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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Oct 13. 2022

탈탈탈 털린다.

우리 아이 사랑만 있으면 된다.

알수 없는 버거움, 네 정체는 무엇이냐?


엄마들 모임만 다녀오고 나면 탈탈 털리는 기분이다. 왜 그럴까? 멤버들 다 예의 바르고, 유용한 정보도 귀동냥하거늘, 하는 일 없이 몸에 기운이 쫘악 빠진다.

알고 봤더니 나 외향형이 아니고 내향형인가? 아니면 내향형으로 진행 중?

가서 딱히 내가 말을 하는 것도 아니건만, 마음이 고달픈 이유는 무엇이란 말이냐.


일단 눈치가 보인다. 주고받는 말들 이면에 뭔가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대놓고 물어보기도 어렵고, 일단 입을 다물고 있는다.

이전에 유달리 싹싹했던 선배 언니가 했던 말이 있다.

"지금은 **씨가 곰 같지만, 이 생활 3년만 해봐. 여우가 될 거야."


안타깝게도 마늘과 쑥, 100일의 염원이 없었는지, 나는 곰에서 여우로 진화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인간도 되진 못했다. 아마도 조용히 가만히 입 다물고 있기 전략이 어느 정도 통했던 모양이다. 불편함이 컸다면 진화까지는 아니어도 개선이 있었겠지.


나는 왜 마음이 불편했을까?


불편한 이유 1 : 눈치가 없다.


여중 여고 시절에는 여자들로 둘러싸인 세상이 그리 어렵진 않았다. 어려서 몰랐던 걸까? 남녀공학이었던 대학시절을 거쳐, 여초 집단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사회생활이 원래 이리 힘든 건가? 아니면 여자들만 모여있어 이리 힘든 건가? 알 수가 없었다.


눈치는 더럽게 없는데, 눈치를 많이 본다. 마음 상하게 할까 봐 나름 신경 쓰는 건데, 지나치게 신경 써서 되려 기분이 나쁘다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몰래 배려를 한다 해도 티가 났던 셈이다.

지나가다가 툭 던지듯,

"**아, 이거 이렇게 하자."라고 하면 될 것을,

오만가지 시뮬레이션을 머릿속에 돌리며,

"**아, 이건 이래서 그런데, 이렇게 하면 저렇게 돼서 말이야. 넌 어떻게 생각해?"

상대방은 말귀를 못 알아듣거나, 못 알아듣는 척을 한다. 후자가 여우들이다.


자연스러웠어! 이게 되어야 하는데, 적절한 타이밍을 노렸다가 슬쩍 발을 디미는 게 어렵다.


어제 대화도 그랬다. 운영위 회의 전에 단톡방에서,

"XX사항에 대해서 건의하셨던 분 있으세요?"

톡이 올라가자마자 번개와 같은 속도로

"전 아니요."라고 대답했지만,

그다음 톡,

"XX 안건은 제가 말할 테니, YY 안건은 누가 슬쩍 이야기해주세요."라고 온 톡에는 답변을 하지 못했다. 말은 할 수 있으나, '슬쩍'이 안돼 서다.

그냥 말하면 안되나? 다행히 다른 분이 자기가 이야기하겠다고 총대를 메었다.

이분은 노련하게, 회의 진행 전 서로 안부를 물을 때, 최근에 있었던 운동회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화제를 YY로 유도했다. YY안건은 자연스럽게 위원들 사이 화제가 되었고, 바라던 데로 스무스하게 이야기되었다.


자리를 옮겨 카페에서,

회의 시작 전 YY안건을 자연스럽게 툭 던진 위원이 한마디 한다. 아까 회의 끝날 무렵 ZZ안건 나왔을 때, 교장 선생님이 네가 이야기하면 좋겠다는 눈치를 줘서 학교 입장에서 이야기하느라 진땀을 뻈다고.


어디 거기서 그런 맥락이 있었던가?

난 context가 부족한 인간이 맞다.


(text) text는 학부모 위원이 ZZ안건을 건의했다. 이거다.

(context) 왠지 느낌상 교장 선생님은 반대하는 눈치였다. (여기까지는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

(진정한 context) 진정한 context는 말하지 않은 의중을 읽어 적극적으로 양쪽을 중재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불편한 이유 2 : 내가 줄게 없다.


차라리 내가 더 줬으면 줬지, 수혜자의 입장에 있는 것이 불편하다.

학교 봉사활동을 못하니, 운영위 참석이라도 꼬박꼬박 하자는 마음으로 열심히 반차를 낸다. 회의 안건도 사전에 다 읽는다. 그런데 회의만 시작하면 눈치 보느라, "이건 왜 그래요?"라고 말을 못 하고 그냥 동의만 하다 온다. 어차피 알아서 잘했겠거니.


예산 항목도 세부적으로, "이 항목은 구체적으로 뭐가 들어간 거예요?"라고 묻고 싶지만, 괜히 말 꺼냈다 불편할까 가만히 있는다.


급식 이야기 때도 그랬다. 가뜩이나 입이 짧은 아이가 요새 특히나 밥을 먹지 않는 것 같다. 아침에 학교 갈 때 아파트 상가 편의점 카드 영수증 문자가 날아온다.

'연세 크림빵 사 먹었나 보군.'

'요즘은 편의점에 아침마다 들리네? 아빠가 밥 챙겨줬을 텐데? 학교 밥이 부실한가? 최근 들어 담당자가 바뀌고 맛없다는 말은 많이도 했는데, 정말 그런가?'

막상 이야기가 시작이 되자, 한 번도 봉사활동을 안 간 내가 차마, 뭘 안다고 말을 하나 싶었다.

'그래. 집에 간식 쟁여놓지 뭐. 빵 좀 사달랬는데 빵 사서 넣어놓자.' 이렇게 된다.


이후 커피숍,

나름 학원 진학 설명회, 학교별 입학 설명회를 쫓아다니지만, 아들내미가 원체 말이 없기도 하고, 나 역시 솔직히 별로 궁금하지가 않아, 요새 입시가 어떻게 되는지 오리 무중이다.

그냥 우리 때처럼 수능으로 컷 하고 학교별로 시험 보면 안되나? 논술이건 면접이건 뭐건 간에 자기들 입맛에 맞는 아이들은 대학별 고사로 선발하면 안 되나? 뭐 이리 입시가 복잡한가?


얼마 전 학원 설명회에서는 학교별 내신이 표준편차 등으로 보정을 하면 그 내신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이거 나만 모르고 있던 건가? 뭔 보정 식이 저래? 저런다고 잘하는 학교 못하는 학교가 구분이 되나? 얼추 편차값이 작으면 경쟁이 치열하다는 의미일 테니, 내신 등급을 높은 등급으로 보정한다는 건 이해가 가지만 그 반대도 성립하지 않나? 다 놔버리면?? 아니면 특정 선생님이 문제를 무지막지하게 어렵게 내도 마찬가지 아닌가?


자사고를 떨어지면, 요 근처 **고는 워낙 경쟁률이 세니, 애초에 일반고를 지원한 아이들이 선배정이 된다. 그러니 전략적으로 ##고를 쓰고 자사고 편입을 노려라.

이번에 영재고 간 아이 둘 다 !!!학원 출신이다. %%학교가 최근에 무슨 지원을 받으면서 ++로 바뀌었다더라.


이런 알짜배기 지역 맞춤형 정보는 여기 아니면 내가 얻을 때가 없다. 학원도 안 알려준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차라리 내가 줄 게 많은 사람이면 마음이 편할 텐데, 100원 내고 1000원어치 먹은 것 같은 느낌이다. - 남편이 말한 대로 내 주요 가치관은 공정함인가 보다.

그 와중에, 넌 눈치도 없으니, 조심하자는 자기 검열까지 더해진다.


불편한 이유 3 : 우리 아이가 공부를 못한다.


위원들 아이들 대다수가 전교권이다. 우리 아이는 사고나 안치면 다행이다. 주고받는 대화들이 우리 아이랑은 영 거리가 있다. 그리 부럽지는 않은데, 왠지 누군가 "MM은 잘해요?"라고 물으면 어떡하나 고민이 된다. 당연히 이런 질문을 아무도 안 할 거라는 걸 알지만 말이다.

<출처 : Pixabay>

정보통으로 불리는 한 분이 이리 말했다.

"우리 아이 그릇은 간장 종지인데, 그걸 대접을 만들겠다고 이 난리니 힘들지. 생긴 대로 사는 게 좋을 텐데. 자기도 스트레서 안 받고 나도 안 받고."

다른 엄마가 말한다.

"그래도 우리가 살아봤잖아. 간장 종지 힘들어도 물을 채울 수 있을 만큼 채워야지."


오전에 시누한테 톡이 왔다. 시누네 아이들과 우리 아이들은 나이가 같다. 겸사겸사 고등학교 이야기를 하다가 '간장종지' 이야기를 했다.

시누는 "난 대접은 말고, '좋은 간장종지'가 되도록 하려고."라고 말했고,

나는 "MM은 자신이 간장종지라고 생각은 하지만 물을 많이 담으려고 해요. 다 해달래요. 다 한다고 하고."라고 말했다.


시누나 남편이나 극 현실주의자들이다. 엄마 아빠 차이인지 시누는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활용하여 베스트 옵션을 찾으려고 하는 편이고, 남편은, "공부 자기가 하는 거야. 내버려두어."라고 한다.

결국 자기가 하는 것이라는 데는 동의하지만,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듯 - 이리 멋진 문장을 여기 써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주워듣는 한마디, 저기서 주워듣는 한마디에 내 귀는 마구마구 팔랑거린다.


고민이다. 이걸 그래도 붙잡고 있어야 종지에 물을 잔뜩 부으려는 큰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건지. 아니면 나 자신을 위해 이제 그만해야 하는 건지.

<출처 : Pixabay>

한 줄 요약 : 눈치도 없고, 가진 정보도 없고, 아이까지 공부를 못하는 엄마는 엄마들 모임이 버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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