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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Jul 27. 2022

로맨스 소설이 좋다.

사람 사는 이야기

오랜만에 들린 리디북스


모처럼 들린 리디북스, 헛 적립금 3만 원이 그대로 있네. 모처럼 여유도 있겠다. 금요일 저녁, 로판(로맨스 판타지) 시리즈 1권을 결재했다가, 멈추지 못하고 월요일 아침까지 5권을 정주행 했다.


로맨스 소설은 선남선녀들이 가득하다. 현실세계에서 못 이룬 로망을 대리충족하고픈 독자들 마음에 부응하듯이, 그들은 이쁘고 잘생겼으며, 못하는 게 없는 능력자다. 여주가 가난하게 컸다던가, 남주가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웠지만 사랑이 부족한 집에서 컸다는 설정을 더하기도 한다. 그마저도 인간미를 더하기 위한 장치일 뿐. 가난하지만 그들은 서로 사랑했다... 가 아니라, 가난은 반드시 극복된다.


완벽하지 않은 남주


이번 로판은 달랐다. 남주는 전쟁 통에 한쪽 다리를 잃고 얼굴 반쪽 화상을 입었다. 회귀물은 '미래'를 살고 온 것을 전제로 한다. 여주 미래 기억을 가지고 있기에 현재 벌어지는 일들을 통제하고 싶어 한다. 불행한 미래는 안녕~! 이번 생은 다를 거야. 난 이렇게 소설이 흐를 줄 알았다.


전쟁 통에 동료를 구하다가 포탄을 맞아 얼굴 반쪽이 화상으로 녹아내리고, 한쪽 다리는 의족을 끼운 남자 주인공, 여주는 그 운명을 바꾸지 못했다. 이번 생은 다르긴 했다. 남주는 장애를 비관하며, 세상에 문을 닫지 않았다. 여주를 새장에 갇힌 새처럼 가둬두려는 마음을 내려놓았다. 여주는 남주의 비틀어진 애착을 이해했다. 전통적인 로맨스 소설 화법에서 살짝 비켜갔지만 두 주인공은 매력적이었고 어쨌든 해피엔딩이다. 사랑은 모든 역경을 이겨냈다.

<출처 : Pixabay>
나는 왜 로맨스 소설을 좋아할까?


환하고 밝은 것을 보면 사고가 정지된다. 그 자체로 이미 충족되었으니까. 고민할 여지가 없다. 로맨스 소설을 읽으면 안심이 된다. 밝은 미래가 보장되니까. 혹여나 일을 그르칠까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된다. 어쨌든 결론은 해피엔딩. 애써 머리 쓰지 않아도 된다. 내가 로맨스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다.


그래, 이 일을 겪는 건 의미가 있을 거야.


나를 생각하게 만드는 것들은 대게, 우울하고, 결함이 있고, 혼탁한 것들이다. 충족되지 않았으니, 갈망하고 고민한다. 인간은 자신이 겪는 고통에 이유를 찾고자 하기에 어진 일에 양념을 쳐 각자의 스토리를 만들고 의미를 부여한다. 나아갈 힘을 얻는다. 그래.  일을 겪는 건 의미가 있을 거야.


소설 '작별인사'에서는 자신이 인간이라 믿었던 고성능 휴머노이드 철이가 나온다. 철이와 같이 휴머노이드 수용소에서 탈출한 인간 선이는 이렇게 말한다. 

“의식이 있는 존재는 돌멩이나 버섯과 달리 자기와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어요. 다른 존재의 고통에도 공감할 수 있고, 우주의 역사나 기원에 대해 알아갈 수도 있어요. 자기에게 고통을 준 존재들을 용서할 수 있고, 그 고통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곰곰이 되새긴 다음, 그런 일이 자신에게든, 아니면 다른 누구에게든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할 수 있어요.”
<출처 : 작별인사, 지은이 김영하>

살아가는 건 쉽지 않지만, 그 안에서 '의미'를 찾기에 삶이 가치 있다.


로맨스 소설로 떠나기

생각할 거 많은 세상, 책임질 일도 많은데 쉬려고 집어 든 책에서 '의미'를 깨우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재미만 있으면 된다. 밝음만 추출해서 누리고 싶달까?  겨울에 동남아로 여행을 떠나는 마음, 로맨스 소설은 도피다.


현실의 우리는 자기만의 스토리를 만들고 의미를 부여하고, 책임을 지고 꾸역꾸역 살아내야 한다. 그러니 손쉬운 도피처, 해피엔딩이 보장된 로맨스 소설에 손을 뻗을 수밖에.

“사랑하는 킨드라, 도로시들은 에메랄드 시티로 가는 길을 스스로 찾아야 해. 현실에서 도로시들은 노란 벽돌 길을 스스로 만들어 낸단다.”
<출처 : 히든 스토리, 지은이 킨드라 홀>

한줄요약 : 로맨스 소설은 도피다. 도피 건 뭐건 잠깐 쉬고 나면, 현실세계로 돌아가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 수 있다. 의미가 삶을 가치 있게 하니까. 잘 쉬고 잘 돌아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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