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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Apr 02. 2021

'아침형 인간'으로 사는 워킹맘의 피곤함에 대한 하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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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오락 : 4시간 자면 합격하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

인용하는 이의 나이 대를 짐작케 하는 사자성어다.

‘라떼는’ 실상 저 말을 제법 쓰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당오락’이 아니더라도 잠만 좀 줄이면 여유 시간이 확 늘어나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요새는 잠을 줄여라~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잠을 충분히 자야 하는 과학적인 이유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다만, 남들 잘 때 방해받지 않는 고요한 나만의 시간을 가지라고 한다.

비단, 베스트셀러인 ‘미라클 모닝’, ‘나의 하루는 4:30에 시작한다.’ 뿐 아니라 많은 책들이 당신은 아침형 인간인지 물어보고, 아침형 인간의 24시간은 어떨지를 이야기한다.

공부를 할 때도 아침에 해야 하고,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10세 이전에 아이를 아침형 인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YES24 '아침형 인간' 검색 결과


아침에 스탠퍼드 후버 맨 교수가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수면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하나 들었다.  내 해석이 틀릴 수도 있으니 궁금한 사람은 아래 원 방송을 확인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FFwA0QFmpQ4&t=2405s


잠을 자는 동안에 긴 웨이브의 뇌파가 나오는 수면(편의상 논 램수면이라 하자)과 짧은 웨이브의 뇌파가 나오는 램수면의 주기가 한 시간 반 간격으로 수차례 반복된다.

주로 수면 초반부에는 긴 웨이브의 수면이, 후반부에는 짧은 웨이브의 수면이 많이 나타난다.

긴 웨이브 수면 동안 뇌는 동작에 관한 것과, 구체적인 정보를 기억한다.

이때는 아세토콜린이 전혀 분비되지 않고, 약간의 노르에피네프린이 분비되며, 많은 양의 세로토닌이 분비되어 이완상태로 들어간다.

램수면에서, 우리는 꿈을 꾼다.

이때, 노르에피네프린 분비가 억제되어 낮에 겪었던 경험을 스트레스 없이 다시 겪는다. 

램수면 동안에는 빠른 안구운동이 일어나는 데, 이는 감정과 사건이 과도하게 결합하는 것을 막고, 편도체에 작용하여 ‘불안’을 억제한다.

트라우마 치료에 쓰이는 케타민은 트라우마를 일으키는 사건에 감정이 결합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멀쩡하게' 만든다. 램수면 동안 일어나는 현상과 같은 원리다.

램수면마음의 자기 치료(Self Induced Theraphy)라 램수면이 부족하면 짜증을 내기 쉽고, 사소한 것도 극적으로 생각하며, 감정조절을 잘 못하게 된다고 한다.

정리하자면, 비 램수면은 정보를 기억하고, 램수면에서는 마음을 치료한다.


※ 내가 이해한 게 맞나 싶어 네이버 등을 검색해봤는데, 명확한 근거는 못 찾겠다. 비 램수면에는 뇌에 노폐물 제거하고 세포 재생을 돕는다. 램수면에서 우리는 꿈을 꾸고, 정보 정리와 기억을 강화한다 정도의 정보를 찾았다. 위에서 언급하진 않았지만 램수면은 해마에 공간정보를 기억하고 정보에 맥락을 부여한다는 말도 있었다.




잠을 충분히 자는 게 중요하지만, 나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다 보니, 아침형 인간이 되고 싶어도, 저녁에 일찍 잠자는 게 어려운 경우가 많다.

아침형 인간이 되려다 몸만 축날 것 같다.

요새는 회사에 늦게까지 남아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지 않지만, 퇴근하고 돌아가면, 뭐 한 것도 없이 10시다. 누가 꼭 내 시간을 훔쳐간 기분…

몹시 억울하다.

10시가 되어 큰 아이 공부를 봐주면 30분 안에 아이 노트필기와 스케쥴러를 보려 했던 당초 계획과 다르게, 시계는 11시를 가리킨다.

마음 같아선 노트필기, 스케쥴러 확인하는데 5분이면 될 것 같은데, 진도 범위에 비해 필기 내용이 어이없이 5줄이면, 아이가 도대체 뭘 필기한 건가? 싶어 자습서라도 한번 보게 되고, 그러다 보면 시간이 또 흘러간다.


내 목표는 11시면 자는 거였는데, 이제 또 엄마는 아이가 원망스럽다.

‘노트 필기한 거 가져오라고 하면 미리 딱 준비했다 그 시간 되면 보여줘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 왜 하라는 걸 제대로 안 해서 이렇게 시간이 걸리게 하는 거야?’

쓰고 보니 부끄럽네.


이건 회사가 아닌가?

엄마=부장님, 아이=사원 1~2년 차?


엄마가 사랑이 아닌 효율성으로 너를 갈궜구나!

우리 엄마는 엄마를 사랑으로 키우고 전혀 닦달하지 않았는데, 엄마는 너를 왜 이리 쪼는 걸까?

믿음이 부족한 걸까? (부족할만한 것 같기도?)

애초에 나의 교육관은 루소 주의자였는데, 나는 그가 ‘에밀’에서 말한 것처럼 자연 벌로 깨우치게 놔두질 못하는 걸까.

왓슨 주의자가 되어가고 있다. 아이는 만들어지는 것이다!!!

스파르타!!!


아마도 내가 우리 엄마보다 시간적인 여유와 경제적인 여유가 있고, 결정적으로 사회에 나가면서 '세상이 정말 녹녹하지가 않음'을 뼈저리게 느껴서 그런 것 같다.

‘내 가정형편이 그리 좋지가 않았음에도 내가 철이 늦게 든 이유는 엄마가 나를 그토록 사랑했기 때문이구나!’

그 사랑에 감사하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현실을 말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한 번에 겪게 하지 말고, 미리 조금씩 겪게 하자.


높은 자존감, 긍정적인 세계관… 좋은 이야기다.

그리고 나도 아이들이 높은 자존감과 긍정적인 세계관을 가졌으면 싶지만,

한편으로는 ‘지금 걷지 않으면, 나중에 뛰게 된다.’도 주지시켜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학 때 동기 중에 고시 공부를 하던 아이들이 있었다.

당시 난 고시 공부는 될지도 안될지도 모르는 미래에 현재를 저당 잡히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난 현재가 중요하니까 많이 놀 거다.’

대학교 1학년 때였으니, 그럴 법도 하지만, 나중에 일하면서 공부를 하는 상황이 되자, 대학 때 내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물론, 걷건 뛰건, 도착 할 결승선을 누구나 다 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나란 인간은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쓰는 인간'이었고, '최소한의 자존감'이 유지되기 위해 '적정 수준의 물질'이 보장되어야 했다.

‘스카이캐슬’에서 로스쿨 교수가 말했던 ‘피라미드’의 중간이라도 가려고 애쓰는 인간이 나다.

그러니, 내 기준에서 삶이란 ‘걷지 않으면 뛰어야 하는 것’이다.

놀라운 건, 나는 내가 그런 인간인걸 30대 중반까지도 몰랐다는 것이다.

(그토록 우리 엄마는 날 사랑했나 보다.)


남들과의 비교 필요 없다. 너는 너 자체로 충분하다. 아름다운 말이다.

그런데, (적어도 나는) 저 마저도 먹고사는 게 어느 정도 해결된 이후에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실로 맞닥뜨려지는 생활의 궁핍함은, 내가 그 가난을 책임질 필요가 없을 때만 해도 나에게 진지한 고민거리가 아니었기에, 그전까지 내가 품었던 낭만적인 생각들은 현실에 기초하지 않은 ‘막연한 생각’이었음을 깨달았다.

믿을만한 누군가가 그리 말했고 그 말이 그럴듯해 보였으니, 응당 그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력서에 특기가 스케쥴링이라고 쓰는 엄마의 눈으로 보기에 우리 아이들은 너무 시간관념이 없어 보인다.

‘넌 그렇게 하릴없이 보내면 시간이 안 아깝냐!’라고 하는 엄마라니!

누가 들으면 우리 아이들이 대학생인 줄 알겠다.

아이는 사랑과 인내로 키우라고 했는데!

그런데 아이들의 느린 시간에 나를 맞추기보다는 나의 빠른 시간을 아이들이 쫓아와줬으면 싶다.

나도 내 시간이 소중하니까.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 아침형 인간이 맞다.

눈 뜨면 세수하고 회사 앞 커피숍에 가서 혼자 빗소리 ASMR을 듣거나, 책을 읽는다.

대단한 책 아니고 그냥 베스트셀러나 로맨스 소설 본다.

그런데 딱히 별거 없는 아메리카노와 함께 하는 그 시간이 너무 소중해서 새벽 5시 반에 일어나도 하루를 안 피곤하게 시작하고 싶다.


오늘따라 머리가 무거워 이런 하소연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아무래도 부족한 수면 탓에 논 램수면 동안 뇌척수액이 노폐물을 못 씻어냈나 보다.

잠을 일찍 자야 할 텐데, 이건 반복되는 도돌이표.


내가 엄마가 되기에는 너무 이기적인 건가 생각해본다.

아니야 그건 아닐 거야.

단지 엄마는 램수면이 부족해서 잠깐 감정 조절이 안 되는 걸 거야.


엄마도 푹 자고 싶다.

그리고 유일한 나만의 시간도 꼭 지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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