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에 가다.
술 마시고 새벽에 들어온 남편이 미안한지 일요일 아침부터 춘천을 가자고 한다. 일전에 단톡방에 돌아다니는 지역 가을 축제 포스터 모음을 보냈는데 그 생각이 났나 보다. <춘천 막국수 닭갈비축제>에 가기로 했다. 그제가 행사 마지막 날이었다. 부랴부랴 비 오는 날 아침에 춘천으로 향했다. 둘째는 갈 것처럼 굴더니, 방구석에서 애니를 보는 게 더 재미있겠다 싶었는지 집에 있겠다고 한다. 부부끼리 오랜만에 드라이브를 했다.
춘천까지 한 시간 반이 채 안 걸렸다. 태풍 소식이 들려서인지 내려가는 길은 시원하게 뚫려있었고, 오히려 반대편 차선에 차들이 빽빽했다.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차창 밖에 산들은 허리에 운무를 두르고 있었다. 뽀얀 물안개가 계곡을 타고 내려온다.
<춘천 막국수 닭갈비축제> 행사장에 도착했다.
휑했다. 포클레인인지 뭔지, 행사 부츠를 치우고 있었다. 어이가 없어서 입구에서 사진을 하나 찍었다. 공식 홈페이지에 오늘 행사 안 한다는 말도 없었구먼.
남편은 한술 더 떠, 일반 사기업이었으면, 일단 홈페이지, 인스타에 알리고, 미처 소식을 몰라 들린 방문객들에게 '닭갈비 쿠폰'이라도 줬을 거라 한마디 한다. 남편은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있으면 안된다며 행사 공식 인스타에 들어가, 오늘 문 닫았다는 댓글을 하나 남기고 왔다. - 솔직히 이 날씨에 축제 보러 오는 사람이 있을 것 같진 않지만,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현명한지고.
허망했던 축제 현장밥이나 먹자꾸나. 케이블카를 예약하고 식당으로 향했다. 케이블카 시설 내 식당이라 별 기대는 안 했는데, 생각보다 음식은 깔끔했고, 닭갈비도 다 조리가 돼서 나와 먹는데 번잡하지 않았다. 창 밖에는 케이블카가 오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 아니었으면, 우리 이 자리 못 앉았겠다."
쨍하니 노란 파라솔 밑에 알록달록 케이블카들이 왔다 갔다 한다.
식당, 노란 파라솔이 쨍하니 이쁘다. 파라솔 뒤로 케이블카가 보인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케이블카를 타본 적이 있나요?
내 인생 경험 중 하나 추가하고 싶을 정도로 좋았다. 조용히 내리는 빗소리에 같이 마음이 차분해진다.
삼정 호수를 지나는 케이블카는 운행시간이 꽤 길었다. 케이블카 아래로 보이는 산에는 같은 높이로 구름이 깔려있었다. 멀리 레고랜드도 보인다. 호수는 안에 섬을 품을 만큼 넓었다.
공기는 물기를 먹어 무거웠고, 케이블카 차장에는 빗물이 맺혀 흘렀다.
케이블 카 안에는 남편과 나 둘 뿐이다. 묵직한 공기의 힘을 빌려, 양인모의 바이올린 연주를 같이 들었다.
느림을 마주하다.
케이블카가 천천히 산꼭대기로 올라간다. 의도치 않게 맞닥뜨린 '느림'
전현수 정신과 의사 선생님 책을 읽은 뒤 가끔 생각이 날 때마다 의도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어떤 행위를 할 때 가능한 소리를 내지 않는다.
일을 할 때는 자판기 타자 소리를 크게 내지 않는다.
밥을 먹을 때는 우적 거리지 않는다.
걸을 때 내 발걸음 소리가 크게 나진 않는지 조심한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면 그 행위에 집중해야 한다. 일상의 행위에 마음을 담아보려는 시도다. 속도 중독자인 내가 나만의 느림을 찾고 현재를 살기 위해 택한 방법이다. 여전히 급한 성격에 덤벙거리고 여기저기 잘 부딪혀 가끔 어디서 생겼는지 알 수 없는 멍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케이블카에서 내려서 전망대를 둘러봤다. 전망대 커피숍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한 잔 시키고 창밖을 바라봤다.
창문에 빗방울이 맺혀 흐른다, 커피숍 노란 조명이 유리에 반사되어 비친다. 창밖에는 온통 구름이다.
비, 구름, 호수, 산.
전망대 아래 커피숍"아, 좋다."
순간을 담는다. 카메라로 포착된 순간은, 정지화면으로 남아, 오늘을 추억으로 기념한다.
2022.09.04,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 오후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 Bresson)은 이 눈 깜짝할 사이를 또 다른 눈인 카메라 렌즈로 포착한다. 눈과 렌즈와 마음이 하나 되는 그 신비한 순간에 자신도 모르게 셔터를 누른다. 브레송은 이때를 “결정적 순간”이라고 말한다.
<출처 : 심연, 지은이 배철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