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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채영 Dec 07. 2021

[나만의 말 사전] 개운하다

마음 샤워


"아 개운해"


친정엄마가 어느 날 그러셨다. 아이들이 개운하다는 말을 쓴다며 네가 많이 쓰냐고 물으셨다. 첫째가 유치원 다니던 꼬맹이, 둘째는 더 어렸으니 개운하다는 표현이 아마 내 입에서 나왔으리라 짐작하셨나 보다.


몰랐다. 내가 개운하다는 말을 자주 쓰는지. 샤워를 하고 나와서 곧잘 쓰고 무언가 다 끝내고도 쓰는 듯했다. 그걸 아이들이 듣고 따라서 쓰니 내가 그 말을 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좋은 말도 나쁜 말도 아이들은 내 거울처럼 비춘다.


하고 싶은 일에 몰입해서 시간이 멈춘 듯 보내고 나면 또 개운함을 느낀다. 그간 궁금했던 것들을 알게 되면 목하고  뽀얘지듯 그런 마음을 갖는다. 그때도 난 "아, 개운해"라고 한다.



'마음 샤워'


사람 간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노력이 필요하지만 정말 편한 관계는 그저 존재만으로 충분하다. 긴 대화가 없이도 끄덕여지고 어떤 말을 해도 아~하고 이해가 되는 생각들. 그런 사람과는 함께하면 오가는 대화 속에 자연스레 입꼬리가 올라다. 같은 사람은 같은 사람을 알아본다.


예쁜 말을 의식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책에 나오는 방법이나 어떤 순서대로 애쓰지 않아도 물이 흐르듯 자연스러운 대화와 마음. 그런 사람과 대화는 정말 개운하다. 이걸 나는 '마음 샤워'라 부른다. 만의 말사전에 넣어놓은 표현이다.


이때는 내 마음이 알아서 둥글둥글해진다. 라디오 채널을 맞추듯 평소 지지직거리던 마음이 특정 구간을 찾아 드디어 제대로 된 소리가 난다. 아마 같은 주파수의 사람일 것이다.




목욕을 하든 일을 마치든, 무언가 정리가 되고 깨끗하게 단장을 하고 간단해질 때 개운하다. 어쩌면 개운하다는 것은 본질에 닿아서가 아닐까.


개운하다를 찾아보니 '기분이나 몸이 상쾌하고 가뜬하다' 혹은 '음식의 맛이 산뜻하고 시원하다' 라 나온다. 또 '운이 트이다' 란 뜻도 있다. 어감이나 뜻이나 정말 산뜻하고 가볍다.


산뜻하고 가볍고 시원한, 개운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사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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