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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채영 May 21. 2022

나는 누구인가

중2 아들의 나찾기


중2 아들, 초5 딸 키우고 있어요. 네, 물론 남편도...


아기 때도 물론 이뻤지만 전 아이들이 이렇게 커가는 게 좋아요. 이제야 비로소 대화다운 대화가 가능하고 자기 할 일 할 줄 아는 나이가 돼서 인간대 인간의 관계가 가능하니까요.


저희 가족은 이집트라는 나라에서 6년을 살다 한국에 온 지 어언 4년이 되었어요. 큰 애가 한국 나이 4살, 막내가 4개월 때 외국에 나가 살았기 때문에 아이들의 기억에 깊게 남아있어요.

꽤 어린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집트 동네, 친구들, 집 등 기억을 잘합니다. 독특한 나라기도 했고요.


한국에 와서도 적응을 무난하게 잘했어요. 해외에서는 한국과 외국인 중간 느낌이었다면 한국에 정착하고 몇 년이 지나니 저도 아이들도 완전한 한국사람 테가 납니다. 이집트에서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저의 경우 묘하게 옛날 여자 느낌이 오래갔거든요.


한국에 와서 큰 애는 초4(초3 겨울 몇 달), 막내는 초1로 입학을 했고, 어느덧 큰 애가 중2가 되다니 참 감개무량하다는 표현이 잘 어울립니다. 저는 30대에 아이들 키우느라 정신없이 보냈고 마흔의 중반을 달리고 있네요.




중2 아들은 외국에 살다와서인지 한국에서 산 아이들보다 마인드가 어리기도 하고 성격이 부드러운 편이라 사춘기가 심하지는 않아요. 아직까지는요. 초5부터 살짝 시작은 했는데 오히려 중학생에 되고 말도 더 많이 하고 키도 저보다 훌쩍 커나가는 게 참 귀엽고 듬직해져 갑니다.


얼마 전 사생대회를 간다고 혼자서 버스를 타고 30여분 되는 곳으로 다녀왔는데, 반신반의했지만 미리 찾아보고 가더니 잘 다녀왔더라고요. 또 한 뼘 자랐구나! 싶어서 많이 칭찬을 해줬습니다. 오늘은 혼자 지하철을 타고 할머니 댁에 가보겠다고 전부터 해보고 싶던 것을 아침에 이야기합니다. 저와는 자주 가봤으니 잘 찾아가겠지만 나름의 도전입니다. 한 번 갈아타야 해서 방향과 노선만 잘 찾아간다면 문제없겠죠. 아이가 이렇게 하나씩 자라는 모습이 참 기특하고 뿌듯합니다.


사생대회 이야기가 나와서,

"엄마도 중1 땐가 사생대회 갔었지. 가서 글짓기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맞아. 아마 5월이었을 거야. 할머니네 집에 사진도 있을걸? 담에 엄마 사진첩 같이 보자. 단발머리에 교복 입고 찍은 사진 있어"


아들은 너무 궁금하다고 했습니다. 요즘 부쩍 저의 옛날이야기, 어린 시절 이야기를 묻습니다. 엄마는 중학교 때 어땠는지, 아빠는 어땠는지, 본인은 어린 시절 어땠는지 듣고 싶다고 합니다. 아! 정말 사춘기구나~


"너 정말 사춘기인가 봐. '나는 누구인가' 그런 생각하니?" 물어보니,


"그건 5학년 때 생각은 했고 요즘도 생각해. 엄마 아빠 옛날이야기가 궁금해. 할머니 이야기도"

아들이 말했습니다.


옆에 있던 막내는,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 그런 생각했어~"

라고 듭니다.


저는

"와~~~ 너네 대단하다! 엄마는 아직도 그런 생각해. 나는 누구인가?! 알지만 모르겠어서 아직도 찾고 있어"

아들 등을 토닥여주며 말해주었어요.




오늘 할머니 댁에 가서 할머니와 엄마 사진첩을 쭉 보고 오라고 해줬습니다. 사진 속에 가족의 역사가 다 담겨 있으니까요. 시간은 사진 속에 스토리로 남겨져 있습니다. 돌아가신 아빠의 모습, 친정 엄마 아빠의 젊은 시절, 증조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제 기억 속에 '엄청 할머니셨는데도 고으셨던' 증조할머니가 생각납니다. 외국인처럼 생기셔서 어린 맘에도 할머니가 참 예쁘다 싶었지요. 눈이 침침하셨고 늘 방 벽장 속에 손주들이 사다준 젤리를 보관해두고 저에게 몇 개씩 꺼내 주셨던 기억이 나요. 제 손을 잡아주시며 옛날이야기도 해주셨는데 재미나게 들었던 기억이 있어요. 손등의 피부를 만지면 쭉 올라오는 느낌이라 나이 든 사람의 피부는 이렇구나 생각했던 기억도 나죠. 따스한 음성과 손길, 방 안의 분위기가 유치원 정도였던 저에게 포근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아마 오늘 중학생 아들은 저희 친정에 가서 제 기억 속 곱던 증조할머니 사진도 보겠죠. 흰 한복을 입고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 옆에 분홍 원피스를 입고 자그마한 아이였던 저도 찾아볼 수 있을 겁니다.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 제 앨범을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그땐 저만 신나서 보고 별 관심이 없더니 역시 뭐든 다 때가 있나 봅니다.


사춘기라서 아이들과 부딪히고 힘든 경우도 많고 저도 아마 겪을 일들도 남았겠죠. 문을 닫고 방에 들어가서 마음이 아프다는 부모도 많고요. 아이들이 한 사람의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이라 어쩌면 그런 모습을 축하해줘야 하는 게 아닐까 싶어 졌어요. 아이 때처럼 늘 엄마~엄마~하지 않아 이제 이 엄마도 좀 숨을 쉬고 살고, 각자 방에 쏙 박혀서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고 비로소 나를 찾아가는 거란 걸 아니까 이 시간을 즐겨보려 합니다.


자신의 과거와 자신이 어디에서 온 건지 알고 싶어 하고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아들이 참 귀엽고 기특한 아침이었습니다. 그걸 알고 자신 스스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엄마 아빠가 만들어준 세계를 박차고 더 넓은 자신만의 우주를 만들어가기를 진심으로 응원해봅니다.


"너는 엄마 아빠의 아들,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주지만 너는 우주의 존재야. 내가 누군지 알고 또 머물지 말고 너만의 세계를 창조하며 그렇게 살아가길 바라. 엄마는 늘 지켜보고 응원하고 있을게! 엄마 아빠가 주어준 세계를 박차고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가길. 그 길에 선 너를 축하해♡"




+안찍는다는 거 빙수얘기하며 겨우 찍은 :)

빙수 먹으러 가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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