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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채영 Dec 15. 2021

[나만의 말 사전] 말갛다

산뜻하게 맑다


"말갛다"


그 말이 참 좋다.


  갓 세수를 하고 난 얼굴은 말갛다. 물기를 머금은 말간 얼굴만큼 예쁜 모습이 있을까. 남녀노소 누구든 그렇다.


  아무리 갓 세수한 얼굴이 예뻐도 '갓'이 사라지기 전에 촉촉함을 유지하려 로션을 바른다. 거기에 화장을 조금 한다. 3분이면 끝나는 화장이지만 안 한 것보다 낫다. 팩트와 눈썹,  립스틱을 살짝 바르면  스스로도 기분이 좋다.


  "엄마, 마스크 쓰는데 왜 립스틱 발라요?" 어느 날 중학생 아들이 물었다.

   "글쎄... 립스틱을 바르고 단장하면 외출할 때 기분이 좋아져. 나를 위한 거지" 나는 말했다.

화장을 하고 마스크를 쓴다 해도 누군가 보지 않아도 내가 보고 내가 아니까. 결국 내가 행복하기 위해 우린 단장한다.




  예전에 그런 생각을 했다. '아무것도 치장하지 않은 나와 화장한 나, 둘 중 누가 진짜 나일까?'

(답이 없는 것생각하는 것을 좋아라 다.)


  어릴 땐 아무것도 안 한 나만이 나라고 생각했다. 순수한 100퍼센트의 나. 결국 가족들이 보는 내 모습 혹은 나만이 아는 내 모습이겠다. 본래 무언가를 더하면 결국은 내가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나이를 먹으며 어느 순간, 둘 다 나란 생각이 들었다. 나를 아는 대다수의 사람은 화장을 하고 눈썹을 그린 나의 모습을 나라고 생각할 테니. 조금이라도 치장한 나, 그 또한 나다. 내 본래의 모습이나 가볍게 단장한 모습 어떤 것이든 좋다.


  내가 누구인가란 생각도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몇 가지를 가지고 살든 하나의 모습으로 살든 다 자신이다. 원초적 모습에서 살짝 달라졌다 해도 본래의 순수함이 살짝살짝 엿보이는 사람. 그런 사람이 말갛다.




  외모에서 뿐 아니라 마음과 태도에서도 말갛다를 느낀다.  때로 자신의 마음을 불쑥 그렇지만 은은하게 내 보이는 사람, 세련된 매너 속에서도 인간미가 느껴지는 사람, 그 사람 자체가 보이는 사람, 조금 투박하고 심심하더라도 진심 어린 표정과 태도, 따뜻한 인간미가 느껴지는 사람들 말이다. 그런 사람은 참 말갛다. 


  배우로 치면 할리우드 여배우보다는 프랑스 여배우들이 말갛다에 가깝다. 가벼운 화장에 붉은 립스틱, 주근깨나 잡티가 드러나는 얼굴에 부스스한 머리를 쓱 묶은 모습들에서 말간 사람의 멋이 느껴진다. 그대로 드러내며 자신의 멋이 스며 나와서인지 나이가 들수록 프랑스 여배우들을 닮고 싶어 진다.


  '말갛다'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산뜻하게 맑다', '국물 따위가 진하지 않고 묽다', '눈이 맑고 생기가 있다'라 쓰여있다. 모든 뜻이 다 좋다. 당연한 말이지만 뜻조차 말갛다. 나도 말간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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