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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Dec 12. 2022

전업맘들이 당당하기를 바란다.

사람 사는 이야기

장면 하나


회사 건너편 한식당, 오랜만에 동기 언니를 만났다. 언니는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기도 했고, 다시 일을 하고 싶은데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어떤 일이든 구하고 싶은데, 이전 경력이 끊긴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가족들 눈에 보기에는 마땅치 않을 테고, 일을 시작해봤자, 그러려고 일 시작했냐고 한 소리 들을 것 같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 언니는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언니 외에 아이들을 돌보는 사람이 없었다. 아이 둘은 모두 초등학생이다. 남편은 귀가 시간이 늦었다. 언니가 일을 시작한다고 일찍 들어올 것 같지도 않다. 언니 대신에 아이들에게 급한 일 있을 때, 잠깐이라도 들여다볼 사람이 주변없는 상황이었다. 이들 어릴 때는 갑자기 열 올라서 병원 가는 일이 부지기수다. 언니가 일을 시작하면 아이들 아플 때 누가 그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을 갈 것인가?


시어머니나 남편 기대치도 문제였다. 번듯한 일 구할 거 아니면 하지 말라니! 번듯한 일을 하려면, 새로 시작하는 게 좋다. 공무원 시험 같은 특정 시험을 보거나, 자격증 시험을 준비해서 합격하는 방법이다. 그것도 중년 나이는 쉽지 않다. 젊은 지원자들도 많고, 그들 역시 취업이 어렵다.

자원봉사로 일단 밖에 나가는 것부터 시작해도 좋을 텐데, 현 상황에서는 잠깐 짬을 내기도 어려워 보였다. 그런데 번듯한 일 할 거 아니면 하지도 말라고 하면, 당사자는 어떻게 해야 하나?


게다가 자신감도 많이 떨어진 상황, 숨고 같은 데서 영어 과외를 시작해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말을 꺼냈다. 언니는 미안해서 과외를 못할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순간 '언니가 왜? 영어도 잘하고 친절해서 화내지 않고 잘 가르칠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다. 언니는 남에게 폐 끼치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사람이다. 자기가 충분히 준비가 되어 있을 때, 완벽하게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겠지. 어린아이들부터 시작해서, 단계를 높여가도 좋을 텐데, 왜 안될 거라 생각하는지 아쉬웠다. 지나치게 양심적이다. 준비가 되어 있는 상황은 언제나 없다. 하면서 노하우가 쌓이는 거지. 나도 아이 낳고 과외 시작했다 사기를 당한 터라, 과외도 조심스럽긴 했다.


다시 일을 할 때, 중요한 건 가족들이 얼마나 협조할 수 있는지, 내가 이전에 회사 다녔던 기억을 다 지우고 일을 할 수 있는지이다. 경단 이후에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일자리는 경단 전에는 생각도 안 해본 일들이었으니까. 아마도 지금 지치고 엄두가 안나는 게 아닐까 한다.


장면 둘


아이가 임신을 했을 때 펠트 공예를 했었다. 부푼 배를 안고 동대문 운동장에 가서 원단을 끊고, 미술 전공한 언니의 도안에 따라 육아용품이나 인형 등을 만들었다. 그때 그 뱃속 아이들이 이제는 다들 중3이 되었다.


멤버 중 한 언니가 8킬로나 살을 빼서 그 기념으로 코트를 산다고 해서 쇼핑도 할 겸, 연말인데 해 가기 전에 얼굴도 볼 겸 펠트 멤버들과 모였다. 살을 뺀 언니는 자기희생의 아이콘 같은 사람이었다. 현모양처 스타일로, 어릴 때 꿈도 현모양처다. 지금도 살림이 재미있다고 한다. 나로서는 정말 이해가 잘 안 가지만, 언니는 자기 일도 하면서, 살림도 완벽하게 해낸다.


남편과 자식이 전부인 것 같았던 언니가 몇백을 들여가며 살을 뺐다고 해서 놀랐다. 식구들 챙기느라, 자기한테는 투자도 잘 안 했는데, 언니가 변했다.

나는 그 변화가 좋았다.

언니는 본인이 피부관리사지만, 자기도 일주일에 한 번은 시간 내서 피부관리를 받고 온다.

"나는 내 몸이 건강하고, 내 피부가 좋아야 해. 피부 관리하는 사람들, 바빠서 자기 관리는 잘 못해. 난 안 그러려고."


어쩜 이리 당당하고 멋질까?


아이는 혼자 낳지 않았습니다.


나는 돈을 버는 걸 좋아하고 중요하게 생각한다. 내가 돈을 벌면 내가 쓰고 싶은데 써도 거리낌이 없는데, 다른 사람 돈을 쓴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돈을 벌고 싶어도, 육아가 일방에게 전가되는 상황에서는 어불성설이다. 여건이 된다면 아이에게 집중하는 게 맞다. 문제는 아이가 내 손을 덜 필요로 하는 시기가 되었을 때, 다시 사회에 나오기가 만만치가 않다는 점이다.


내가 원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어쩌면 가족 모두를 위해서 그런 건데, 좀 더 당당해지면 안 될까? 지금 상황이 밖에 나가서 일을 할 상황도 아니고, 아껴서 살 수 있는 상황이면 그냥 아껴가면서 살면 안 되나? 그렇게까지 눈치를 줘야 하나?


번듯한 직장 아니면 일할 생각은 하지도 말라면서, 혼자 벌어서 힘든다는 말은 왜 하는 건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집안일이 확실히 적성에 안 맞았다. 그게 맞아서 전업으로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출처 : Pixabay>


당당하자. 잘못한 게 없지 않은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지금 현재 상태가 결코 날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분명히 나도 육아라는 일을 하고 있는데 이상하게 남편 카드로 결제를 할 때는 왠지 모르게 남편 눈치를 보게 되더라. 네 돈 내 돈이 어디 있냐고 하는데 결국 벌어오는 사람 돈이더라. 경제력이 없으니 내가 점점 작아지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일을 다시 시작하면서 나 스스로 당당해진 것 같아. 왠지 모르게 남편도 더 잘해주는 것 같고. 돈을 진작 벌었어야 했나 봐.”

실제로 워킹맘들 이야기를 들어 보면 전업맘보다는 워킹맘으로 사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들 한다. 그 이유는 자녀 학원비를 내가 번 돈으로 감당할 수 있어서, 생활비 부담이 줄어들어서, 노후자금을 마련할 수 있어서 등의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크다.

<출처 : 오늘부터 워킹맘, 지은이 백서연>


https://m.blog.naver.com/playsacard/22267207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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