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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채영 Feb 17. 2022

보물

한국 마트는 천국이었다

 

'빠삐코를 먹었으니 됐다' 어제 브런치에 쓴 글에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글을 보고 캐나다에 사시는 작가님이 밤 10시 47분이라며 "어디가서 빠삐코를 찾죠? 밤새 어른거릴듯 해요" 라고 댓글을 다습니다.


느새 잊고 있었습니다. 내가 지금 한국에 살고 있구나! 해외에 사는 사람에게는 빠삐코는 소소한 행복이 아니라 정말 큰 행복임을 말입니다. 캐나다나 미국 등은 살아보지 않아 잘 모르지만,  6년을 살았던 이집트 이야기를 잠시 해보려 니다.





2011년 갓난쟁이 둘째와 4살 난 아들을 데리고 남편과 이집트로 갔습니다. 남편은 둘째가 태어나고 이틀 후에 먼저 들어갔고 저는 둘째를 어느 정도 키우고 가기로 계획을 세웠니다.


이집트는 한국과 거리상으로도 심적으로도 먼 나라였습니다. 18시간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해서 정말이지 '그만 내리고 싶다' 싶을 때쯤 카이로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검은 옷을 입고 머리와 얼굴을 가린 히잡을 쓴 여인들과 특유의 아랍 향이 외국에 왔구나 싶게 만들었습니다. 텔레비전이나 사진으로 보던  생경한 모습이었지만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았니다.


일하는 남편도 적응이 필요했지만 육아하고 살림을 하는 도 그랬습니다.  이집트에 사는 동안 행복했고 그 나라 자체를 즐기려 했지만, 돌아보니 정말 힘들었습니다.  장을 보려면 기본으로 두세 군데를 돌아야 했습니다. 어떤 물품이 늘 있는 게 아니라 오늘은 있어도 내일은 없기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미리 쟁여놓는게 습관이 되었고 원하는 것을 쉽게 구할 수 없어서 여간 불편하게 아니었습니다. 아이 스타킹을 하나 사려해도 사이즈가 없어서 이 쇼핑몰 저 쇼핑몰을 미리 돌아다녀야했습니다. 


혁명 후라 정국이 불안했고 시위가 잦았습니다. 그 때문에 늘 불안감을 갖고 살았습니다. 대형 쇼핑몰에 갈때는 공항검색대 같은 곳을 통과하고 자동차 뒷 트렁크까지 검문 검색도 해야 했습니다. 물론 외국인 주거지는 그래도 안전했고 그 안은 이집트 상황과는 또 다른 세계였지만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니다.


한국 식료품은 '토마토'라는 작은 한국 마트 있었. 혹은 한국식당 사장님이 한국에 다녀오시거나 컨테이너가 들어올 때 '간장'  등 몇 가지를 구할 수 있습니다. 소소하게 한국 식재료를 살 수 있지만  들여오기 쉽지 않다보니 가격이 당연 비습니다.


쩌다 라면 한 봉지를 사 오면 그날은 귀한 한국 라면 파티입니다. 초코파이 한 자를 사 오면 아이들이 어찌나 신나게 잘 먹던지 모릅니다. 특히 양파링 한 봉지는 간혹 행복하게 먹는 별식이었니다.

(대는 안다녀왔지만 쓰다보니 군대 같네요.)


한국에 나갔다 들어오는 지인들 초코파이나 라면을 선물로 주고받으며 인사할 정도입니다. 유통기한이 지난 라면도 맛있게 끓여먹었습니다. 마트에서 파는 동남아 라면에 고추장을 풀어 먹기도 했니다.






그러다가 몇 년 만에 한국에 들어와 마트에 가면 산처럼 쌓인 라면, 만두, 어묵, 단무지 등을 보 눈이 돌아갔습니다. 와~~~ 감탄을 연발습니다.


"이곳이 천국이구나"


마트 안을 무심히 지나가는 정말 말쑥하게 차려입은 한국인들은 카트에 식재료를 가득 담고 지나갔습니다. 그들은 아마 모를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어떤 것의 본질은 같지만 환경이나 조건에 따라 그 가치가 크게 달라니다.


처음에는 3년을 계획했지만 연장이 되며 6년을 이집트에 살았습니다. 그동안 두세 번 정도 한국에 습니다. 후진국에 살아선지 한국에 오면 우리나라가 정말 부자구나 졌습니다. 살고 있는 사람은 모르겠지 말입니다. 붙잡고 지금 옆에 쌓인 식재료와 물건들이 얼마나 귀한 건지 말해주고 싶어질 정도였습니다.


한 사람당 비행기에 가져갈 수 있는 수화물 무게가 정해져있으니, 한국에서 쇼핑을 해도 많이 가져가기도 힘들었습니다. 이집트에 가는 날 친정집에서 짐을 챙기다 눈물을 머금고 박스에서 뺏던 기억이 납니다. 친구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왜 후진국이랑 비교를 하냐"부터 "사는 게 너무 힘들다" 고들 했지만 휴가 때 어디갈지 고민을 하고 늘 좋은 것을 먹고 입는 그들을 보며 이집트 서민들이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니다.


어느새 한국에 돌아온 지 4년 차입니다. 처음에는 내 나라지만 모든 게 새롭고 낯설었습니다. 익숙한 낯설음이랄까요. 빠르고 잘 갖춰지고 똑똑하고 세련된 사람들을 보며 감탄할 때가 많았습니다. 남들은 그런 저를 국뽕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니다. 물론 우리나라가 가진 문제점도 많습니다. 가지지 못한 것과 문제점을 보고 개선하고 이뤄나가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다만 가지고 있는 좋은점과 훌륭한 점이 훨씬 많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겠습니다.


내가 가진 것들이 얼마나 귀한지 가지고 있을 땐 모릅니다. 한국에 온지 4년이 되가니 저도 모든게 다시 당연해집니다. 마트의 라면, 아이스크림, 단무지가 해외에 나가면 귀하디 귀한 음식이 된다는 것을 자꾸만 잊어버립니다. 


오늘도 문 앞에 배달된 새벽 배송 상자가 당연한 나라에 사는 것을 감사해야겠습니다. 흔하디 흔한 '행복'이란 뜻의 세 잎 클로버를 소중히 생각하는 하루가 되야겠니다.



+이집트에서 늘 보던 차창밖 풍경입니다

서민들의 이동수단 중 하나 '마이크로 버스' (우리나라에선 봉고차) 번호 표시도 정류장도 딱히 없습니다


+ 글을 올리고  봤어요 :)

지금은 초4, 중1인 남매의 아가아가시절, 귀한줄 알았는지 너무 맛있게 잘먹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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