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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Oct 30. 2022

바디프렌드가 주는 위로

사람 사는 이야기

바디프렌드가 나보고 수고했대. 그런데 눈물이 나.


오랜만에 점심을 같이 한 선배, 바디프렌드 명상 메시지를 듣다가 눈물이 나왔다고 한다.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무도 나한테 오늘 하루 잘 살았다. 수고했다 말 건네는 사람이 없는데, 기계가 나를 위로하는구나. 순간 울컥했다고 한다. 결국 눈물이 흘렀다.


선배 이야기에 어떤 영화감독이 쓴 에세이가 생각났다. 제목은 '호호호'다. 부제는 '나를 웃게 했던 것들에 관하여'인데, 제목처럼 나를 웃게 했던 것들에 대한 단상들이 담겨있다. 책에는 아무도 모르고 넘어간 생일날 벌어진 에피소드가 있었다. 생일날, 아무도 나한테 축하한다고 말을 건네지 않는다. 서프라이즈인가? 아니면 내 생일인 줄 모르는 건가? 엄마도? 설마 그럴 리가 있나? 반신반의 하지만 영 오늘이 무슨 날인지 모르는 것 같다. 그러다 아빠가 쓰레기 통을 하나 사들고 오는데, 지은이는 그 쓰레기통이 자기 생일 선물인 줄 알고 냉큼 가져간다. 잠시 후, 아빠는 진지하게 쓰레기통을 돌려줄 것을 요구한다.

누구도 몰라주는 외로운 생일날 아빠한테서 괴상한 쓰레기통을 갈취해놓고 넋 나가 있는 사람은 세상에 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도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인데. 이 일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냐고. 이건 정말 해도 해도 너무 우…… 웃기잖아하 하하하하…….(중략)
잠시 후 씻고 나온 아빠가 일단 그 쓰레기통은 돌려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빠는 정말 진지했고, 나는 이제 웃다 기절할 지경이었다. 진짜 웃겼다. 세상에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웃기는 날이 또 있을까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더 웃겼고, 자꾸 웃으니까 속이 뻥 뚫린 듯 시원해졌다. 아침에 눈 뜨고 처음으로, 몸도 마음도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중략)
그러니까 나는 올해도 내가 직접 나서서 내 생일을 축하할 거다. 온몸과 마음을 다 바쳐, 내가 나를 제일 많이 축하할 거야!
<출처 : 호호호, 지은이 윤가은>
<출처 : Pixabay>

선배한테 한 가지 제의를 했다.

(나) "내년에는요. 꼭 연차를 내요. 가족을 위한 연차가 아니라 나만을 위한 연차요. 그리고 호텔에 반나절만 있어요. 요새는 1일 오피스처럼 사무공간으로 사용하라고 빌려주기도 한데요. 집에 있으면, 여기저기 치울 거 보이잖아요?"

(선배) "그거 왜 그런 줄 알아? 집으로 출근해서 그래. 집이 쉬는 공간이 아니라, 집안일 하는 공간인 거야."

(나) "그러니까 선배도 꼭 하루만 쉬어요. 카톡도 끄고요."

(선배) "그러게. 주변에 그렇게 사는 사람이 있거든. 난 신기해. 저렇게 훌쩍 떠나서 며칠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고 와도 되는 건지. 그런데 본인은 굉장히 행복해 보이더라."

(나) "며칠 말고 하루 아니면 반나절만요. 어차피 눈에 밟히는 게 많아서 오래 있지도 못할걸요?"

 

이렇게 말하고 하나 다짐을 했다. 지금도 큰 아이가 과외를 하는 시간을 충분히 자유롭게 보내고 있지만, 집에 있지는 않으리라. 눕지 못하는 게 아쉽지만, 꼭 커피숍을 가리라. 가서 책을 읽던, 글을 쓰던, 아무것도 안 하고 창가에서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을 구경하건, 나 '혼자' 있으리라.


한 줄 요약 : 바디프렌드가 수고했다는 말에 울컥하는 당신, 정말로 수고했습니다. 그러니 이제 좀 더 '나'를 챙겨봐요. 온 몸과 마음을 바쳐서요.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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