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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Dec 10. 2022

독서용 핀홀 안경 만들기

사람 사는 이야기

잡다하고 신기한 물건을 사랑한다.


세상 잡다한 물건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홈쇼핑에서 신기한 제품이 나오면 눈을 떼지를 못한다. - 아예 티브이를 안 켜야 하는데, 이건 티브이를 애정 하는 남편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물품이 뭐가 있었지?


그래. 비닐 접착기가 있었다. 이건 몇 번을 샀었는데, 살 때마다 실망했다. 홈쇼핑에서 쇼호스트가 보여준 것처럼 쫙 붙질 않던가, 붙은면이 금방 터졌다. 붕어처럼 지난번 실망했던 기억은 다 까먹었다. 몇 년이 지났는데 이 녀석도 점점 업그레이드가 되었겠지 바래는 마음 사기를 반복한다.


핀홀 안경도 이런 물건 중 하나다. 안과의사 설명도 그렇고, 여기저기 조사를 해봐도 실제 시력이 개선되는 효과는 없다고 한다. 썼을 때 일시적으로 초점이 모여 상이 또렷하게 맺혀 잘 보이는 거라고 한다. 수정체를 잡고 있는 근육이 운동을 한다고 설명을 하는 곳도 있긴 하다. 이 설명 때문에 계속 핀홀 안경을 사게 된다. 혹시나 시력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기대를 하기 때문이다.


라식을 하니 새로운 세상이 열였다.


원래도 눈이 안 좋았는데, 젊었을 때 기내 건조한 환경에서 근무를 하다 보니, 눈에 무리가 왔다. 그나마 산소투과율이 높고, 내 손으로 렌즈를 직접 집지 않아도 되는 하드 렌즈를 썼는데, 근무 중에 하드렌즈가 퐁하고 빠졌다. 눈을 깜빡이는 물리적 움직임에 렌즈가 빠졌는데 그때 눈에 상처가 났는지, 렌즈를 낄 수 없는 상태가 돼서, 교육 기간 한 달 정도 안경을 쓰고 각막이 다 아물었을 때, 라식 수술을 받았다. 라식 수술 후 시력은 1.0

자고 일어났을 때 시계 초침이 명확하게 보이는 상쾌한 기분을 맛보았다. 시력이 양쪽이 다른 짝눈이었는데 양쪽 다 시력이 똑같아졌다. 이 시력 끝까지 갔으면 좋았으련만, 몸에 무리를 할 때마다 시력은 뚝뚝 떨어졌다.


공부를 하게 된 계기


아이 때 잠깐 병원에 코디네이터로 일을 하면서, 재취업을 하려면, 내가 제대로 된 경력이 있거나, 자격증이 있거나, 학력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소위 '남들 따라' 루트를 달리고 있었을 때는 남들이 나를 부당하게 취급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내가 스스로 호구 짓을 했는데 상대방이 이용을 한 경우는 있었어도, 내가 사회적으로 낮은 계급으로 분류가 되어 무시를 받는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때 그 의사가 이상한 사람이었을 수도 있지만, 병원에서 경험으로 나는 공부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겸사겸사 둘째를 임신한 김에 임용을 공부했다. 어차피 일은 못하니까. 떨어졌지만, 굳이 부언을 하자면, 내 실력은 꽤 괜찮은 편이었다. - 아무도 확인할 길이 없으니 그런 걸로 하자. 내가 지원했던 과목 임용 TO가 유래 없이 적게 나와 언론에 보도가 되었고, 임용시험을 보러 가는 학생들이 검은색 꽃을 달고 시험을 봤었던 해였다. 당시 우리 학원 조교는 이럴 거면 사범대를 왜 이리 많이 만들었냐며 몇 군데 언론 인터뷰를 했었다.


눈을 버리다.


산후조리하면서 껌껌한 데서 책을 보다 눈을 버렸다.

만삭의 배로 기다란 교회 의자 같은 엉덩이만 간신히 붙일 수 있는 의자에 앉아서 어찌나 열심히 공부를 했던지, 아이를 낳고는 2차 논술이 있었는데, 아이 낳고 좀 쉬라고 산후 도우미 아주머니가 불을 꺼버리자, 아주머니랑 실랑이하기도 그렇고 괜히 걱정을 끼치는 것 같아 껌껌한 데서 혼자 공부를 했다.

그때 시력이 한번 떨어져 0.5까지 내려갔다. 원래 안 좋은 눈부터 내려가더니, 다른 쪽 눈도 균형을 맞춰 같이 나빠지더라.


형광펜 쳐가며 공부하다 눈을 버렸다.

내 시력은 한번 더 떨어졌다. 이전 회사에서 일하면서 공부를 한 게 화근이었는데, 같은 상태를 유지하다가 막판 한 달 정도에 급격하게 나빠졌다. 농담처럼 판례 150개 정도를 달달 외워야 한다고 하는데, 아무런 법학적 지식이 없었던 나는, 말 그대로 이걸 조사까지 똑같이 외웠다. 법리 해석이 안돼 서다. 신기한 게, 외우고 나면 나중에 왜 그 사람이 이렇게 말했는지가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하도 안 외워져서 형광펜을 그어가며 외운 게 화근이었다. 이때 시력이 0.2까지 내려갔다.


혹시나 하는 기대 - 핀홀 안경에 집착하다.


핀홀 안경에 대한 집착은 이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잘 보이는 그 시원함을 아는데, 이미 라식으로 한번 깎은 뒤다. 각막을 한번 더 깎기는 찜찜하다. 젊을 때와 달리, 이제는 무언가 과감하게 시도를 하기가 무서워진다. 나이가 들면 남은 건 노화뿐, 시력이 더 좋아질 리가 없지 않은가?


회사에서 친해진 프로그래머 분이, 군대 가서 시력이 1.0까지 좋아졌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자꾸 먼 산만 바라서 그런 것 같다고 한다. 안경을 쓰다가 군대 제대할 때 안경을 벗었단다. 대학교 선배 중에서도 유일하게 수술 없이 안경을 안 쓰는 선배도 쉬는 시간에 수정체를 잡고 있는 근육 운동을 시킨다고 창 밖으로 먼 곳을 자주 봤다고 한다.


그러니 내가 핀홀에 당길 수밖에. 어떤 블로그에서는 수정체 운동도 확인이 안 된 이야기라고도 한다. 바늘구멍 사진기처럼 빛이 차단이 되고 구멍으로 초점이 모이는 물리적인 현상에 불과하기 때문에 핀홀 안경을 벗으면 바로 잘 안 보이는 거라고 반증을 하기도 한다. 사실 나도 이 말이 맞는 것 같다.


나만 이 핀홀 안경이 실질적으로 시력 개선에 도움을 주는지 궁금한 게 아닐 텐데, 실험조차 없었던 걸 보면 시력 개선은 거짓부렁이 맞을 것 같은데, '그러기를 바라는 내 마음'이 비닐접착기를 살 때처럼 앞선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 북 튜버도 잠시 얼굴 공개를 했을 때 핀홀 안경을 쓰고 있었다. 당신은 효과가 있는 것 같다고 하시니, 더 혹할 밖에. - 이 논리는 지인이 *** 다단계를 권유하면서 자기 친구들이 팔고 있는 브랜드가 문제가 있을 리가 없다고, 나는 이 브랜드 영업을 하는 내 친구들을 믿는 다고 한 것과 같은 논리다. 당시 언니는 교육용 동영상을 공유를 해줬는데, 나도 한번 동조를 하면 같이 하자고 할 것 같아서, 이 영상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를 조목조목 따져서 이야기해줬더니, 이런 결론이 났었다. 아전인수라고, 나 역시 내 기대가 맞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러는 거겠지.


독서용 핀홀 안경을 찾다.


눈이 피로하 시큼한 느낌이 들어 핀홀 안경을 다시 찾았다. 아무 때나 껴서 쓸 수 있도록 집에 싼 거 5개 정도를 사다 놓은 것 같은데, 찾아보니 하나밖에 안 보인다. 쓰면 중간중간 핀홀 구멍 사이 검은 테두리도 보여 불편하다. 독서할 때 보면 딱이겠다 싶지만, 나는 눈으로 읽는 편이라 중간에 안 보이는 부분이 있어서 막히면 쓰윽 넘어가지가 않는다.


다시 재검색. 이거 핀홀 쓰면서 나만 이렇게 불편한 게 아닐 텐데, 핀홀이 한번 더 진화하지 않았을까? 다시 쿠*을 찾아본다. 핀홀도 영화 볼 때는 크게 불편하지 않는데, 독서처럼 가까이에서 사물을 보면 가리는 면이 많아 불편하다. 혹시나 해서 '독서용 핀홀'로 찾아봤다.


요렇게 두 가지가 나왔다.


1. 대한핀홀연구소 K-7핀 시대 선언 컴 작업 최적화 K-7 보급형 핀홀안경

https://link.coupang.com/a/HqQEw

이렇게 특정 부분에 구멍을 더 크게 뚫은 핀홀이 나온다. 책을 읽을 때 자세에서 이 부분에 주로 시선이 가나보다.


2. 아이플러스 특허 핀홀안경 눈 운동 시력 좋아지는 교정 법 눈 피로 해소 돋보기 대용 노안 부모님 효도선물

https://link.coupang.com/a/HqQiq

현재 임베디드 된 이미지에는 나오지 않아 확인이 어렵지만, 링크 타고 들어가면 독서용 핀홀 안경으로 안경의 아래쪽에 일자로 길게 구멍을 뚫은 게 보인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수 있어, 이미지 사용은 하지 않았다.


애썼다.


그리하여, 이 둘은 종합하여 나만의 핀홀 안경을 만들었다. 사면될 걸 왜 그러느냐고? 사면 그만이지만, 아무리 봐도 단가가 몇천 원도 안 할 것 같은데 비싸게 받아먹는다 싶어서다.

위와 아래에 구멍을 더 크게 뚫었다.

1자 선은 저 플라스틱 판을 망가뜨리지 않고 만들 가능성이 없어 보여 저 부분에 구멍을 크게 뚫었다. 어떻게 했냐고? 집에 있는 송곳에 양초 라이터로 열을 가해 구멍마다 일일이 돌려서 넓혀줬다.

바쁘다면서? 바쁜데 이런 건 당긴다. 재미있다. 몇만 원을 번 기분이다. 이럴 시간에 나가서 일하는 게 낫겠지만 이런 데서 돈 벌었다는 만족감이 꽤 크다. 효율적이지 못하다. 나만의 소확행인셈이다.


지금 이 핀홀 안경을 끼고 브런치 글을 쓰고 있는데, 검은색으로 가리는 부분이 없어져서 그런지, 시원하게 까지는 아니지만 아까보다는 막히는 느낌 없이 보고 있다.

아직 이걸 끼고 독서는 안 해봤지만, 착용 느낌으로 봐서는 더 나을 것 같다. 아래쪽 구멍은 괜히 뚫은 것 같다. 평상시 내가 책을 볼 때 시선이 가는 위치를 볼 때 저 윗부분만 뚫는 게 나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은 든다.


한 줄 요약 : 쓸데없는 물건 사기를 반복하는 마음은 혹시나 하는 기대감 때문. 놓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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