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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Sep 05. 2022

보험 가입, 어렵네.

사람 사는 이야기

엄마, 오늘 보험 가입 서명하러 OO보험에서 사람이 올거야.

지난 일주일, 부모님 간병인 보험 문제로 부모님과 설전을 벌였다.

나를 아는 주변 사람들은, '잘 생각했다. 얼른 가입해라.' 이런 입장인데, 막상 당사자들은, 서명을 거부하신다. 본인들 간병은 본인들이 알아서 하신다고.


'냉정한 딸내미'라는 말을 들을지언정, 그 말을 또 가만히 못 듣고 있는 나는, 한마디 한다.

"미래가 이랬으면 좋겠다는 각을 하지 말고, 최악을 생각해야지. 나중에 나보고 직장 그만두고 간병하라 그러지 말고, 보험 가입하자."


사태를 옆에서 보고 있던 남편이 주말에 같이 산책을 하면서 슬쩍 한마디 한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얼마나 뜬금없었겠어. 어느 날 갑자기 보험 이야기를 하니까. 뭐든 일을 하려면 사전에 귀띔도 하고, 분위기도 조성하고 해야지. 네 마음대로 보험 가입해. 돈은 내가 내니 서명만 해. 이런 식이면 기분이 나쁘지 않을까?"

<출처 : Pixabay>
나는 무례했다.

듣고 아차 싶었다. 나로서는 갑자기는 아니었다. 몇 달 전부터, 간병, 치매 이런 단어들이 눈에 보였고, 알아봐야지 생각만 하다, 보험 견적을 받고, 마음을 굳힌 것이다. 다만 이 모든 과정을 부모님은 몰랐고, 부모님에게 사전에 이해를 시킨다는 과정이 없었을 뿐...게 가장 큰 문제다.

그 와중에 고민 상담을 하러 사촌언니에게 전화를 했다가 우리집에 치매 내력이 있다는 말을 듣고 어찌나 놀랐던지, 마음이 급해졌다.


의도가 좋았더라도,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 봐야 한다. A-Z 결론으로 점프 업할 게 아니라, A-B-C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야 하는데, 나는 급한 성질머리를 못 버리고, 당장 보험 가입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나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서였을 것 같다. 간병인이 바로 오는 보험 말고, 비용만 지원해주는 보험을 두 번째 옵션으로 주었으면 부모님 입장에서도 선택하기가 편했을 텐데.


어제 오은영 '화해' 필사해 놓은 구절을 돌아봤다. 부모는 심을 기억하고 자식은 표현방식을 기억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자식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그냥 인간이 그런가 보다. 나는 부모님이 아파 거동이 불편한 상황이 왔을 때, 보험이 있으면 든든할 것 같았다. 요새는 간병인 돈 주고도 못 구한다는데, 보험을 가입하면 보험사에서 보내준다는 말에, 안심을 했었다. 결국 내 몸 편하자는 것일 수도 있지만, 부모님 입장에서도, 가족들 근처에서 보살핌을 받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내 보험인데, 왜 네 마음대로 든다 만다 하는거야?!"

엄마 말에 뜨끔했다. 나 역시 내 뜻대로 부모님 의사를 고려하지 않고, 밀어부쳤구나.

자식은 서러웠다고 하는데 부모에게 그 기억이 전혀 없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부모는 그 말과 행동을 한 자신의 본심만 기억해요. 아주 이상한 부모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자식 잘 되라고 한 말과 행동입니다. 부모는 본인이 한 말과 행동의 표현 방식이나 결과가 아니라 언제나 말과 행동을 시작한 출발선을 생각합니다. 그러니 본인은 타당한 것이지요. 그러나 자식은 부모의 출발선보다 그 표현 방식을 강렬하게 기억합니다. 그 지점에서 두 사람의 기억은 또 달라집니다.
​<출처 : 오은영의 '화해'>
행위 결과도 좋아야 한다.


엄마도 나를 키우느라 최선을 다한 걸 텐데, 나는 엄마가 했던 그릇된 선택과, 그로 인한 결과를 내가 책임지는 게 싫었다. 자유란 내 의지로 선택하는 것일 텐데, 나는 내 인생의 중요한 결정이 엄마로 인해 좌지우지된다고 생각했다. 이미 벌어진 일들을 수습하는데, 내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했다. 지금도 그리 생각한다. 행위의 본심은 따뜻하게 기억하지만, 결과도 좋아야 한다고. 이래서 냉정한 딸래미란 소리를 듣는가보다.


부모님은 당신들이 건강하게 스스로를 챙기시면서 사실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럴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나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는 '본심'은 사랑이었겠으나, 나중에 초래할 결과는 글쎄다.


미필적 고의, 내심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걸 생각 못한 건 아니지만, 그럴 줄은 몰랐지.

내심 그럴 가능성이 있다면 그 가능성을 원천 차단해야지. '그럴 줄은 몰랐다.'라는 말은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 당신들이 안한다는데, 면죄부까지 운운하는 건, 지나치게 나아간 말이기는 하다. 그냥 미필적 고의가 생각나서 적어본 말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결과'도 중요하다는 거.

쓰고 보니 마찬가지네. 나 역시, 부모님이 보험 가입을 거절한다는 '결과'를 고려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한 것에 불과하구나! 이렇게 인간은 자기객관화가 어렵다.


남편 말대로, 나는 전략적이지 못했다. 한두 달 즈음 지나서, 슬쩍 지나가는 말로 말하고, 한번 아프셔서 마음이 약해지실 때 다시 시도해보리라.


두줄 요약 : 부모들은 본심만 기억합니다. 인간이 그렇습니다. 나는 그런 뜻이 아니었던 것이죠. 그렇지만, 예측할 수 있는 '결과'를 고려해야 합니다.
어떤 일을 할 때는, 단계를 밟아야 합니다. 상대방이 넓은 마음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그 전에 양해를 구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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