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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Sep 06. 2022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 케이블카

사람 사는 이야기

축제에 가다.


술 마시고 새벽에 들어온 남편이 미안한지 일요일 아침부터 춘천을 가자고 한다. 일전에 단톡방에 돌아다니는 지역 가을 축제 포스터 모음을 보냈는데 그 생각이 났나 보다. <춘천 막국수 닭갈비축제>에 가기로 했다. 그제가 행사 마지막 날이었다. 부랴부랴 비 오는 날 아침에 춘천으로 향했다. 둘째는 갈 것처럼 굴더니, 방구석에서 애니를 보는 게 더 재미있겠다 싶었는지 집에 있겠다고 한다. 부부끼리 오랜만에 드라이브를 했다.

춘천까지 한 시간 반이 채 안 걸렸다. 태풍 소식이 들려서인지 내려가는 길은 시원하게 뚫려있었고, 오히려 반대편 차선에 차들이 빽빽했다.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차창 밖에 산들은 허리에 운무를 두르고 있었다. 뽀얀 물안개가 계곡을 타고 내려온다.


<춘천 막국수 닭갈비축제> 행사장에 도착했다.

휑했다. 포클레인인지 뭔지, 행사 부츠를 치우고 있었다. 어이가 없어서 입구에서 사진을 하나 찍었다. 공식 홈페이지에 오늘 행사 안 한다는 말도 없었구먼.

남편은 한술 더 떠, 일반 사기업이었으면, 일단 홈페이지, 인스타에 알리고, 미처 소식을 몰라 들린 방문객들에게 '닭갈비 쿠폰'이라도 줬을 거라 한마디 한다. 남편은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있으면 안된다며 행사 공식 인스타에 들어가, 오늘 문 닫았다는 댓글을 하나 남기고 왔다. - 솔직히 이 날씨에 축제 보러 오는 사람이 있을 것 같진 않지만,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현명한지고.

허망했던 축제 현장

밥이나 먹자꾸나. 케이블카를 예약하고 식당으로 향했다. 케이블카 시설 내 식당이라 별 기대는 안 했는데, 생각보다 음식은 깔끔했고, 닭갈비도 다 조리가 돼서 나와 먹는데 번잡하지 않았다. 창 밖에는 케이블카가 오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 아니었으면, 우리 이 자리 못 앉았겠다."

쨍하니 노란 파라솔 밑에 알록달록 케이블카들이 왔다 갔다 한다.

식당, 노란 파라솔이 쨍하니 이쁘다. 파라솔 뒤로 케이블카가 보인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케이블카를 타본 적이 있나요?


내 인생 경험 중 하나 추가하고 싶을 정도로 좋았다. 조용히 내리는 빗소리에 같이 마음이 차분해진다. 

삼정 호수를 지나는 케이블카는 운행시간이 꽤 길었다. 케이블카 아래로 보이는 산에는 같은 높이로 구름이 깔려있었다. 멀리 레고랜드도 보인다. 호수는 안에 섬을 품을 만큼 넓었다.

공기는 물기를 먹어 무거웠고, 케이블카 차장에는 빗물이 맺혀 흘렀다.

케이블 카 안에는 남편과 나 둘 뿐이다. 묵직한 공기의 힘을 빌려, 양인모의 바이올린 연주를 같이 들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전경
느림을 마주하다.


케이블카가 천천히 산꼭대기로 올라간다. 의도치 않게 맞닥뜨린 '느림'

전현수 정신과 의사 선생님 책을 읽은 뒤 가끔 생각이 날 때마다 의도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어떤 행위를 할 때 가능한 소리를 내지 않는다.

일을 할 때는 자판기 타자 소리를 크게 내지 않는다.

밥을 먹을 때는 우적 거리지 않는다.

걸을 때 내 발걸음 소리가 크게 나진 않는지 조심한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면 그 행위에 집중해야 한다. 일상의 행위에 마음을 담아보려는 시도다. 속도 중독자인 내가 나만의 느림을 찾고 현재를 살기 위해 택한 방법이다. 여전히 급한 성격에 덤벙거리고 여기저기 잘 부딪혀 가끔 어디서 생겼는지 알 수 없는 멍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케이블카에서 내려서 전망대를 둘러봤다. 전망대 커피숍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한 잔 시키고 창밖을 바라봤다.

창문에 빗방울이 맺혀 흐른다, 커피숍 노란 조명이 유리에 반사되어 비친다. 창밖에는 온통 구름이다. 

, 구름, 호수, 산.

전망대 아래 커피숍

"아, 좋다."


순간을 담는다. 카메라로 포착된 순간은, 정지화면으로 남아, 오늘을 추억으로 기념한다.


2022.09.04,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 오후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 Bresson)은 이 눈 깜짝할 사이를 또 다른 눈인 카메라 렌즈로 포착한다. 눈과 렌즈와 마음이 하나 되는 그 신비한 순간에 자신도 모르게 셔터를 누른다. 브레송은 이때를 “결정적 순간”이라고 말한다.
<출처 : 심연, 지은이 배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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