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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Sep 09. 2022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이 있다.

우리 아이 사랑만 있으면 된다.

나도 계획이란 게 있었다고.

오늘 아침 내 계획은 그랬어. 따뜻한 목욕물에 몸을 담그, 밀리의 서재를 기웃거리려고 했다고. 이동진 독서법에서, 이동진이 욕조 안이라면 하루 종일 책을 볼 수도 있다고 했거든. 심지어 책이 물이 안 젖게 하는 노하우도 있다고 하던데. 자세한 설명은 안 나왔어. 받침대 하나 욕조에 뒀나 싶더라고. 난 평범하게 휴대폰을 들고 이북으로 봐. 커피도 한잔 내려 가야지.


'빨래만 돌리고, 욕실에 가는 거야!'라고 했는데 안방 화장실이 지저분해 보였어. 흠. 그래 안방 욕실부터 청소하자. 락스를 뿌리고 스펀지로 샤워 칸막이를 박박 닦았지. 이제 욕조가 있는 거실 화장실을 청소할 차례였어. 헛. 청소 깨끗이 하고 욕조에 몸을 뉘이려고 했는데, 큰 놈이 들어갔네? 이분은 요주의 인물이야. 한번 화장실에 들어가면 나오질 않아. 그 안에서 뭘 하는지 알 수가 없어. 남자아이인데 거품 목욕을 좋아해. 얼굴에 팩도 하고, 거품 목욕도 하고, 자기 몸을 가꾸는데 진심이셔. 어릴 때는 여자 아이들만 머리 묶어준다고 성질을 내기도 했지. 이렇게 욕조를 포기해야 하는 건가? 그래 미련을 두지 말자. 난 이따 낮잠을 잘 거니까.

<출처 : Pixabay>
계획은 개뿔

브런치 글들을 돌아다녔지. @Anna Lee 작가님 할머니 이야기 보다가 울고 있었는데, 내 글에 달린 @JOO작가님 댓글이 너무 웃긴 거야. 말 그대로 울다가 웃었어. 아... 나 낮잠 잘 꺼야. 내가 이러려고 어제 명절 음식을 다한 거란 말이야! 다시 마음을 다잡았지. 안마의자에 앉았어. 요 의자는 몇 년 전 남편이 추석을 보내고 나서, 사준 거야. 갑자기 바디*랜드 매장 구경 가자고 하더니, 떠억 하니 하나 지르더라고.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던 것 같아. 나 그리 잔소리 많이 하는 사람 아니야. 그냥 자기가 찔린 거겠지.

안마의자에 앉아서 최면 유도 영상을 보는데 말이지. - 20분쯤 듣는데 온갖 잡생각이 밀려오더라고. 아... 이완이고 집중이고 아무것도 안돼. 그 와중에 큰 아이는 뜬금없이 집에 선물로 들어온 멜론을 보고 생각이 났는지, 멜론 빙수를 만들겠다고, 부엌에서 칼을 들고 설치는 거야.

(첫째) "엄마, 체 어딨어?"

(나) "싱크대 아래 장을 보거라." 

(첫째) "엄마 믹서기는?"

아~! 결국 안마의자에서 내려왔지. 그래. 무슨 낮잠이냐. 아이들이 안 자는데, 믹서기나 찾자. 한참을 뒤졌는데, 믹서기가 나오질 않았어. 지난번에 내가 쓰고 분명히 싱크대에 올려놨는데?라고 하자, 아이들이 아빠가 버렸을 거라고 하네. 자기들 아령도 아빠가 소파에 놨다고 버렸다고. 결국 마트까지 갔어. 멜론 빙수 하나 만들려고.

믹서가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했는데, 디자인을 중시 여기는 큰 아이 눈에는 안 그랬나 봐. 플라스틱이 아닌 유리로 된 믹서기를 고르시더라고. 가격 보고 놀랐지. 아... 괜히 고르라고 했다. 후회를 하면서 돌아왔는데, 이 믹서기가 고장 난 거였어. 물이 줄줄 세는 거야. 다시 마트를 갔어. 시간은 흘러 흘러 오후 3시.


억울하다고!

어제 장장 5시간에 걸쳐 음식을 했단 말이지. 이번 추석에도 동서는 안 온다고 했고, 남편 형제는 3남매야. 아이들만 5명이지. 우리가 먼저 가면, 시누네가 오고, 그다음에 동서네가 와. 추석을 살짝 비켜서 . 입이 한둘이 아니야.

시어머니가 몸이 불편하신 이후로는 집에서 음식을 해가.

가서 같이 하는 게 낫지 않냐고? 천부당만부당한 말씀. 옆에서 칼질은 이렇게 해야 한다. 반찬은 이렇게 내어야 한다. - 말이야 맞는 말이다만, 하루 종일 그런 말을 듣고 있는 건 쉽지 않아. 게다가 좀 더 나가서는 이런 것도 안 배워왔냐?로 나아가거든.


난 사실 명절 음식 하는 게 그다지 부담이 되진 않아. 회사에서도 8시간 일하고, 가끔 야근하고 주말 근무하잖아. 난 그리 생각해. 휴일근로수당 안 나오는 연장 근무라고. 그냥 해야 하는 일이면 해버리는 게 낫지. 거기에 구구절절하게 말을 덧붙이고 싶지 않아. 깔끔하게 해치워버리고 만다.

어제 장을 보고, 둘째와 같이 전을 부쳤어. 큰 놈은 학원을 핑계로 안 하더군. 괜찮아. 옆에서 조잘거리면서 같이 전 부쳐주는 동지가 있으니 감사할 따름이야. 2시간 내내 동그랑땡을 부치시더라고. 

"엄마 동태 녹으면 불러줘."라고 하더니, 자기 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더라고. 명랑한 녀석이야.


오늘은 나를 위해 낮잠을 자고 싶었어. 어제 밤에도 둘째가 자기 전에 계속 말을 하는 바람에 때를 놓쳐 제대로 못 잤단 말이지. 기 전에 아이가 이 이야기 저 이야기 조잘대는 건, 귀엽긴 한데 말이지. 행복한 것 같기도 한데 말이지. 심신이 피곤하긴 해.


둘째가 고등학교를 졸업해야, 낮잠을 잘 수 있을까?럴 줄 알았으면 일을 빨리 끝내는 게 아닌데, 몹시 억울해지고 있어. 난 오늘 정말 쉬려고 했다고. 하루는 평일에 쉬는 남편이 부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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