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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Nov 25. 2022

한 달의 휴가, 심지어 돈도 주어졌다면?

사람 사는 이야기

시간과 돈이 있다고 자유로운 게 아니다. 육아에서 자유도 필요하다.


아침에 @에너지드링크 작가님이 건넨 질문이다.

한 달의 휴가, 심지어 돈도 주어졌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고 싶나?


시간과 돈, 우리를 구속하는 대표적인 두 가지다. 이 두 개에서 해방이 된다면, 나는 내가 상상하는 대로 살 수 있을까? 내 뜻대로 사는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워킹맘이 자유로우려면, 시간과 돈뿐만이 아니라 한 가지 더 필요하다. 육아에서 해방이 되어야 한다. 여기에 추가로 가족들은 알아서 잘 살고 있다는 전제 조건을 덧붙이자. 내가 없는 한 달 동안 어디 아픈데 없고, 아쉬운 거 없이 잘 지내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나도 걱정 없이 진짜 자유롭게 내 마음대로 한 달을 즐길 수 있을 테니까.


문득 생각이 났던 그때 그 시절


샌프란시스코를 한번 들려보고 싶다. 롬바르드 스트리트에서 사진을 찍고 커피숍에서 커피를 한잔 주문한 뒤 평상시에는 거들떠도 안 본 시집을 읽겠다. 트램을 타고 내려가, 베이에 이르면, 길에서 파는 클램 차우더 수프를 서서 먹을 것이다. 판자 떼기 위로 올라가 있는 물개 구경을 하면서 바다 바람을 맞고 공원을 돌아 다니겠다. 운이 좋아 벼룩시장이 열린다면 신나서 구경을 하면서 기념품 몇 개를 고를 테다. 스노볼이면 좋을 것 같다. 다시 시내로 돌아가는 트램을 탄다. 아이폰 매장 건너편에 있던 서점에 가서, 서점 주인에게, 아멜리 노통브 책 새로 나온 게 있냐고 물어보고, 그녀와 잠깐 수다를 떨겠다. 저녁이 오면, 레드 와인이 아닌 로제 와인에 피가 살짝 맺힌 스테이크를 먹을 것이다.


그다음 날에는, 새로 나온 공연이 없나 찾아볼 테다. 오페라의 유령도 좋고 시카고도 좋고, 공연 하나를 보겠다. 지하철을 타고 스탠퍼드 대학에 가서 잠바 주스를 마실 테다. 교정을 돌아다니는 청솔모를 보고 사진도 찍고, 후버 맨 교수님이 근무하는 연구실이 어딘지 장난 삼아 찾아본 뒤 그 주변을 얼쩡거리겠다. 우연히라도 교수님을 발견한다면 부리나케 좇아가,

"당신 이에요. 당신이 제 인생을 바꾸셨습니다."를 외치겠다.

부담스러워하려나? 그런 기미가 보인다면 소심하게 "사진 한 장만 찍어도 될까요?"로 마무리하련다.


저녁에는 치즈케이크 팩토리에 가겠다. 뉴욕 치즈케이크 한 조각을 먹고 냅킨에 한국어로 가족들, 친구들 이름을 쓴다. 사진을 찰칵 찍어서 카톡으로 전송한다.

"엄마, 잘 지내고 있어."

"케이크가 맛있어서 생각났어."

"보고 싶네. 건강하지?"

이제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밴쿠버로 넘어갈 차례. 밴쿠버에 살고 있는 고등학교 시절 베프를 만나, 오빠가 추천해준 일식집에서 맛있는 초밥을 먹는다. 친구네 콘도로 가서 집 구경을 하고, 한국 면세점에서 준비한 선물을 아들내미들에게 주리라. 큰 아이는, 헤드셋, 나이 터울 많이 나는 막내는 레고다. 저녁에 오빠가 퇴근을 하면 다 같이 술 한잔을 나누리라...


시간이 남는다면 시애틀에 들려야지. 내려가는 길에 아웃렛에 들려, 엄마에게 어울리는 버버리 코트를 하나 사겠다.


싱가포르에 가고 싶다. 내 젊음을 불태웠던 쥬크.... 가 잘 있는지 궁금한데, 과연 들어갈 수 있을지 걱정도 된다. 동기 언니들이랑 몸 풀고? 나와서 갔던 식당도 생각난다. 그때는 무서워서 개구리 수프를 못 먹었는데, 한번 다시 도전해볼까? 개구리 살아생전 모습 그대로 엎드려있어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껍질만 벗겼을 뿐...

하우스메이트 고모도 잘 있는지 궁금하다. 인사드리러 가야지. 한국 사람들이 보고 싶어서 그랬는지. 한번 놀러 가면 새벽 4-5시까지 수다를 떠셨다. 정이 많았던 만큼 외로움도 많이 타셨던 고모도 보고 싶다.

과거는 추억 필터로 보정된다.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다. 난 과거의 어느 한 시점을 다시 살고 싶은가 보다. 과거를 회상하면 빨리 늙는다던데, 그 시절만큼 자유로웠던 때가 없었다.


다시 20대로 돌아갈 거냐고 묻는다면, "아니오."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을 만큼, 그때보다 지금에 만족한다. 그때는 어렸다. 내 기준이 없었다. 남의 말에 휘둘렸고, 마음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 세상을 조금 더 산 지금은 그게 부질없다는 걸 안다. 진심으로 그때 그 사람들이 잘 살기를 바란다. 나와 무관하게.


다만, 그 시절 내가 누렸던 자유만큼은 그립다.

<출처 : Pixabay>


한 줄 요약 : 만약 당신이 시간과 돈을 비롯한 모든 제약에서 자유롭다면, 당신은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싶은가요? 전 과거의 어느 한 시점으로 돌아가 자유롭던 일상을 다시 살아보고 싶습니다.

모든 게 지금보다는 천천히 흘러가고, 조금은 더 다정하게 느껴졌던 그때가 되살아나는 기분이 든다. 물론 그 시절을 다 지나와 비로소 안전한 자리에 이르러 추억하게 된 입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인지도 모른다. 실제 그 시절을 무사히 살아내는 건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니었으니깐.

<출처 : 호호호, 윤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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