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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Oct 26. 2022

그녀가 옷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

사람 사는 이야기

엄마는 옷을 버리지 못한다.


엄마는 옷을 버리지 못한다. 옷뿐만이 아니다. 아무것도 버리지 못한다. 몸 하나 뉘이면 꽉 차는 그 공간에, 몸체가 두꺼운 옛날 티브이, 비디오테이프, 30년이 더 된 라디오까지 당당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빨지도 않고 쓰지도 않는 이불도 10채는 다. 이불은 오래돼서 퀴퀴한 냄새가 난다.


대학 때 나는 큰 마음을 먹고 집안에 옷들을 정리했다. 안 입는 옷들이 100리터 쓰레기봉투로 열 포대 가까이 나왔다. 엄마는 20대 입었던 옷들까지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살이 쪄서 입지도 못하는 옷들이다. 한 때 미인대회를 나가셨던 엄마는 나를 낳고 급격하게 몸이 붓더니, 거의 100킬로 가까이 살이 찐 적도 있었다. 몸조리를 제대로 못한 데다 피곤하니 일단 먹고 애써 기운을 내셨던 게지. 그게 다 살로 가지 않았나 싶다. 그 당시에도 엄마는 꽤 뚱뚱했고, 지금도 뚱뚱하시다. 엄마한테 옷들을 버려도 되는지 물어보면 못 버리게 할 게 뻔했다. 나는 옷들로 그득한 방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대학 때 잠시 엄마는 나와 따로 살고 있었는데, 나는 이때가 기회다 싶어서, 옷들을 몰래 버렸다.


 며칠 끙끙대며 100리터 쓰레기봉투에 옷을 꽉꽉 채웠다. 하필 마지막 날 엄마에게 들켰다. 당시 우리 집은 비좁은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길 옆에 있었다. 100리터 쓰레기봉투는 집 앞에 내놓을 수가 없어 공터에 따로 내놨던 걸로 기억한다. 엄마는 내가 버린 쓰레기봉투를 다시 낑낑거리며 끌고 왔다. 그때 엄마가 했던 말이 잊히지가 않는다.


"내 평생 가진 거라곤 너랑 옷밖에 없는데, 어떻게 옷을 버리냐."


엄마는 일단 공짜라면 다 들고 온다. 심지어 남이 재활용품으로 내놓은 물건도 가져온다. 가격이 싸면 그게 필요 있는지 없는지를 고려하지 않는다. 언젠가 쓸 일이 있을 수 있다며 일단 산다. 믹스커피를 담았던 종이컵도 여러 번 재활용한다. 본인 공간에 놓을 수가 없으니 우리 집에도 들고 온다. 하나를 사면 하나를 버리는 남편과, 엄마 따라 물건을 모으는 기질이 있었지만 남편 덕에 그나마 정리라는 걸 하는 나는 엄마가 이럴 때마다 어쩔 줄을 모르겠다. 화를 내도 소용이 없다.

<출처 : Pixabay>
엄마가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


엄마는 왜 버리질 못할까? 가족들 모두 힘들어하는데. 어린 시절 할머니와 나는 방이 좁아 발을 펴고 잘 수 없었다. 한쪽에는 커다란 장롱이 하나 있었다. 그 장롱을 치우면 할머니랑 내가 다리를 펴고 잘 수 있었다. 방에 절반을 장롱이 차지했지만 장롱을 버리지 않고 이고 살았다.


불안한 마음 & 에너지 고갈

물건을 쌓아두는 사람들은 남들보다 불안함을 많이 느낀다고 한다. 불안하니 이것저것 모아서 대비한다. 사는 공간이 우선인데, 무엇이 중요한지 판단할 여력도 없고, 일단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낫겠지 싶으니 다 모아둔다. 막연한 생각이다. 이건 욕심이랑은 조금 다르다. 깊게 생각할 여유가 없어 생기는 문제다. 인생에서 중요한 판단을 할 때는 심사숙고를 해야 한다. 확실한 출처를 통해 다양한 관점에서 정보를 모으고 맥락을 확인하기 위해 그 분야 전문가를 찾아서 이야기를 듣는 과정이 필요하다. 엄마는 단편적인 정보를 믿고 판단하는 경우가 있었다. 예를 들어 땅을 보지도 않고 계약을 해서 사기를 당한다던가, 같은 사람에게 또 사기를 당한다던가 하는 일이다.


한 번은 왜 그러셨는지 물어봤다. 엄마는 "그래도 사람은 믿어야지."라는 두루뭉술한 말을 하셨다. 그때는 '믿을 사람을 믿어야지.'라는 말을 할 정도로 내가 세상 경험이 있지도 않았다. '그래도 사람은 믿어야 한다.'는 당위가 미심쩍긴 하지만 말 자체는 바른말이라 어찌 대꾸해야 할지 몰랐다. 당시 엄마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없었던 게 안타깝다. 바르고 성실하게 살았지만 어떤 계기로 미끄러져 버린 사람은 다시 궤도를 찾기가 쉽지 않다.


조던 피터슨의 12가지 인생 법칙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생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사람은 경계심을 유지하기 위해 정신적 에너지와 체력이 빨리 소모된다. 모든 걸 혼자 처리해야 한다는 사람은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 모든 사태에 대비해야 하고, 미래를 위해 남겨둬야 할 에너지까지 써버 린다. 착한 사람들은 몇 가지 두루뭉술한 격언을 지침 삼아 세상을 살아가지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애초부터 남을 해치려고 작정한 사람은 이처럼 순진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먹잇감으로 삼는데 능하기 때문에 이런 믿음은 자신을 괴롭혀 달라고 악마를 불러들이는 초대장이나 다름없다."

차라리 약았어야 했는데 그렇지도 못하고 무식하게 성실했던 엄마가 안타깝다.


바쁘고 불안한 마음에 대한 통제 욕구

소유를 했다는 건 그게 자기 꺼라는 뜻이다. 내 거면 내가 좌지우지할 수 있으니, 소유 자체에 집착하는 게 아닐까? 소유 = 통제, 이런 공식이 성립한다. 마음이 바쁘니 무엇이 더 중요한지 판단할 새도 없이 물건만 쌓아둔다.


허전함을 채우고 싶은 욕구

세상에 내가 가진 게 나와 옷 밖에 없다. 이 말에서 나는 어쩌지 못하는 외로움을 느꼈다. 가진 게 없으니 뭐라고 들여서 마음속 빈 곳을 채우고 싶었나 보다. 물리적인 공간을 채우면, 심리적인 위안이 된다. 순간이나마 물건에 대한 기대가 생기고 찰나지만 그 기대가 충족되는 순간 행복하다.

<출처 : Pixabay>

한 줄 요약 : 버리지 못하는 마음은 불안한데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어서다. 어쩌면 물건으로 허전함을 채우고 싶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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