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내가 요새 자주 들어가는 사이트가 있는데, 거기서 캣맘들 욕해.냥이들이 불쌍하면 데려다 키우지 왜 밖에서 먹이 주느냐고. 똥 싸고 시끄럽다고.
엄마는 어떻게 생각해"
"우리도 이전 살던데 옆집 아파트 아기 냥이 먹을 거 가져다주고 형아네 학교 뒷동산에 살던 냥이들 집도 지어주고 그랬잖아.그렇다고 데려와서 키우진 않았지.
아무리 이뻐도 돌보고 싶어도 사정이 있을 수 있지.네 형은 심하진 않지만 형아처럼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을 수도 있고, 아기 냥이들이면 근처 엄마 냥이가 있을 수도 있어. 냄새가 달라지면 자기 새끼로 인식하지 못한다고 해. 아기 냥이들을 엄마 냥이가 돌보는 게 좋으니까.
게다가 우리 집만 해도 레오 도도가 있잖아. 더 키우는 것도 무리고 자기들끼리 잘 적응할 수 있을지도 봐야지. 레오도 도도 들이고 이틀이나 식사를 안 했잖아.
그러니 그렇게 이쁘면 데려다 키우지 길냥이들 밥만 준다고 위선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거야. 그 사람 사정을 어찌 알아. 다 각자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되는 거야. 전부를 해주지 못했다고 무책임한 것도 아니고.그만큼 하는 게 대단한거지.
엄마 생각에는 길냥이들 중성화 수술시키고 이미 태어난 생명들은 존중받고 살면 좋겠어."
<출처 : Pixabay >
아이들은 이럴 때는 이럴 수도 있고 저럴 때는 저럴 수도 있다는 걸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한 가지 어디서나 통용되는 절대적인 기준이 있다고 생각한다.
'책임을 지려면 끝까지 져야 한다.' 이 말을 예로 들어보자. 말은 좋지만, 누구에게나 각자의 사정은 있고, 길냥이를 꼭 데려와 키워야만 책임을 다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모르는 사정이 있겠지. 내가 모르는 뜻이 있어 그렇겠지. 이렇게 생각해볼 수는 없을까? 나이가 들면, 여러 가지 경우들을 겪게 되니 무조건 A면 B 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B 할 수도 있지만 C나 D가 나을 수도 있다. 여러 경우를 보다 보면 생각이 유연해지고 함부로 판단하지 않게 된다.
각자의 처지에서 할 수 있는 만큼 한다는 것도 대단한거야. 엄마는 캣맘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해.
도와줄 수 있으면 돕고, 도와줄 수 없으면 그 자리를 떠나라. 남의 힘든 모습을 구경거리로 삼거나 더 번거롭게 만들지 마라. 다른 사람의 하늘이 무너질 때 받쳐 줄 수 없다면, 그저 눈 감고 못 본 척하는 게 도와주는 것이다.
생과 사는 하늘의 뜻에 달렸고, 나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도울 수도, 구해 줄 수도 없을 때 상대를 존중하는 최소한의 방법은 눈을 감고 상대의 비참함을 보지 못한 척하는 것이다. 그러니 때로는 관심을 끄도록 하자. 나를 위해, 그리고 상대를 위해.
- < 나라면 나와 결혼할까?, 후이 지음/ 최인애 옮김 > 중에서
아이야. 내가 해줄 수 있는 만큼만 해도 된다. 함부로 판단하지 말자. 우리는 다 알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