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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Oct 10. 2022

YES로 얻은 호의

사람 사는 이야기

Having a history of abuse also meant a history of not being able to set boundaries. Once your personal boundaries have been violated as a child, it's difficult to regain the courage to stop people from stepping on you. You fear being rejected for who you really are. So for years, I spent my life giving everything I could to almost anyone who asked. I was running myself ragged trying to fulfill other people's expectations of what I should do and who I should be.

나는 그 병이 어디서 왔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학대의 이력이 있다는 것은 경계를 설정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일단 어렸을 때 개인적인 경계가 침해되면, 사람들이 경계에 밟고 들어오는 것을 막을 용기를 되찾기 어렵다. 당신의 진짜 모습을 거절당할 것이라는 두려움, 수많은 시간 동안,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주는데 내 인생을 보냈다. 나 자신을 지치게 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내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느라.
<출처 : What I Know For Sure, p.164, 지은이 오프라 윈프리>
진짜 모습을 거절당할 것이라는 두려움


꼭 학대를 받지 않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진짜 나를 드러내기가 두렵다. 학창 시절에 한 친구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난 가끔 내 시커먼 속을 알까 두려워."

그 말을 하는 친구가 순수해 보였다. 대부분 우리는 겉과 속이 다름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니까. 그 둘이 같아야 한다는 생각조차 낯설다.

 

친절함이 미덕인 줄 알았던 시절


그녀는 40이 넘어서야, "No"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어떨까?

학창 시절 거절을 잘 못해, 쉬는 시간마다 매점에 내려가 있었다. 매점 알바를 하던 걸스카웃 친구가 매점에 허구헌날 내려와 있는 사람으로 나를 꼽은 적도 있다. 아이들이 매점 갈 때 혼자 가기 싫으면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내가 아니었나 싶다.


20대 직장생활을 할 때도 이런 면이 딱히 문제가 되진 않았다. '친절함'이 미덕인 업종에 종사를 해서 그랬나 보다. 이런 성격이 문제가 된 건 한국에서 다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였다.

"너만 친절하냐?" 내지는 "너만 일 열심히 하냐?"라는 빈정 섞인 질타를 많이 들었다.

돌이켜 보면, 호구 기질 + 호승심이 빚어낸 결과였다. 좀 더 몸을 사리고 나 자신을 감췄어야 했는데, 당시 나는 취업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기뻤다.


피부과 실장으로 일했을 때는 밤 10시에 고객이 전화를 해도 꼬박꼬박 받았고, 주말에는 사무실 번호를 연동해서 병원 전화를 받았다. 영화 보면서 10번 넘게 밖에 나가 전화를 받아 남편이 화를 낸 적도 있다. 최저임금 받으면서 뭐 그리 불살라 가며 일했는지. 당시 병원 원장은 그걸 당연히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했었고, 나는 막연하게 그런 건가? 했었다. 병원이 잘되려면 나도 열심히 해야지라고 생각했다. 원장은 왜 자기 전화기는 연동을 안 시켜놓나?라는 의문도 가지지 않았다. 이리 부리기 쉬운 인간이라니.

<출처 : Pixabay>
YES로 얻은 호의, 부질없다.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면서 내가 잘한다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주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우치게 되었다. 지나친 인정 욕구는 오히려 내 발목을 잡았다. 한번 A로 처리해주면 그다음에도 A로 처리해줘야 한다. 호의는 이렇게 권리가 된다.


적당히 선을 지키며, 거리를 둬야 인간관계도 아름답게 무르익는다. 선을 함부로 넘는 사람들을 조심하자. 슬쩍 발을 디디며, 여기까지는 괜찮지 않을까 간 보는 사람들에게 내 귀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할 이유는 없으니까.

<출처 : Pixabay>


한 줄 요약 : 남에게 잘 보이고자 "YES"할 필요 없다. 무리한 "YES"로 얻은 호의는 권리가 되어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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