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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Aug 16. 2022

엄마 갱년기야?

우리 아이 사랑만 있으면 된다.

(둘째) 엄마 갱년기야?

(나) 설마, 이 나이에 벌써?

(둘째) 커피숍에서 형한테 왜 그렇게 화를 냈는데?

(나) 형이 물이 쏟아졌는데 나 몰라라 하니까 그렇지. 누구든 보면 치워야 하는 거 아니야?

(둘째) 그거 내가 쏟은 거야. 치워도 내가 치워야지.

(나) 난 네가 쏟은 건 몰랐지. 쏟아진 것만 봤는데 아무도 치우질 않잖아. 네 형은 매사 무심해. 뭘 챙기는 걸 못 봤어.

(둘째) 그렇긴 하지.


첫째 혼냈다고 졸지에 갱년기냐는 소릴 들었다. 곱씹어보니 이 말도 괘씸하다.


사건은 두바이 공항 커피숍, 게이트 근처 의자는 이미 사람들이 꽉 차 있어 앉을 곳을 찾아 커피숍에 왔다.

어찌 된 건지 음료 하나가 쏟아졌고 (난 그게 첫째 짓이라고 생각했다.) 첫째는 멀뚱멀뚱 쳐다보다 빨대로 음료를 마셨다. 나는 재빨리 휴지로 식탁을 닦다 성질이 났다.


이 녀석은 착하긴 하나 매사 무심하다. 물이 쏟아지던 말던 이지.

여행 중에 두 놈이 같이 방을 썼는데 둘째가 한 번은 화를 냈다.

"형이 아무것도 안 해. 짐도 매번 내가 다 챙겼어. 형이 책임감이 없어."


짐을 챙기라고 했더니 첫째가 자기 몸만 챙겼나 보다. 가방 짐은 둘째가 다 챙겼다. 일부러 안 챙겨주고 놔뒀다. 어찌하나 보려고. 짐을 열어보니 차곡차곡 짐을 쌓아둔 건 아니고 있는 대로 구겨 넣긴 했지만 빼놓지 않고 넣긴 했더라.

<출처 : Pixabay>

친정엄마는 첫째를 왕자님, 둘째를 박사님이라 부른다. 예쁘장한 첫째는 큰 아이라 어려서부터 챙김을 받아 그런지 자기를 챙기는 게 부족하다. 욕심이 별로 없다. 무소유 무소욕. 이래도 흥, 저래도 흥이다.


둘째는 욕망의 화신. 먹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다. 간섭받는 것도 싫어한다. 아이 선생님이 자기 평생 이렇게 주체적인 어린이는 처음 봤다고 한다. 잔소리 듣기 싫으면 알아서 해야 할 텐데 권리의식만 투철하다.


첫째 입장에서 물을 자기가 쏟은 게 아니니 억울할 수는 있겠다. 내가 봤던 첫째는 물이 쏟아지던 말던 '누가 치우겠지?'라는 생각이었는지 무심하게 자기 음료를 드시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화가 났던 것이고.


사고를 친 건 둘째였다고 하니 둘째가 치우는 게 맞다 해도 나 몰라라 무심히 음료에 빨대 꽂고 있는 것도 이해는 안 간다.


이런 게 세대차이인 건가? 남편은 첫째가 자기가 한 게 아니니 자기 일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자기 일 아닌 것에 나도 관심이 없지만 물이 쏟아져 흐르는데 바로 앞에 있는 누구든 치우면 안 되는 건가? 부모가 있어서 부모가 치우겠지 하는 건가?


그 이후로 첫째는 내내 삐졌다. 둘째에게 설명을 듣고 첫째가 한 일이 아니라는 말에 그다음 날 사과를 했다.

속마음은 그렇다. 쏟아진 거 치우는 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그걸 안 하는 건가? 저 시크함도 크면 저절로 해결이 되는 건가? 기본적으로 내 일 아니다. 이건대, 내 일만 잘해도 감지덕지라지만 쿨한 것도 정도껏이어야 쿨해야지. 네가 현실세계에서 왕자님이 아닌 이상 누가 널 쫓아다니며 챙기냐.


농담 삼아 이 녀석, 야무진 여자 만나야 한다고 했는데, 그 야무진 여자도 지칠 것 같다.


한줄 요약 : 잔소리 좀 했기로 갱년기냐는 소릴 들었다. 오해는 있었다지만 매사 시크한 널 어찌하면 좋으리. 크면 철드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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