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채영 Feb 26. 2022

맞아

네 생각이 맞아


토요일 오후에 아이 학원을 데려다주고 친구와 전화로 안부를  한참을 이야기했다. 그간 있었던 일과 친구 회사에 확진자로 업무가 늘어난 이야기 등으로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몇 달만에 통화한 것도 아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어 계속되었다. 이러고 또 만나서도 한참을 떠들 수 있을 거다. 전화를 실컷 해놓고 "자세한 건 만나서 얘기해"라고 하는 사람들처럼.


하는 일 처해진 환경은 달라도 결국 우리들의 고민거리는 비슷하다. 계에 대한 문제나 나 자신에 대한 고민거리. 자신이 판단하는 것이 맞는지 친구는 나에게 재차 확인했다. 이해할 수 있는 일보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아질 때 우린 힘에 겹다.


 내가 모르는 미지의 영역을 고려한다 해도 이 아이가 이 정도로 생각한다는 건 그만큼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친구의 성향을 잘 알기에 그렇다. 평소 굉장히 유쾌하고 배려가 많은 성향인데, 이 생각한다는 건 빨간 등이 켜진 것이다. 


친구에게 말했다.

"지금 네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 니 감정이 모두 맞아. 자꾸 되뇌고 확인하는 과정은 그만해도 좋아. 네가 맞아. 네가 그랬다면 그런 거야."

친구에겐 이 말이 필요했다. 과거의 나도 그랬으니까. 나 역시 그랬던 적이 있었다. 상식적인 흐름을 거스르는 일들에 둘러싸여 스스로 부서졌던 날들. 나는 재차 친한 몇몇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묻고 또 물었다.

 "내가 생각하는 게 맞지?"


이토록 자기 확신이 없었나 싶게 나를 돌아보고 되뇌고 상황을 애써 이해하려 했나 보다. 그렇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던 걸까. 그 시간을 돌아보니, 지금에 와 생각해보니 단호하지 못했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고 아닌 것을 끝까지 아니라고 주장하지 못한 건 어쩌면 나 자신을 믿지 못해서였을까. 모든 걸 인정해버리면 어진 내 세계가 사라져버릴까 겁이 났는지도 모른다.

('사라져버릴테면 사라지라지, 어차피 내 세계는 또 내가 만드는거니까.' 요즘은 이런 마인드다.)


이젠 안다. 그동안 내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들은 결국 아니었다. 때때로 나를 돌아봐야 할 때 다시금 돌아보기도 하겠지만, 돌아보지 않아도 될 때조차 내 생각을 짚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으리라. 나란 사람이 그렇게 생각했다면 그 정도까지 힘들고 아팠다내 판단이 결국 맞다. 누구에게 물어보고 대답을 듣고 나를 다시 설득할 필요 없는 거다. 더구나 내가 힘들고 상처받은 사실조차 누군가에게 그 당위성을 이해시킬 필요는 없다. 내가 그랬다면 그런 거니까. 그 사실은 변함이 없다.


친구의 마음을 잘 안다. 나도 그랬으니까. 때로 아직도 그렇다. 하지만 이제 말도 안 되는 일들로 나를 괴롭히진 않으려 한다. 굳이 몇 번씩 되짚어 보고 상대 나를 설득하지 않겠다. 어차피 풀리지 않는 문제와 설득되지 않는 문제는 존재하니까. 그저 내가 이다는 생각과 감정은 그대로 두고 인정하고 말겠다. 그리고 그 시간에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하려 한다. 나를 행복하게 하고 내 영혼을 살찌우는 일에 집중하고 싶다.


친구가 지금의 문제를 잘 해쳐가기를 바란다. 아마 많이 아프고 힘든 시간이 이어질 수도 있다. 혹은 잘 마무리가 되어 새로운 장으로 또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지도 모른다. 무엇이 되었든 스스로가 행복한 길로 가기를, 순간 순간 평온하고 잔잔하기를 바게 된다.


평온하고 잔잔한 시간




작가의 이전글 제대로 불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