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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Sep 20. 2022

엄마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아이

우리 아이 사랑만 있으면 된다.

둘째는 내가 올 때까지 잠을 자지 않았다.


기억나는 장면 하나

네다섯 살 때였나? 늦게 퇴근을 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이가 보였다. 아이는 신발장 바로 앞까지 나와 앉아있었다. 나를 기다린 모양이다.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는 그대로 옆으로 픽, 쓰러져 잠들어버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어쩐지 울고 싶기도 하고, 이 상황이 웃기기도 했다.


큰 아이는 수줍음이 많았다. 아이가 학교에 적응을 잘할지 걱정이 돼서 7살 때 태권도장에 보냈다. 형 따라 둘째도 4살부터 도장에 다녔다. 도장은 차량 운행을 하니 두 녀석을 같이 보내면 친정 부모님이 우리 아이들을 데리러 올 필요가 없겠다는 계산도 있었다. 아이들은 친정에서 저녁을 먹었고, 8시쯤 집에 왔다.


큰 아이 같은 반 엄마도 아이를 태권도장에 보냈는데, 한 번은 맨바닥에 앉아 도장 벽에 기대 정처 없이 자는 둘째 사진을 찍어서 보내줬다. 아이는 수업 내내 잠을 잔다고 했다.

"엄마가 모르시는 것 같아서요. 태권도장에 한번 이야기해보세요."


아기 이불을 싸서 도장에 보냈다. 관장님은 어떻게 이야기를 알게 된 건지 그 엄마가 누군지 다그쳤다. 엄마들 사이에서는 둘째가 도장에서 그렇게 자고 있는 게 유명했던 일이었나 보다. 누가 하나 총대 메자고 생각하고 나한테 사진을 보냈던 것 같았다. 관장님은 일부러 화를 내셨다. 세게 나가자 싶었나 보다. 나는 대놓고 말했다. 나는 아이를 그 시간 동안 맡기는 게 목적이다. 아이가 수업을 못 듣는 건 상관이 없다. 바쁘신 사정 잘 이해한다. 관장님이 아이들 잘 돌보시는 것도 알고 있다. 그 엄마도 아이가 안쓰러워 그런 거지 다른 뜻이 있는 것이 아니다. 어디 가서 말 안 한다. 바닥이 차고, 아이가 아직 어리니 이불만 좀 부탁한다고 했다. 이후 아이는 이불에 누워 잠을 잤다.

<출처 : Pixabay>


엄마 노릇


부끄럽지만 나는 사는데 정신이 없었다. 아이가 도장에서 수업을 듣는지, 잠을 자는지도 몰랐다. 그걸 체크할 여력도 없고 체크하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안타까운 마음도 먹고사니즘이 해결돼야 할 수 있다. 둘째는 백일이 가까워올 무렵 목을 가누길래, 어린이집에 보냈다. 친정은 사실상 아이를 볼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한다. 저녁밥을 먹이는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다. 그 무렵은 일하면서 자격증 공부도 했다. 밤에 아이들 몸에서 막 걸기 쉰 내를 넘어 살짝 오줌 쩐 내가 났다. 땀이 많은 남자아이들이다. 내가 학원에서 집에 돌아오면 거의 11시 반에서 12시였다. 아이들을 씻길 사람이 없었다. 이 생활이 지속되자 둘째도 기다리다 포기하고 잠을 잤다.


어려서부터 엄마와 떨어져서 그랬는지, 이 녀석은 내가 오지 않으면 불안한 모양이다. 어제도 그랬다. 인사 쪽 분들과 세미나 겸 모임이 있었다. 집에 들어오니 거의 12시, 모임을 웬만하면 안 가는데 그 모임은 꼭 가고 싶었다. 줌과 톡만 하던 영어 스터디 지인이 나온다고 했다. 남편도 집에 있으니 괜찮겠다 싶었는데, 아이는 10시 반에는 자기로 나와 약속을 해놓고선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며 기다리고 있었다.


둘째는 자기 전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한다. 궁금한 것도 많다. 내 의견도 자주 물어본다. 여태 기다려준 게 미안했다. 어제는 늘 자기 전에 둘째에게 했던 말, "그만, 이제 자자."라고 말하지 않았다. 아이는 신이 났다. 평상시도 입을 열면 한 시간을 떠드는 녀석이다. 몇 시에 잤는지도 모르겠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엄마 노릇이다. 아이와 잠자기 전에 이야기 하기.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고 할 수 없는 건 포기한다. 내가 포기하는 것들이 회복이 가능한 건지 불가능한 건지를 판단한다. 가끔은 회복이 불가능한 것일지라도 그 상황에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이었다면, 그걸로 신세 한탄하지 않는다. 우리는 각자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나는 아이를 방치했지만, 그게 당시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 일로 나를 원망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니 자책하지 말고, 너무 미안해하지 말자.


한 줄 요약 : 그냥 good enough mother로 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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