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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Sep 30. 2022

반짝이는 재능은 없지만

사람 사는 이야기

재능충이 부럽


천재를 보고 부러워하는 살리에르처럼, 어릴 때 나는 타고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 부러웠다. 부러움에 구체적인 대상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막연했다. '남들은 이렇게 노력해도 안되는데..., 저 사람은 세상 사는 게 얼마나 편할까?'

내가 최초로 질투를 하다 못해 적의를 품은 사람은 6학년 때 반장이었다. 믿거나 말거나 어린 시절 나는 거의 말이 없었다. 국민학교 1학년 때는 한글을 몰라서 나머지 공부를 했고, 2학년인지? 3학년인지 요때는 구구단을 외우느라 나머지 공부를 했었다. 반에 어디서나 있는 조용하고 지질한 아이. 머리는 일주일에 한 번 감는 줄 알았던 나는 옷도 지저분하고, 덩치는 쓸데없이 컸으며, 말이 없는 아이 었다.


6학년 때 반장은 예중을 준비하던 아이 었다. 반짝이 풀로 '메리 크리스마스'를 멋들어진 필기체로 써서 반전체에 카드를 돌렸다. 카드는 2겹이었는데, 겉장은 핑킹가위로 사선 처리를 했다. 반짝이 풀이나, 핑킹가위나 나는 언감생심 비싸서 사지 못할 물건들이었다. 카드는 단순하지만 세련됬었다.

난생처음 크리스마스 카드를 받은 나는 설렜다. 반짝이 풀로 어른들이 쓰는 필기체, 그것도 영어로 쓰인 크리스마스 카드를 받고 얼마나 기뻤던지.


"이거 성의는 없지만, 받아줘."

카드 안에 적힌 메시지다. 순간 나는 화가 났다. 그때는 내가 왜 기분이 나빴는지 몰랐다. 카드는 친한 아이들끼리 주고받았고, 나는 반장과 친하지 않았다. 대체 나는 카드에 어떤 내용이 있기를 바랐던 건가? 안 주는 거보다 주는 게 나은 거 아니야?


그때 나는 '차라리 나 같으면 카드를 안 줬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여러 무리 중에 하나(one of them)라면, 그냥 카드를 안주는 게 낫지 않을까? 기왕 카드를 주기로 마음먹었다면, 적어도 내 이름 아래, "우리 친하지는 않지만, 크리스마스니까, 카드를 보내고 싶었어." 이 정도로 말을 했어도 기분이 그리 나쁘진 않았을 텐데.


나는 성의 없는 카드를 받아도 기뻐해야 하는 사람인 건가? 나라는 사람에 대한 개별성이 무시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 그 아이는 성의 없는 카드라고 대놓고 쓰인 카드를 받는 내 감정을 존중하지 않았다. 소외된 아이들을 포함한 반 전체 아이들에게 카드를 보내는 착한 반장이라는 역할을 완성시키기 위해 나는 그 카드를 고이 받아야 했다. 거기서 "난 이따위 성의 없는 카드는 기분 나빠!"라고 하기도 애매하지 않은가? 


쓸데없는 승부욕


그리 비장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 "내가 너만은 이겨줄게." 조용히 결심했다. 그 아이도 카드가 성의가 없어 미안한 마음에 굳이 언급한 것일 수도 있지만, 어찌 되었건 내 기분은 이미 상했다. 혼자 하는 경쟁에서 내가 그 아이를 이겼는지 어땠는지 기억은 안 난다. 안나는 걸 보니, 내 성적은 그 아이보다 아래였나 보다. - 사람은 자기 편한 것만 기억하니까 아마 내가 졌을 것이다. 반장은 그림을 잘 그렸을 뿐 아니라 공부도 잘했다. 꽤나 유명했던 그 국민학교에서 공부 좀 한다는 아이들은, 고등학교 수학 문제를 풀었다. 학교 정문에는 기사가 달린 차가 대기하던 곳이었다. 학원도 안 다니던 내가 이길리는 만무했지만, 자기 주제를 모르는 아이가 가지는 끝없는 자신감으로 나는 내가 마음먹으면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 아이는 어쩌면 내가 최초로 만난 모차르트였는지도 모르겠다.


스스로를 살리에르?라고 잠깐 생각했던 나는, 살리에르도 뭣도 아닌, 그냥 평범한 아이였다. 살리에르는 궁정 최고 음악가가 아니었던가? 나는 그에 미치지도 못하면서 자신을 그리 높이? 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 살리에르 님 죄송합니다. 당신 역시 비범했어요. 살리에르도 쉽지 않다는 걸 뒤늦게 알았습니다.

<출처 : Pixabay - 난 아령도 무겁다>
해봤자라는 자유?


지금 나는 어차피 내가 해봤자?라는 걸 잘 안다. 여기저기 부딪히면서, 나라는 사람을 더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번 필 받으면 잠깐 열심히 한다. 오래는 안 간다. 큰 부담이 가지 않는다면, 길게 하기도 한다. 별거 아닌 것도 궁금해한다. 호기심이 많아 여기저기 집적거린다. 가끔 승부욕이 강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 이게 좀 의외인데, 내가 보는 나와 남이 보는 내가 다르다면 남이 보는 내가 더 맞다고 생각한다.


작고 지질한 나를 알게 되면서, '해봤자'라 그만큼 자유로워졌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지. 뭐, 이거 한다고 내가 뭘 할 것도 아니고. 가볍게 시작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하기 싫으면 안 하면 그만. 1일 1 피드도 가끔 버겁지만 아직은 할만하다. 습관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쓸 말이 없는데? 없는데? 하다가 퍼뜩 생각이 나기도 한다. 에잇. 이러다 힘들어지면 좀 쉬면 되지 뭐.


딱히 눈에 띄는 재능이 없다. 애초에 대단한 걸 기대하지 않는다. 이것저것 다 찝쩍거리고 마음에 들면 해볼 수 있다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 않은 것 같다.


한 줄 요약 : 살리에르는 아무나 하나~그냥 하고 싶은 거 하고 살면 된다.

<출처 : Pixabay - 1등 못해도 뭐. 괜찮다.>
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은 일들 목록 만들기 Create a “Fun to Try” List 호기심을 갖게 된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자. 인생을 즐기고 우연한 기회를 삶으로 끌어들이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혹시 해보고 싶은 일의 희망 목록Wish-list이 있는가? 그 희망 목록을 대기 목록Wait-list으로 전락시켜서는 안 된다. 지금 목록 Now-list로 만들어야 한다. 해보고 싶던 일을 정해서 지금 당장 시도 가능한 가장 간단한 방법부터 찾아보자. <출처 : 존 크럼볼츠, 지은이 라이언 바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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