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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Dec 06. 2022

나는 선물이 무섭다.

사람 사는 이야기

단톡방 선물 제의


단톡방에서 누가 연말 모임에 선물을 가지고 추첨으로 나눠갖자는 제의를 했다.

순간, 나는 우리가 서로 잘 아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아니던가? 줌으로 본 사람들도 있지만, 아닌 사람들도 있다. 상대방이 원하는 선물이 무엇인지 알고 준비를 하자는 거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좋은 마음에 나 혼자 준비해 간다면 모를까? 다른 사람들도 준비해야 하지 않나?


선물 트라우마


내가 쓸데없이 선물에 진지하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맞을 것이다.

선물은 상대방이 원하는 것으로 줘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원치 않은 선물을 자주 받아본 경험 탓이다.

엄마가 주는 선물이 그렇다. 일단 내가 어떤 음식을 못 먹는지를 모르신다. 엄마는 관념으로 사랑을 하시는 분이다. 관찰이 배려로 이어져야 하는데, 우리 엄마는 이상주의자다. 이상주의자이기에, 사람이란 응당 그래야 한다는 생각으로, 의무로 살아간다. 당신의 높은 윤리적 기준으로 아무리 힘들어도 악착같이 버티며 사셨을 테지만,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살펴볼 겨를이 없었다. 사랑이 현실에 바탕을 두지 않는다면, 사랑도 감히 폭력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 단순한 제안에, 나는 왜 마음이 편치 않았던 걸까?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나는 요만큼도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았다. 궁금했던 몇몇 분을 만나고 싶었을 뿐이지, 선물에 고민을 하며 만나고 싶지 않았다.

큰 아이 입시로도 정신이 없다. 남편이 알아서 하기로 했다지만, 작은 아이 영어학원도 알아봐야 한다. 테스트 일정 잡고, 시험 보고 상담하고, 그 과정을 반복하는 게 싫다. 회사 일을 집으로 가져와서 고민하는 일은 없지만, 이미 충분히 머릿속이 복잡한데, 신경 쓰는 일 하나 추가라니... 이거 포장도 해야 하잖아? 순간 버거웠다.


내 뜻대로 되기를 바라는 마음


그래. 이것도 내 뜻대로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다행히도, 선물 가격대 바운더리로 정해졌고, 마음에 안 들면 다른 사람 주면 된다고 편하게 말하지 않았던가?

내친김에 내가 애정 하는 펜 중 하나를 구매했다. 필기감이 좋고 글자가 굵은 에너겔 1.0과 지워지는 볼펜 프릭션 중에서 호불호가 덜 갈리는 프릭션 삼색이 볼펜 2개를 주문했다.

집에 포장용지 두는 서랍에서 포장봉투를 찾았다. 그래 내일 배송 오면 잘 포장해서 넣어둬야지. 그럼 더 신경 쓰는 일은 없을 거야.


이렇게까지 하고 나서야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어쩌면 이런 성향도 완벽주의자는 아니지만, 실수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기인하는 걸까 고민해 본다.

아이고. 이러니 모임 나가도 뒤풀이는 안 가지....


<출처 : Pixabay>

한 줄 요약 : 나는 선물에 대해 부담감을 많이 느낀다. 당신 탓이 아니오. 내가 그런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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