나를 붙잡고 하소연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가끔 놀이터에서 붙잡히긴 했지만...

순딩이 엄마도 이사를 하고 우리도 멀리 이사를 했다. 그리고 나는 언니 번호를 지웠다.


아래 영상에 따르면, 스 라이팅을 당하기 가장 쉬운 유형은 열심히 살고 정직하고 착한 사람이라고 한다.

https://youtu.be/VNxl2v_1How

#열심히 산다.

이룬 것이 많아 빼먹을 게 많다.

다른 데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가스라이터가 수상쩍은 행동을 해도, '설마, 아닐 거야.' 생각하고 쉽게 넘어간다. 가스라이터가 나르시시스트라면 매력적일 가능성이 높다. 초반에 형성된 좋은 이미지가 있어, 그것에 반하는 생각을 하기가 어렵다. 인지부조화가 이리 무섭다.


#정직하다.

자신이 솔직하기에 상대방도 그런 줄 안다.

상대방이 서운하게 행동하면 '대화'로 풀려고 한다.

여기서 말린다. 대화가 안 되는 사람과 대화를 시도해봤자다. 상대방과 '대화'가 되려면, 서로 합의를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 상대방이 원하는 건 '나'를 착취하는 건데, 어떻게 '합의'가 있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심리 조정에 능한 사람들은, 이런 시도는 가볍게 묵살한다. 평생 이렇게 살아온 사람을 이길 재간이 없다.


#착하다.

순딩이 엄마가 그랬다. 그 언니가 너 욕하고 다닌다. 그 집 아이를 네가 키우냐? 넌 이용당하고 있는 거다. 아무리 주변 엄마들이 말을 해도 '그럴 리가 없다.'라고 말하더라. 순딩이 엄마는 결국 상담사를 찾아갔다. 그분이 하셨던 말, "곱게 바르게 잘 커서 그렇다."


김경일 교수님은 권력형 가스라이터는 착한 사람 위선자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착하다는 이유로 더 괴롭힌다. 꿍꿍이가 있어서 잘하는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다 자기 기준으로 세상을 보는 셈이다.


#김경일 교수님이 알려주는 가스라이터에 대처하는 세 가지 방법


1. 그 사람의 연락처를 저장하지 말라

상대방이 전화를 했을 때 "누구세요?"라고 물어본다면 이 사람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고 나에게 더 이상 접근하지 않는다. 자기에게 관심이 있어야 관계가 형성이 된다. 이때 관계는 절대 상호적이지 않다.


2. 넓고 느슨한 관계망을 많이 만들어라.

가스라이터들은 '미니마이징'이라는 수법을 쓴다. 나 이외에 다른 사람에게 눈을 돌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순딩이 엄마들에게는 '너 지금 당하고 있는 거야.'라고 말해주는 다른 엄마가 있었다. 나는 촉이 좋은 남편이 있었다.


3. 취미생활을 즐겨라.

일 밖에 모르는 사람이 타깃이 되기 쉽다. 일 이외 좋아하는 것이 많다면, A에서 힘들 때 B에서 힘을 얻을 수 있다. '일'만 아는 사람은 '일'이외 다른 것이 없어 힘이 들어도 취미생활로 풀어낼 방도가 없다. 취미생활을 즐기다 보면 같이 흥미를 공유하는 넓고 느슨한 관계망도 저절로 생긴다. 가스라이터에게 덜 의존할 수 있게 되고, 자기중심이 잡히게 된다.


한줄요약 : 가스라이터 퇴치법 3가지  
1. 그 사람의 연락처를 저장하지 말라.  
2. 넓고 느슨한 관계망을 많이 만들어라.
3. 취미생활을 즐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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