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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채영 Oct 17. 2022

비포 선라이즈

운명, 찰나, 사랑, 대화

웃는 표정이 너무 사랑스러운 두 배우♡


계절이 바뀌거나 혹은 어쩌다 문득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비포 선라이즈가 그중 하나다.

사랑스러운 줄리 델피와 천진한 소년같은 에단 호크의 낭만적 러브스토리. 기차 안, 책방, 레스토랑, 레코드 가게, 대관람차, 거리 등 낭만적 풍경과 둘의 끊임없는 대화 속으로 들어간다.



걷고 또 걷기
비포 선라이즈, 레코드 가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인물, 설정, 대화는 언제고 문득 떠오르는 영화일 수밖에 없다. 예쁘고 멋지게 차려입은 것보다 툭 걸친 가죽재킷과 기름지고 헝클어진 머리, 자연스러운 색감의 원피스와 허리에 질끈 묶은 체크무늬 셔츠. 하나하나 사랑스럽다.


특히 두 배우의 눈빛과 표정, 자연스러운 연기는 그 시절의 풋풋함을 정말 예쁘게 담았다. 삶과 사랑, 사회, 어린 시절 이야기 등 대화 주제가 정말 광범위한데 우연히 만난 사람과 저렇게 끊임없이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러니 사랑이겠지만. 그러니 영화겠지만.






비포 선라이즈, 기차 식당칸
악....이쁨

기차에서 시끄럽게 싸우는 부부 덕에 그리고 여자 친구에게 이별을 당한 덕에 둘은 기차 안에서 만나게 되었다. 어쩌면 그 시간, 그 기차 안에서 만나기 위해 남자는 이별이란 아픔과 상처를 입었고 여자는 하필 시끄런 부부 옆에 앉게 된 건 아닐까. 인생은 가끔 그런 우연 같은 필연으로 만들어진다.


결국 서로 상처받을까 봐 조심스러운 맘에 만날 날과 장소만 기약하고 연락처도 묻지 않고 헤어지게 된다. 그렇게 잘 맞는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고민과 불확신을 안고.



그 뒤로 두 배우는 '비포 선셋'으로 9년 후에 만나게 된다. 같은 배우, 이어지는 이야기, 지나간 시간, 재회와 끊임없는 대화, 줄리 델피의 자작곡이 아름다운 영화다. 그 후 마지막 시리즈 '비포 미드 나잇'까지 3종 세트로 두 배우의 대 서사극이 만들어진다. 갈수록 첫 영화 속 인물의 풋풋함은 사라지지만 시간과 나이, 삶이 어우러진 인물 묘사가 아주 현실적이다.





비포 선라이즈, 빈에서의 밤


그래도 어째도 가장 러블리하고 로맨틱함이 가득한 건 역시나 '비포 선라이즈'다. 중학교 시절, 영화의 엽서를 다이어리에 고이 간직했었는데 그 시절엔 사실 둘의 대화를 다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마음에 깊게 남아  아직까지도 참 좋아하는 영화인 걸 보면 아름다운 것은 이해의 영역을 넘어서는 듯하다.


찰나의 시간, 사랑, 삶, 나이 그리고 두 배우가 던지는 수많은 질문들을 생각해보며 함께 대화하는 기분이 들게 하는 사랑스러운 영화, '비포 선라이즈'.



재미난 대화가 많지만 초반에 나온 몇 가지, 에단 호크의 대사들이 참 좋다 :)


"난 어릴 때부터 남들의 헛소리를 잘 알아챘어요. 나한테 거짓말하는 걸 알았죠. 사람들이 내 인생에 어쩌고 저쩌고 하는 걸 잘 듣고 그냥 반대로 해버렸어요. 다들 악의는 없었겠지만 남들의 야망이 내 인생에 끼어드는 건 별로였거든요."


"모든 게 얼마나 모호한지 알게 된 것 같아요. 죽음조차 말이죠."


"미친 생각인 것 같지만 물어보지 않으면 평생 후회하게 될 것 같아서요. 더 이야기하고 싶어요. 당신 상황이 어떤지 모르지만. 서로 통하는 것 같아요. 그렇죠? 나랑 기차에 내려서 빈에 가요."


"사랑은 매우 복잡한 문제예요. 그건 그러니까 난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그게 욕심 없이 주기만 한 사랑이었을까요? 사랑은 아름답기만 할까요? 그렇지 않죠. 사랑은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 않아요?"


"기차에서 했던 생각인데요. 환생을 믿어요? 많은 사람들이 전생 얘기를 하죠. 비록 특정 방식으로 환생을 믿는 건 아니래도  영혼이 불멸한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잖아요. 좋아요. 이건 내 생각인데 5만 년 전에는 지구상에 백만 명도 안 살았지만 만 년 전에는 지구상에 이백만 명이 살게 되었고 지금은 지구촌 인구가 50~60억쯤 되죠. 우리 모두 각각 자신만의 특별한 영혼을 가지고 있다면 그 영혼은 다 어디서 온 걸까요? 현대 영혼은 원래 영혼의 일부분인 걸까요? 그렇다면 5만 년 전에 영혼이 각각 5천 분의 1로 나뉘었다는 건데 지구 시간으로 보면 찰나와 같죠. 우린 기껏해야 매우 작은 조각일 뿐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산재하고 이렇게 한정된 걸까? 그래요 나도 알아요 황당한 생각이란 거 알아요. 그래서 더 말이 되지 않아요?"

(이런 비슷한 생각 해본 적이 있어용 ㅎㅎ)



비포 선셋, 센강을 걷은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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