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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Dec 08. 2022

등 뒤로 들리는 전화 통화에도 마음이 흔들린다.

회사란 말이지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나왔다.


기분은 내 몸상태에 좌우된다고 생각해서, 컨디션 관리에 신경을 쓰는 편인데, 요 며칠은 이상하게 애써 잠을 자려고 해도 잠이 오지 않았다. 평온해지려 노력하는 내 마음과 달리, 내 마음 밖이 소란스러운 탓이다.

일단 일이 많았다. 지금 바쁜 거 뻔히 알면서 인간적으로 너무한 거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기도 한다. 저 사람은 일을 못한다는 이유로 일을 안 준다. 저 사람은 뭐 하나 시키려고 하면 툴툴거리니 일을 안 준다. 분명 저 부서 일인데, 그 사람이 일을 할 사람이 아니니 나보고 하란다. 이 무슨 해괴한 논리인가? 나도 나이가 들었다. '적어도 이건 네 일이었어.'를 알려주고, 마무리를 한다.


결국 이게 문제였다. 그 일이 하기 싫었다. 억울했다. 억울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그 일을 처리하는데 드는 품은 담당자과 관계부서 통화, 보고서 작성까지 대략 1.5시간이면 충분한 분량인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처음이야 1.5시간이겠지. 이건 연속되는 일이다. 게다가 한번 이렇게 넘어가면 이런 일이 반복된다.


걸걸한 목소리의 남자


기운을 차리려 커피숍에서 빵 하나를 베어 물었다. 커피도 한 모금 마신다. 이제 명상을 시작해볼까? 했는데 뒤에서 걸걸한 남자 목소리가 들린다.

"사장님, 내가 형사고소합니다. 못할 것 같아요? 그거 주거 침입이에요. 벌금 천만 원이에요. 사람 우습게 보는 모양인데, 내가 말했죠? 난 분명한 사람이라고. 그냥 안 넘어가요."


속으로 들었던 생각, 세입자가 집주인이랑 싸우는 건가? 혹시 월세를 미납해서, 집주인이 문 따고 들어갔나? 한때 재테크를 배워보겠다고 부동산 관련 책을 읽으면 이런 사례들이 있었다. 집주인이 버티고 안 나가는 세입자 때문에 결국 문을 땄는데 주거 침임으로 고소당했다는 식의 이야기다.


'아~ 듣기 싫다. 거친 말투, 화난 목소리.'

내 평화를 빼앗긴 느낌이었다.


왜 굳이 나를 설명하지?


이분은 억울한 마음에 일부러 다른 사람도 들으라는 듯이 말한 게 아니었을까? 걸걸한 목소리 남자는 커피를 받더니, 사장님에게 한마디 한다.

"제가 기가 막혀서, 저 사는 집에 문을 따고 들어와서 전기를 썼어요."

헛... 세입자와 집주인 사이 대화가 아니었나 보다.


문을 따로 들어오는 수고가 남의 전기를 쓰는 이익보다 클 것 같은데, 뭔 전기를 얼마나 쓴 건가? 그리고 왜 남의 집 전기를 쓰는 건가? 내 머릿속은 무슨 일인지 추측하기 시작한다. 이 남자는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이런 억울한 일이 있다를 말하고 싶은 거겠지. 걸걸한 목소리 남자는 사장님께 투덜거렸고 사장님은 위로를 해주신다.


"에구... 어쩐디야..."

이런 위로를 받고 싶어서 아저씨는 일부러 이 새벽(오전 6시 반)에 굳이 이 커피숍에서 전화통화를 하는 거겠지. 상대방에게 그 시간에 전화를 하는 것도 놀랍긴 하다.


네 마음은 알겠다만... 듣고 싶지 않아요.


일 시키는 사람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위에서는 검토를 하라고 했고, 검토 사항을 던진 사람은 회사에서도 일 안 하고 아부만 하기로 유명한 사람이다. 잘되면 자기 공이지. 결국 일은 내가 할 테고. 그걸 뻔히 아니 화가 난다. 못한다 쪽으로 보고서를 쓰려고 머릿속을 굴린다.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빠져나가지? 위에서는 대박 아이디어라고 좋아하던데, 그래. **** 이유로 이런 건 안된다고 하자. ****에 목숨 거는 사람들이니까. 이런 식으로 대강 방향을 잡는다.


등 뒤에 남자, 결국 이런 식으로 위로를 받고 싶은 거다. 사장님도 손님이니 할 수밖에 없는 뻔한 위로를 건넨다. 사장님도 곤욕스럽지 않을까? 손님은 굳이 그 위로를 받고 싶은 건지 궁금해진다. 나는 이 분이 일부러 들으라고 통화를 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장님에게 전화 통화 내용을 굳이 설명할 이유가 없다.


이 글 역시 이기적이다. 나는 내 정신없음을 하고 싶은 거니까. 결국 다 자기가 중심이다. 일 시키는 사람은 남에게 요만큼도 듣기 싫은 소리를 하거나 듣고 싶지 않아 만만한 부하를 잡는 거고, 커피숍 사장은 상대방이 손님이니 내용은 모르는 상태로 상대방이 원하는 위로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걸걸한 목소리 남자는 나 억울하다를 만방에 토로하고 싶다.

<출처 : Pixabay>

줄 요약 : 내면의 평화는 외부에 좌우되지 말아야 하는데, 어찌 이리 쉽게 흔들리나?


경지에 오른 사람도, 탁월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다산은 <수오재기>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대체로 천하의 만물이란 지킬 것이 없으니, 오직 '나'만은 지켜야 한다. 내 밭을 지고 도망갈 자가 있는가. 밭은 지킬 것이 없다. 내 집을 지고 달아날 자가 있는가. 집은 지킬 것이 없다. 나의 정원의 꽃나무, 과실나무를 뽑아갈 자가 있는가. 그 뿌리는 땅에 깊이 박혔다. 나의 책을 훔쳐 없애버릴자가 있는가. 성현의 경전은 온 세상에 퍼져 물과 불처럼 흔한데 누가 능히 없앨 수 있겠는가. 나의 옷과 식량을 도둑질해 나를 궁색하게 하겠는가. 천하의 실이 모두 내가 입을 옷이며, 천하의 곡식은 모두 내가 먹을 양식이다. 도둑이 비록 훔쳐간다 한들 한두 개에 불과하니 천하의 모든 옷과 곡식을 없앨 수 있겠는가. 그런즉 천하 만물은 모두 지킬 것이 없다.


유독 이른바 '나'라는 것은 그 성품이 달아나기를 잘해 드나듦에 일정한 법칙이 없다. 아주 친밀하게 붙어 있어서 서로 배반하지 못할 것 같으나 잠시라도 살피지 않으면 어느 곳이든 가지 않는 곳이 없다. 이익으로 유도하면 떠나가고, 위험과 재화가 겁을 주어도 떠나가며, 새까만 눈썹에 흰 이를 가진 미인의 요염한 모습만 보아도 떠나간다. 그런데 한 번 가면 돌아올 줄 몰라 붙들어 만류할 수 없다. 그러므로 천하에서 '나'보다 더 잃어버리기 쉬운 것이 없다. 어찌 실과 끈으로 매고 빗장과 자물쇠로 잠가서 지키지 않는가.”

< 다산의 마지막 질문, 지은이 조윤제, 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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