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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채영 Feb 13. 2022

[어쩌다 레트로] 종로서적

20대의 낭만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 그렇다고 막 쌓아놓고 읽는 책벌레까지는 아니지만 국민학교 시절 방학 추천도서를 사러 늘 엄마와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 가곤 했다. 천정에 거울이 번쩍번쩍 달린 인테리어로 바뀌면서 어린 맘에 낯설었던 기억이 난다. 방학이 되면 그렇게 사를 치르듯 대형서점에 가서 '권장도서' 몇 권을 사 왔다.


대학생이 되면서는 종로서적에 자주 갔다. 친구를 만나 종로 1가 골목에서 밥도 먹고 노래방도 가고 그래서 그랬나 보다. 지금은 예전 건물이 아닌 종각역 지하에 있지만 나의 기억 속의 종로서적은 3층?! 짜리 서점이다.

종각역에 내려 쭉 걸어가다 보면 왼편에 종로서적 간판이 보다. 교보문고와 달리 단층이 아니라 층별로 계단을 올라가 다. 종로서적 특유의 그런 분위기가 좋았다.


종로서적과 교보문고에 안 갈 때는 영풍문고에도 들렀다. 책을 좀 보다가 주로 음악을 들으러 시디 코너에 가곤 했는데 벽 한쪽에 네다섯 개의 벽걸이 시디플레이어가 있었다. 비어있는 곳에 서서 걸쳐진  헤드셋을 꺼내 끼고서 한참 음악을 들었다. 그러다 시간을 확인하고 종종걸음으로 친구를 만나러 갔다.

(무인양품에서 나오는 벽걸이 시디플레이어가 쭉 벽면에 붙어있다고 보면 된다. 요즘 같은 코로나 시국에는 불특정 다수가 꼈던 헤드셋이라 다들 만지지도 않겠지만)


 아카펠라 그룹인 'The real group'의 음반을 처음 들은 곳도 영풍문고였다. 1번 트랙인 'substitute for life' 를 듣고 너무 좋아서 앨범 전체를 듣고 그 자리에서 매한 후 그 후로 팬이 되었다. 재즈 느낌을 물씬 살려 오로지 목소리로만 부르는 묘기에 가까운 음악성에  반했다. 종로에 약속이 있을 때 조금 일찍 나와 그렇게 음반매장에 들러 비치해놓은 음반들을 듣는 건 나만의 행복이었다.


(나만 알고 싶은 그룹이었는데 시간이 지나자 유명해졌다. 기쁘면서 아쉬운 기분이란. 'I sing you sing'이란 곡이 CF 삽입곡이 되고 한국에서 공연도 했다. 그러고 보니 그때 혼자 예술의 전당에 가서 공연을 보기도 했다. 그 팸플릿을 아직까지 가지고 있다)


대학교 때 첫사랑을 처음 만났던 장소도 서점이었다. 래서인지 가끔 종로에 가서 서점 들르면 그때의 기억들이 난다. 종로서적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할 즈음 없어졌다가 언젠가 종각역 지하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 이름이 같아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가도 예전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책을 고르던 낭만은 찾아볼 수 없어서 아쉽다. 분명 더 세련되고 예뻐졌지만 달라진 옛 친구를 오랜만에 만난 듯 낯섦과 반가움이 교차하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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