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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Nov 04. 2022

권력자는 진심이 중요하지 않다.

회사란 말이지

진심이 아니어도 잘하면 그만


10년 전인가? 잘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이전에 다녔던 회사 전무님은 저에게 이런 말을 했어요.

"넌 다 좋은데, 불의를 못 참아."

전 의아했습니다. 전 불의를 잘 참거든요. 좋은 게 좋은 거다 하는 편이라고 여기고 살았는데, 이 무슨 뜬금없는 말인가 했어요. 어찌 보면 고마운 분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솔직하게 하는 사람은 드물거든요. 어쩌면 자기에게 잘하라는 의미일 수도 있지요. 제가 눈치 없이 군 게 있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전 궁금했어요. 윗분들은 진심이 아니어도 자기에게 잘하면 좋아하더라고요. 제가 보기엔 그랬습니다. 영업 파트에는 비서처럼 일을 하는 과장님이 한분 계셨어요. 하루에 30분~1시간씩 복도에서 전화통화를 하던 분이셨지요. 한 번은 저희 부장님이 그 부서 대리님에게 물어봤어요.

"맨날 어디 그렇게 전화를 하는 거래?"

"어린이집이요."

"그 어린이집은 저 전화를 30분 넘게 저 전화를 받는 거야?"

(웃으며), "네"

우리는 이런 사람을 진상이라고 부르죠. 자기 자식은 소중하지만, 그분이 그리 전화하는 동안, 어린이집 원장님 또는 선생님은 아이를 돌보지도 못하고, 스트레스받으며 꼼짝없이 전화에 매달려야 하니까요.

일 미루기 대장이기도 했어요. 명절 선물 리스트 작성이 본인 담당인데, 이런 건 인사에서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동갑인 저에게 미루지는 못 하고) 저희 부서 대리에게 몰래 시켰더라고요.  대리는 차마 어디 말도 못하고 그 일을 하다가 저에게 우연히 들켰습니다. - 도대체 거래처 명절 선물을 왜 인사부서에서 작성해야 하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는데 그분이 일을 넘긴 논리는 '너희들이 사람들을 잘 아니? 명절 선물 리스트를 작성해라.'였다고 합니다. 내부 직원이랑 외부 거래처가 같나?라는 의문이 들었는데요. 다툼을 싫어했던 부장님은 그냥 넘어갔습니다.


이분이 유일하게 자기도적으로 하는 게 있으니, 위에 상사를 챙기는 일이었습니다. 개인 비서인 줄 알았어요. 자기 일은 대강하고 그분 대소사는 열심히 챙겼습니다. 그리고 여직원들 사이 헤게모니의 중심으로 군림했습니다. 저와 대놓고 다툰 적은 없었지만, 티 안 나게 서로 싫어했지요.


전 연봉 이의제기를 한번 한 적이 있습니다. 같은 직급인데, 왜 나는 이리 열심히 일하고 과장 밴드 최하를 받고, 영업 파트 과장은 최고 밴드를 적용하는지 의아했거든요. 어떻게 자기 일에 저리 펑크를 내고도 고과는 항상 S인가! 나는 잘 받아야 A인데, 이 사람은 탁월한 무언가를 했단 말인가!


권력이 영원하리라는 착각


나이가 들면서 깨달은 게 있어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그 사람이 진심으로 자신에게 잘하건 그렇지 않건 그게 중요하지가 않아요. 그냥 잘하면 그걸로 된 거예요. 자신이 권력을 놓칠 일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겉으로만 잘하는 건지 아닌지를 구분할 이유가 없어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재해석한 책 <휘둘리지 않는 힘>을 읽었습니다. 리어왕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막내 코딜리어는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냐는 질문에, 퉁명스럽게 대답해요. 자식이 아비를 사랑하는 도리로 사랑한다고 합니다. 언니들이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사랑한다. 아버지의 사랑 속에서만 기쁨이 있다고 대답한 것과 대비됩니다. 리어왕은 위 두 언니들에게는 비옥한 땅을 내리고 막내는 빈손으로 쫓아냅니다. 코딜리어는 그녀가 가진 게 없어도 좋다고 한 프랑스 왕과 결혼을 하고, 후에 리어왕이 두 언니들에게 쫓길 때 프랑스 군대를 이끌고 아버지를 돕다 숨집니다.


리어왕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전에 전무님이 했던 말이 다시 생각났어요. 그분은 자기 권력이 영원하리라 믿었을까요? 아마 아닐 겁니다. 막연하게나마, 지금 이런 대접도 자기가 이 자리에 있는 동안이란 걸 알았을 겁니다. 생각하고 싶지 않았을 거예요. 아랫사람이 진심인지 아닌지 신경 쓰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많으니까요. 그냥 나에게 잘하면 그만입니다.


한편, 해외출장을 같이 간 본부장님이 계셨어요. 이분은 회의 발표자 중에 하나였는데요. 출장 신청서 올리는 법 등을 상세하게 물으시더라고요. 같이 가신 차장님이 아래 서무 담당하는 직원을 시키라고 이야기하셨어요. 그때 본부장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난 이런 거 내가 직접 다 해. 내가 이 자리 언제까지 있을 줄 알고."

그분은 발표 자료도 진심으로 만드셨고, 자랑스럽게 발표를 마치셨습니다.


권력을 가진 자, 저와는 거리가 먼 말이지만, 만약 내가 어떤 위치에 오르더라도, '나에게만 잘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가지진 않겠다. 개인적인 일을 아래 직원에게 미루지 않겠다 생각합니다. 이제 후배들이 들어오면서, 이런 건 좀 시키라는 꾸지람을 듣기도 하지만요.

<출처 : Pixabay - 영원한 것은 없다.>

리어 왕은 진심을 듣고 싶어 했을까. 오랜 기간 절대 권력자로 살아온 리어 이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까지 고려해야 하는 입장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진심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건 언제나 아랫사람, 약한 사람,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들뿐이다. 리어 왕 같은 사람은 진심에는 관심이 없다. 그냥 자기가 낸 문제에 대해 ‘정답’을 듣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이 위에 있는 조직의 구성원들은 누군가 진심을 말하면 불편해지고, 그냥 정답을 말해버리면 모두가 편안해진다.

<출처 : 휘둘리지 않는 힘, 지은이 김무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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