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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Oct 17. 2022

우리 아이 자사고 자소서 쓰기

우리 아이 사랑만 있으면 된다.

자기주도란 없다. 타의주도만 있다.


우리 아이 자사고 자소서 쓰기 - 1번 항목 자기주도적 학습


채용 담당만 몇 년인데, 우리 아이 자소서쯤이야?라고 생각했다가, "2023 합격하는 특목고, 자사고 자기소개서와 면접"을 읽고 그냥 컨설팅에 맡기기로 했다. 이 책에 나오는 샘플들을 보면, 저 정도 수준의 자소서를 쓸 수 있는 아이들이면 대학에 가서 그냥 수업을 들어도 될 것 같았다. 나도 아직 안 읽은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감동 깊게 읽었다던가, 영어 토론대회에 나갔다던가, ***을 주제로 자율동아리를 만들어서 탐구보고서를 작성했다고 한다. 속으로 생각했다. '대단한 아이들이군.' 


우리 아이는 뭘 했나? 판타지 웹소설을 읽고 세계관에 대해 동영상을 찍어 밴드에 올렸으며, (밴드에 자기 혼자 있음), 양서를 몇 권 읽긴 했으나, 선생님에게 말을 하지 않아 독후감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1학년 때 몇 번 내라고 닦달을 하니 한번 내고, 그 이후에는 아마도? 안 냈을 것이다.


아이는 컨설팅 현재 3회의 수업 중 1회를 참석했는데, 자소서 마감기한인 지난주 수요일까지 노트북을 바라보며 두어 시간 멍하니 있다가 컴퓨터 전원 끄기를 반복했다. 이러다가 어느 세월에 저걸 쓰나?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자기가 써야 면접을 볼 때 답을 할게 아닌가 싶어 놔뒀다. 그러다 토요일 저녁 도저히 못 참고, 저녁밥을 먹이자마자 아이를 데리고 카페로 갔다. 과외선생님이 아이가 자소서 때문에 괴로워하며 숙제를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한다. 이제 곧 시험인데 왜 하필 자소서냐고 이분도 하소연이다.


내 이놈, 내 이걸 오늘 끝을 보리라. 질질 끌고 있으면 마음만 불편하지. 하루 이틀 더 미뤄둔다고, 그 사이에 아이가 짜잔 하고 글을 완성할 것도 아니다. 차라리 서투르고 부끄럽더라도 일단은 쓰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피드백을 받든 말든 할 것이 아닌가?


자기주도적 학습이 내가 아는 자기주도적 학습이 아니었다.


아이는 1학년 때 '자기주도적 학습' 코칭 수업을 나와 같이 받은 적이 있다. 장장 3개월을 매주 화요일이었나? 반차를 써가며 아이와 같이 스케쥴러 작성법, 예습, 복습법, 교과서 활용법 등을 배우고 스케쥴러, 노트 정리를 피드백받았다. 이걸 아이가 배워야지 엄마가 왜 배우나? 싶은데, 코칭을 진행하는 쪽에서는 엄마가 가운데 끼어야 아이를 '닦달'? 할 수 있어서, 꼭 부모 중 한 분과 같이 오라고 하는 것 같았다. 


아이에게 너 그때 한 반년 스케쥴러 썼잖아? 그거 써보지 그래?라고 했더니 아이는 시큰둥하게, "요새는 그렇게 안 해. 자기주도적으로 학습하는게 스케쥴러 쓰고 예습, 복습하는 게 아니야."라고 한다.

"그럼 뭔데?"라고 되묻자, 아이는 "내 진로와 관련해서 흥미를 느낀 분야가 있으면 그걸 주도적으로 내가 탐구해야 하는 거야."라고 대답한다.


과거형이 아닌 미래완성형 스토리라인


"알겠어. 여기에 왜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래서 네가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일단 키워드 만이라도 여기 포스트잇에 적어봐."


나는 포스트잇에 아래 3가지를 정리해보라고 시켰다.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

해당 진로를 선택한 이유

이와 관련하여 내가 한 활동들

<출처 : Pixabay>

"네가 한 게 있어?" 물어보니, 아이는 "이제부터 할 거야."라고 대답한다. 이제부터 준비해서 자소서 내기 전까지 마무리가 가능한 건가? 

부랴부랴 얼마 전 브런치 지인이 알려준 환경 독후감 공모전을 찾았다. 바로 책을 주문했다. 아이는 일단 읽은 걸로 가정하고 여기 낸다고 쓰자고 한다. 아이는 수의대에 진학하는 게 꿈이고 독서목록에는 코로나 19(인수공통 감염질병)에 관해 언급된 책이 있었다. 


아이는 거의 한 시간을 넘게 키워드로 헤매다 30분 넘게 종이에 끄적이다, 겨우겨우 문서로 옮겼다. 카페 사장님이 곧 문닫는다고 친히 우리 자리까지 오셨다. 8시에 나갔다가 10시 넘어 돌아왔다. 그 난리를 쳤는데 여전히 글자수가 모자르다. 하긴 한 일이 있어야 글자수를 채우지. 


한 줄 요약 : 아이야, 일단 뭐라도 쓰거라. 써야 피드백을 받든 뭘 하든 할게 아니니. 그런데 대게는 이미 한 일을 가지고 쓰지 않니? 미래에 할 일을 가지고 쓰는 건 아닌 것 같다. 미래 완성형으로 쓰려면, 네가 하기로 한 그 일들을 11월까지는 다 끝내 놔야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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