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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Oct 10. 2022

부탄은 정말 행복한 나라일까?

사람 사는 이야기

적을수록 풍요롭다.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상식과 다른 말들은, 그 말을 들여다보게 한다.

https://youtu.be/XAL_t9 SWIeE

GNH는 매년 GDP를 2-3% 이상을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여타 국가와는 다른 모습입니다. 부탄 문맹률이 높은 것이나, 외부 세계와 거리가 있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비교 대상이 없어 더 행복하다고 느끼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현대 문명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정신승리일 수도 있지만요. 고아원이나 양로원이 없고 대 가족이 책임을 지는 것은 각자도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상향으로 보입니다. 영상을 들으면서 '적을수록 행복하다.'는 책 제목이 생각났어요. 개인의 GNH를 높이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의외로 이혼율이 높다는 건 남의 이목과 사회적인 시선보다는 본질에 집중한다는 말이겠죠? 개인 GNH를 높이는 방법도 거기서 시작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당신의 가치관은 무엇입니까?


위 동영상에 내가 단 댓글이다. 잠깐 어디 들릴 일이 있어 차를 몰고 가는데, 남편이 요새 '가치관'에 대한 고민을 한다고 화두를 꺼냈다.  '내 가치관은 무엇일까? 저 사람의 가치관은 무엇일까?' 이런 대화를 나누는 걸 보니 자신이 나이가 든 것 같다고 소회를 읊는다.

"중년은 또 다른 사춘기, 성춘기래. 완성을 해 나가는 시기지." 뭔가 멋진 말을 해준 것 같은 기분이다.


남편은 "네 가치관은 공정함인 것 같아."라고 말한다. 너 자신을 볼 때나 남을 볼 때나 '공정함'이 기준이라고.  다른 사람이 보기에 내가 공정함에 민감한가? 스스로도 자애로운 것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니, MZ세대들처럼 '공정함'에 민감한 X세대인가 보다. 많은 사람들이 MZ세대가 공정함에 민감한 이유는 '경쟁'을 하고 '성취'를 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풍토 속에서 성장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MZ 세대는 소위 능력주의, 메리토크라시가 보편적 가치라고 여긴다고 한다.

https://naver.me/5fjRsN2V


능력주의는 공정한가?


능력에 따라 배분되는 사회는 얼핏 보면 공정한 듯 보이지만, 애초에 동일한 출발선상에 놓여있지 않는 한, 능력주의는 출발선을 부정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알랭 드 보통이 '불안'에서 말한 것처럼, 이전에는 거지를 볼 때, '불운하다.'라고 여겼지만, 누구나 창고 하나만 있으면 실리콘벨리 창업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사회에서 거지는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거지로 사는 건 자업자득, 당연한 게 된다.


메리토크라시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에 확신을 가진 사람들일 것이다. 충분히 경쟁에서 이길 자신이 있으니 능력대로 하자는 말을 하겠지. '능력'을 업하기 위해 '노력'을 강조하다 보면 끊임없는 자기 착취에 빠지게 된다. 그러니 자기계발이라는 미명 하에 적극적으로 자기를 착취하는 게 자본주의 가치를 내재화한 자본주의 끝판왕이라고 하는 게 아닐까?


부탄의 GNH


부탄의 GNH은 색다르다. 국민총행복. 개념상 국내총생산을 가리키는 GDP보다 질적이고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가치로 느껴진다. 문화적 전통과 환경 보호, 부의 공평한 분배를 강조하기에, 빠른 발전 속도를 추구하지 않는다. 발전의 속도를 조절한다.

https://naver.me/5vIHwnkd

부탄은 교육과 병원 이용이 무료다. 그런데, 문맹률이 53%이며, 전통적인 치료방법을 국가가 인정한다. 전통적인 가치를 수호하겠다는 의지도 있겠지만 모든 사람에게 현대적인 병원 시설을 이용할 수 없어서, 미신에 가까운 치료법도 인정하는 게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었다.

부탄은 TV와 인터넷을 금지하다 1999년에 이를 허용했으며 휴대전화를 허용한 것은 2003년이라고 한다. 우리의 불행은 비교에서 온다는 말처럼, 비교 대상이 없으니, 행복한 줄 알고 사는게 아닐까? <출처 : http://www.newstof.com/news/articleView.html?idxno=323>


도시의 공기가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

내가 좋아하는 말 중에 하나다. 과거 장원에 농노로 신분상 굴레를 대물림했던 사람들은 도시로 나와 '계약'에 따라 일과 대가를 주고받는 '개인'이 되었다. 이전보다 공동체 관념은 희박해졌고, 사람들은 개인의 '자유'를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의사결정을 내 뜻대로 할 수 있다는 건 책임이 따르기에 불안하고 외롭지만, 여타 구속에서 벗어나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신분에 따른 질서나, 공동체 질서에 구속받지 않는 개인이라는 개념은 당시에는 어느 정도에 파급력을 지니는 발상이었을까?

<출처 : Pixabay>

"난 꼭 서울에 갈 거야. 시골이 지긋지긋해."

강원도 시골 마을에 살았던 사촌언니가 했던 말이다.

이유를 묻던 내게 언니는 이 동네는 좁아서 무릎 위로 올라오는 치마라도 입었다 치면 그날 저녁이면 동네 소문이 다 나고 며칠 동안 잔소리를 듣는다고 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 <어제까지의 세계>에서는 파푸아 뉴기니 원주민이 자기 딸을 죽인 원수를 용서한다. 같은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공동체 마인드'가 강조되는 전통사회에 사는 개인들은 '자아'의 개념이 우리와 다르겠지만, '공동체' 연대가 개인을 감싸 안는 것이 최선인지는 잘 모르겠다. 딸의 원통한 죽음을 그 가족들은 어떻게 풀 수 있단 말인가!


<병명은 가족>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아팠다. 대부분 정신병은 가족 때문에 발생한다. 남이면 거리를 두거나 손절을 하지, 가족은 가족이기에 멀어질 수가 없다. 대가족 공동체는 '빈자'와 '약자'를 감싸 앉는 따뜻함이 있을 수 있겠지만, 영화 '이끼'나 소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에서 보이는 폭력도 존재한다. 공동체 어디서나 계급은 존재하고, 그걸 악용하는 사람들은 있으니까. 폐쇄적인 공간은 순종적인 개인을 만든다. 부탄과 같이 모계 대가족 사회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성문화 된 문서로 지켜지지 않은 지도자의 지혜로운 결정을 나는 믿지 않는다.


아직까지는 계몽이라던지, 능력주의던지, 개인을 전면으로 내세우는 이론들이 유효하지 않을까? 자본주의 대안으로 공동체, 연대를 강조하는 것을 보면 드는 생각이다. 공동체 안에서 개인이 진정 행복할 수 있을지, 이미 자유를 맛본 사람들이 '공동체'를 위한 희생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 줄 요약 : 부탄의 행복지수가 부럽다. 그런데, 부탄이 추구하는 가치를 내가 따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공동체는 따뜻한 피난처가 되기도 하겠다만, 남편 말 따나 '공정함'의 가치를 중요시 여기는 나는, 내 자유가 더 소중할 것 같다.
앞에서 우리는 살펴봤어요. 전문가, 혹은 특정 스펙으로 취업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진보적으로 보여도 자신이 속한 체제에 대해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고요. 자신이 부품으로 들어가 있는 기계가 망가지면 자신도 버려진다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MZ세대도 자본주의 체제에 상당히 보수적이에요. 스마트폰이 외장형 심장이 되어버렸기에, 그들은 스마트폰으로 작동하는 자본주의 체제에 저항하기 힘들어요. 저항하기는커녕 그들은 자본주의적 합리성에 따라 움직이죠. 스마트폰으로 동일한 상품에 대한 가격도 합리적으로 비교하며 가성비를 따지는 것이 그 훌륭한 예가 될 것 같네요. 불행히도 그들에게 그 상품이 필수품인지 사치품인지 고민할 정치·경제학적 감각이 없어요. 자신의 쾌락과 불쾌, 혹은 이익과 불리를 계산하는 벤담적 자아, 이기적인 개인주의가 스마트폰에서 마침내 완성된 셈이죠.
 < 출처 :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강신주, 지승호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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