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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제인 Nov 09. 2022

3. 일상에서 일탈로

9유로를 들고 떠난 독일 소도시 여행



“와! 저 차 너무 멋지지 않아?”

길을 걷다 남편이 과장된 목소리로 외친다. 그리고 나는 매번 열광하는 시늉을 한다.

“우와- 정말이네? 굉장히 멋있네.”

남편은 내 서툰 연기력은 가볍게 무시한 채 다시 감탄사를 연발하며 말을 잇는다.

“카푸치노 같은 은은한 베이지 색이 아주 고급스러워 보여. 그리고 저 후미를 봐. 중후함과 실용성을 두루 갖추었네!”

그의 시선 끝에는 남편이 몇 년 전 구입한 자동차와 똑같은 모델이 서 있었다. 체코산 스코다(Skoda) 자동차였다. 평소 자동차에 관심이 없는 나는 독일에 와서야 스코다란 자동차 회사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풍문으로 들었던 한 일화는 꽤 마음에 들었다. 스코다가 아직 자동차를 만들기 전 창립자가 독일산 자전거 부품을 구하기 위해 편지를 보냈는데 독일에서 온 대답은 “우리의 부품을 사고 싶다면 독일어로 보내라!”였다는 것이다. 무례한 답장에 분개한 그는 자체 제작을 위해 힘썼다고 전해진다.


충분히 맞장구를 쳐주자 남편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질문을 던진다.

“근데 저 자동차 어디서 많이 보지 않았어? 바로 우리 자동차랑 똑같은 거야!”

그러면 나는 “아이코, 저런! 너무 멋있어서 못 알아봤네!”하며 같은 표정으로 농담을 받아쳐준다. 그제야 남편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콧노래를 부르며 가던 길을 간다. 덤 앤 더머가 따로 없지만 이것이 가정의 평화를 지키는 일이라 생각하면 쉽게 느껴진다.


우리는 지난 2019년 중고 소형차를 구입했다. 차를 산 뒤 남편 이름과 내 생년월일을 조합한 자동차 번호판도 달았다. 자동차는 결혼 후 처음 모은 목돈이 들어간 결실이었다. 차가 생기자 삶의 질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정수기가 없는 독일에서 더 이상 생수통을 나르지 않아도 되었고 다른 도시에 사는 친구들도 더 자주 만날 수 있게 해 주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독일의 기차(Deutsche Bahn)를 이전처럼 자주 이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독일 기차는 제시간에 오지 않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독일인은 시간 약속을 매우 잘 지킨다는데 독일 기차는 왜 예외인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애석하게도 삼 년이 지난 지금 자동차는 제구실을 잘하지 못하고 있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매일 같이 상승하는 원유 가격 때문이었다. 남편은 주유소를 볼 때마다 격해진 목소리로 분개하다가 다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쉬기를 반복했다. 예전과 비교해 두배 가량 오른 기름값을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가격이 싼 주유소를 찾아다니거나 혹시라도 밤에는 기름값이 조금 더 싸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컴컴한 저녁 주유소 전광판을 주시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 주변 도시로 여행을 가는 것은 사치였다. 그렇게 자동차는 짧게는 몇 주 길게는 한 달 동안 주차된 곳에서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불편함을 느낀 것은 우리 부부뿐만은 아니었다. 독일의 대중교통은 한국에 비하면 비싼 편에 속한다. 독일 정부는 여름휴가철인 5월부터 8월까지 고속열차를 제외한 모든 대중교통을 매달 9유로로 이용할 수 있는 ‘Neun Euro Ticket(9 유로 티켓)’을 만들었다.


마침 6월의 반을 한국에서 보낸 후 다시 독일로 돌아온 나에겐 조바심이 가득할 때였다. 독일의 여름은 긴 겨울에 비해 매우 빨리 지나가기 때문이다. 9월만 돼도 쌀쌀 해질 텐데, 이렇게 귀한 여름을 동네만 어슬렁 거리며 보낼 수는 없었다. 적어도 8월이 되기 전엔 떠나리라 하며 비장한 마음으로 구글 지도를 열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자 다이어리엔 오각형이 그려졌다. 코블렌츠(Koblenz)-카이저스라우턴(Kaiserslautern)-카를스루헤(Karlsruhe)-하이델베르크(Heidelberg) 이렇게 네 도시를 여행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이었다. 도시를 선정한 기준은 도시 사이에 직행열차가 다닐 것 그리고 열차 이동 시간은 두 시간이 넘어가지 않을 것이었다. 독일 열차에 의한, 독일 열차를 위한 계획이었다. 한 기차가 연착할 경우 모든 일정이 틀어지는 경우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가장 중요한 마지막 기준은 ‘교통비는 9유로가 넘어가지 않을 것!’이었다.




드디어 찾아온 여행날 우리는 첫 목적지인 코블렌츠(Koblenz)를 향해 떠났다. 코블렌츠까지는 독일의 라인강을 따라 ‘라인가우 열차(Rheingau-Bahn)’가 지나고 있기 때문에 이동이 편리했다. 일부러 평일 출근시간을 교묘히 피해 사람이 없는 시간대에 기차를 타기도 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그래, 기차여행이 낭만적이긴 하지’ 하며 지난 시간 독일 열차에 품어왔던 앙심이 조금 가시기도 했다. 기차 차창 너머 펼쳐지는 라인강 풍경은 아름다웠다. 강변을 따라 끝없이 펼쳐지는 푸른 들판, 동화 같은 집들 그리고 해수욕을 하거나 보트를 타는 사람들이 일정한 속도로 지나갔다. 영화처럼 흘러가는 풍경 사이에서 눈을 사로잡는 장면이 있었다. 강에서 큰 개와 함께 수영을 하고 있는 어린아이였다. 아이의 엄마와 아빠는 바로 뒤에서 서로의 허리에 손을 두른 채 그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가와 들판이 이어지는 전원적인 풍경 뒤로는 작은 집 몇 채가 늘어져 있었다. 그들에겐 마치 날 때부터 타고난듯한 여유와 행복이 느껴졌다. 인생에서 몇 가지는 절대 배우거나 새롭게 익힐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간지’나 ‘여유’ 또는 특정인이 풍기는 ‘분위기’ 같은 것은 배우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어색해 보이는 만드는 경우가 많다. 평화로운 풍경을 보며 ‘이런 동네에 집을 사려면 한국처럼 비싸지는 않을 텐데…하지만 위치 때문에 집 값은 쉽게 오르지 않을 거야’하며 생각을 하는 스스로를 보며 나는 이번 생에는 간지 나게 여유로운 분위기는 결코 못 가지겠구나 싶었다.


기차 안은 후텁지근했다. 반쯤 열어 놓은 창문에서 간간히 시원한 바람이 새어 들어오긴 했으나 기차 안의 열기를 식힐 정도는 되지 못했다. 창가에서 눈을 떼 다시 주위를 둘러보니 나처럼 호들갑을 떠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기차 안에는 그저 묵묵히 더위를 견뎌내는 사람들만이 가득했다. 남편 또한 굵은 땀을 흘리며 책을 보고 있었다. 9유로로 독일 전역을 갈 수 있게 해 준다곤 했지 에어컨을 틀어준다곤 하지 않았다는 것인가. 답답한 마음에 부채를 꺼내 펄럭거리며 기차 안에 조그만 바람을 일으켰다. 그러자 우리 뒤편에 앉아있던 한 승객이 웃음기를 띤 독일어로 한마디 건넨다. “조금 더 세게 부쳐주실래요? 덕분에 살만 하네요.” 그럼 그렇지. 독일 사람이라고 더위를 안 타겠는가. 이런 날 역 앞에서 부채를 팔면 한몫 챙기겠는데… 그만! 도대체 이런 생각은 핏줄에 새겨져 있나? 나조차도 나를 알 수가 없다. 한 번은 집 근처 노지를 지나며 남편에게 “여기 편의점 하나 차리면 딱일 것 같은데? 독일 사람들은 참 돈 벌줄 몰라.”했다가 돈이 전부가 아니라며 빈축을 산적도 있다. ‘쳇, 한국에서 신나서 편의점을 곳간처럼 드나들며 맥주를 사다 나르던 게 누군데?’하며 속으로 투덜거렸지만, 가끔 그 노지에서 여름에는 청년들이 모여 앉아 수다를 떨고 가을이면 아이들이 부모와 도토리를 모으는 걸 보면서는 조금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게 반경 3m 안의 사람들의 땀을 식혀주며 한 시간 반을 달리니 코블렌츠 중앙역에 도착했다. 평범한 독일 역사였다. 만약 장난 삼아 역 안의 ‘코블렌츠’라는 지명을 다른 도시로 바꿔놓아도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따분한 역사 말이다. 남편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저 교통비를 아끼며 콧구멍에 바람이나 쐴까 하며 떠나온 것이니 딱히 불평할 것도 없었다. 그래도 가끔은 익숙한 것에서 오는 안정감이 소중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마치 미세하게 변형된 수학 기출문제를 풀 때처럼 말이다. 나름 큰 역의 규모로 보아하니 맥도널드가 있을게 분명했다. 남편과 짐을 챙겨 아래로 내려가니, 빙고! 맥도널드가 노란색 간판을 빛내며 서있었다.




밀크셰이크를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으로는 자꾸만 경로를 이탈하려는 캐리어를 달래며 한참을 걸어가니 사 차선 도로 모퉁이에 있는 숙소가 보였다. 남편이 예약한 숙소는 모텔과 호텔 사이 경계에 있었다. 먼지가 날리긴 해도 도톰한 하얀 수건은 있었다. 미니바와 전기포트는 없어도 텔레비전은 큼직했다. 하지만 외관은 끔찍했다. 예약할 때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지만 잘 꾸며놓은 도심 속 푸른 녹색 구역은 호텔 수건처럼 하얀 먼지를 폴폴 날리며 공사 중이었다. 그래도 접이식 의자는 사진에서 보았던 것처럼 그 자리에 놓여있었다. 짐을 풀고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니 나이 든 여행객 몇몇이 맥주를 마시며 접이식 의자에 앉아있었다. 대낮부터 얼큰하게 취한 듯한 그들은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며 어디서 왔냐, 여행을 온 것이냐 등등을 물었다. 무관심과 무례함 사이 어딘가의 표정으로 말이다. 우물쭈물하며 9유로 티켓으로 여행을 왔다고 하니 엄숙한 표정이 풀어지며 반색을 한다. ‘9유로 티켓’이 마치 비밀 결사단체의 구호라도 되는 양 은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자신들 또한 9유로 티켓으로 여행을 다니는 중인데, 이미 은퇴를 했고 연금으로 생활 중이어서 매년 휴가를 다니기 힘들다며 말이다.


거대한 밥 위에 장식처럼 놓아진 생선이 곁들여진 독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초밥으로 점심식사를 해결한 후 코블렌츠에서 가장 유명한 ‘Deutsches Eck(도이체스 엑)’으로 향했다. 라인강과 모젤강이 만나는 삼각형 모양 두물머리였다. 중앙에는 카이저 빌헬름 1세의 기마상이 압도적인 크기로 세워져 있었다. 그 크기에 압도되어 멀리서 사진을 연달아 찍고 있는 사이 남편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먼치에 모래성을 기어오르는 개미처럼 기마상을 오르고 있는 익숙한 실루엣 하나가 눈에 띄었다. 역시나 남편이었다. 나는 기겁해서 다급하게 외쳤다.

“잠깐! 거기 올라가도 되는 거야? 저 커다란 쇠사슬 보니 들어가지 말라는 거 아니야?”


내 말이 들리지 않는 남편은 그저 해맑게 웃으며 이리오라며 손짓을 한다. 둘러보니 기마상 위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한국에선 잔디밭 위에도 ‘잔디밭으로 들어오지 마시오.’, 조각상 근처에도 ‘조각상을 만지지 마시오’ 등 하지 말라는 게 많다. 독일은 또 반대여서 문제이다. 내가 아는 말 중 가장 독일스러운 것은 ‘Betreten auf eigene Gefahr’인데, 출입에 발생하는 위험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라는 뜻이다. 언뜻 봐도 충분히 위험해 보이는 곳인데도 그저 이렇게 쓰인 곳이 태반이다. 남편 친구들과 등산을 갈 때면 종종 이 문구를 본다. 그리고 나는 그럴 때마다 당장이라도 뒤돌아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러면 친구들은 내 어색한 표정을 뒤로한 채 곳곳엔 광대버섯이 피어있고 버려져 녹슬어가는 자전거가 을씨년스럽게 서있는 숲 속을 마치 자기 집 앞마당이라도 되는 듯 태연히 걸어간다.


기마상 앞에는 이런 문구조차 없었다. 쇠사슬을 넘어 앞서가는 남편을 흉내를 내며 또 한편으론 흉을 보며 툴툴거리며 조각상을 기어올랐다. 가파른 계단을 오른 후라 숨이 가빠왔다. 남편의 손을 잡고 함께 아래를 내려다보니 도이체스 엑 앞 광장 풍경이 펼쳐졌다. 높은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두물머리를 내려다보니 이제야 여행을 떠났다는 것이 실감 났다. 남편은 장군처럼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데는 아래서 보는 것보다 위에서 보는 게 더 멋있어.”

남편 손을 다시 한번 꼭 잡으며 생각했다. 이 사람은 늘 내 한계를 뛰어넘게 해 주는구나! 물론 그것이 매번 자의 반 타의 반이어도 말이다.



조각상 위에서 바라 본 풍경. vivaJain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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