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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Nov 15. 2022

사전에 가늠해보기 - 건조기의 지혜

사람 사는 이야기

당일 빨래에 건조까지 go go


휴가를 냈다. 엄마 난청 전문 병원을 모시고 갔다가 집에 들어오니 시간은 어언 5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당일 빨래를 돌리고 건조까지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사하면서 일부러 통돌이 세탁기로 바꿨다. 통돌이 세탁기는 빨래가 빨리 될 줄 알았는데, 워낙 한 번에 많은 양을 돌려서 인지 한 시간 반은 걸린다. 건조는 더 오래 걸린다. 적어도 2시간 반에서 3시간을 돌려야 한다. 오래 걸리다 보니 세탁기 돌린 건 안 잊어버리는 데 건조기는 종종 까먹기도 한다.


건조기가 건조 예상 시간을 가늠하더라.


이따 시간 맞춰서 빨래를 꺼내놔야지. 건조기 알림판에 예상 시간이 뜨기를 기다렸다. 빨래가 돌아간다. 한번 돌고, 두 번 돌고, 계속 돈다. 열 번은 돌았나? '이거 왜 이리 오래 걸려?' 그제야 예상 건조시간이 뜬다. 예상시간 2시간 30분. '아이들 밥 준비하고, 글 한편 쓰고 나면 얼추 맞겠군.'


매번 건조기에 빨래를 넣고 동작 버튼을 누르고 휙 나왔다. 예상 건조시간이 뜰 때까지 기다려본 적이 없다. 급한 성격 탓이다. 평일에는 건조기에 빨래를 넣고 그다음 날 아침에 꺼내고, 주말에는 아침에 빨래를 돌린 후 저녁 즈음 꺼내니, 건조기 알림판 제대로 봤을 리가!


건조기도 예상 시간을 알려면, 10번은 통을 돌려야 하는구나! 그래야 빨래 양이 어느 정도 인지, 빨래가 물을 많이 먹었는지 알 수 있구나! 나야 늘 표준 모드지만, 옷감에 따라, 상할까 가볍게 돌리는 빨래도 있고, 력한 건조 기능으로 스피디하게 말려야 하는 빨래도 있다. 건조기도 나름 간을 봐야 한다. 간을 보려면 몸통을 열 번은 굴려봐야 한다.


우칭(Ooching) 해볼까?


히스 형제의 저서 <후회 없음>은 현명한 선택을 하기 위한 방법으로 '우칭(Ooching)'을 제안한다. 우칭은 큰 가설을 시험하기 전에 여러 번 작은 실험을 시도하는 것을 말한다. 큰 실험을 하기 전에 작게 실험을 해보고 관찰을 하면 실전에 임했을 때 사건이 어떻게 흘러갈지 감을 잡을 수가 있다.

ex) 뉴욕 시립대학교 헌터 칼리지는 물리치료사가 일하는 모습을 100시간 이상 관찰한 경험이 없는 학생을 물리치료사 양성과정에 받지 않는다.

<출처 : Pixabay>
자기확신과 확증편향

사람들은 '우칭'을 잘하지 않는다. 이 분야는 내가 잘 안다는 자기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가 일반일들 보다야 더 잘 맞추긴 하지만, 그들도 그리 우수한 성적은 아니다. (예측도는 기저율 > 전문가 > 초보자 순으로 높았다.) 자기확신은 확증편향으로 굳지고 확증편향은 잠정적인 결론을 뒷받침할 정보만 모으게 만든다.


사안의 경중과 귀차니즘

사안이 중요하지 않다면야, 일이 틀어져도 수습하면 그만이다. 굳이 작은 실험을 해가며 가늠할 필요를 못 느낄 수도 있다. 테스트가 시간 낭비, 돈 낭비다. 일의 경중을 따져 테스트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현명하다. 고민 끝에, '테스트를 해보는 게 낫다.'라고 결론을 내렸어도 난관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귀차니즘이다. 머릿속으로는 해야 함을 알지만 일단 귀찮다. 하기 싫은데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일도 이미 많기 때문이다.


건조기를 본받아야지.

중대한 발표를 앞두고 미리 내가 할 발표를 시연해보기

미래 인테리어 업체 사장이 되기 위해 인테리어 업체에 들어가 막일부터 시작해보기

수의사가 되기 위해 유기묘를 돌보는 단체에서 봉사활동해보기


실전에 강하고, 적응력 좋아 작은 테스트가 필요 없는 사람이라면야 무슨 걱정이랴. 대부분 우리는 실수가 많은 인간이다. 어떤 실수는 회복이 가능하지만 어떤 실수는 회복이 불가능하거나 회복에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스트가 찮기야 하겠다만, 안 귀찮은 게 어딨겠나? 소하게는 회사 발표에서 크게는 미래의 직업까지, 간을 보고 시작해보는 게 후회가 없지 않을까?


한 줄 요약 : 건조기도 간을 본다. 사소한 일이라면야 그냥 하면 그만이겠다만, 나에게 중요한 일이라면 미리미리 간을 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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