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에 아이 학원을 데려다주고 친구와 전화로 안부를 묻다 한참을 이야기했다. 그간 있었던 일과 친구 회사에 확진자로 업무가 늘어난 이야기 등으로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몇 달만에 통화한 것도 아닌데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어 계속되었다. 이러고 또 만나서도 한참을 떠들 수 있을 거다.전화를 실컷 해놓고 "자세한 건 만나서 얘기해"라고 하는 사람들처럼.
하는 일과 처해진 환경은 달라도 결국 우리들의 고민거리는 비슷하다. 관계에 대한 문제나 나 자신에 대한 고민거리. 자신이 판단하는 것이 맞는지 친구는 나에게 재차 확인했다. 이해할 수 있는 일보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아질 때 우린 힘에 겹다.
내가 모르는 미지의 영역을 고려한다 해도 이 아이가 이정도로 생각한다는 건 그만큼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친구의 성향을 잘 알기에 그렇다. 평소 굉장히 유쾌하고 배려가 많은 성향인데, 이렇게 생각한다는 건 빨간 등이 켜진 것이다.
친구에게 말했다.
"지금 네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 니 감정이 모두 맞아. 자꾸 되뇌고 확인하는 과정은 그만해도 좋아. 네가 맞아. 네가 그랬다면 그런 거야."
친구에겐 이 말이 필요했다. 과거의 나도 그랬으니까. 나 역시 그랬던 적이 있었다. 상식적인 흐름을 거스르는 일들에 둘러싸여 스스로 부서졌던 날들. 나는 재차 친한 몇몇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묻고 또 물었다.
"내가 생각하는 게 맞지?"
이토록 자기 확신이 없었나 싶게 나를 돌아보고 되뇌고 상황을 애써 이해하려 했나 보다. 그렇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던 걸까. 그 시간을 돌아보니, 지금에 와 생각해보니 단호하지 못했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고 아닌 것을 끝까지 아니라고 주장하지 못한 건 어쩌면 나 자신을 믿지 못해서였을까.모든 걸 인정해버리면 주어진 내 세계가 사라져버릴까 겁이 났는지도 모른다.
('사라져버릴테면 사라지라지, 어차피 내 세계는 또 내가 만드는거니까.' 요즘은 이런 마인드다.)
이젠 안다. 그동안 내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들은 결국 아니었다. 때때로 나를 돌아봐야 할 때 다시금 돌아보기도 하겠지만, 돌아보지 않아도 될 때조차내 생각을 되짚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으리라. 나란 사람이 그렇게 생각했다면 그 정도까지 힘들고 아팠다면 내 판단이 결국 맞다. 누구에게 물어보고 대답을 듣고 나를 다시 설득할 필요는 없는 거다.더구나 내가 힘들고 상처받은 사실조차 누군가에게 그 당위성을 이해시킬 필요는 없다. 내가 그랬다면 그런 거니까.그 사실은 변함이 없다.
친구의 마음을 잘 안다. 나도 그랬으니까. 때로 아직도 그렇다. 하지만 이제 말도 안 되는 일들로 나를 괴롭히진 않으려 한다. 굳이 몇 번씩 되짚어 보고 상대와 나를 설득하지 않겠다. 어차피 풀리지 않는 문제와 설득되지 않는 문제는 존재하니까. 그저 내가 이렇다는 생각과 감정은 그대로 두고 인정하고 말겠다. 그리고 그 시간에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하려 한다. 나를 행복하게 하고 내 영혼을 살찌우는 일에 집중하고 싶다.
친구가 지금의 문제를 잘 해쳐가기를 바란다. 아마 많이 아프고 힘든 시간이 이어질 수도 있다. 혹은 잘 마무리가 되어 새로운 장으로또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지도 모른다. 무엇이 되었든 스스로가 행복한 길로 가기를, 순간 순간 평온하고 잔잔하기를 바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