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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제인 Dec 08. 2022

4. 할까 말까 할 땐 하라!

낯선이가 가르쳐 준 카이저스라우턴 가는 길

9년 전 교환학생 시절부터 독일어로 세금 신고하는 지금까지도 일상생활에서 가장 까다롭게 느껴지는 것은 <인사>와 <스몰 톡(small talk)>이다.


인사의 어려운 점은 낯선이와 인사를 나누는 데 매번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무작정 모든 이에게 인사를 건넸다가 무시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은 시시해 보여도 하루의 기분을 결정한다. 요즘엔 ‘인사하는 법’에 대해 나름의 노하우도 생겼다. 우선 앞에서 다가오는 상태를 쓱 훑어본다. 상대와 눈이 마주치면 인사를 나눌 확률이 높아진다. 물론 눈을 마주치는 것 말고도 상대의 나이도 중요하다. 독일에선 나이 든 사람들끼리는 동네에서 서로 인사를 주고받는 것이 흔하다. 그 외에도 도시의 규모도 중요하다. 대도시에선 아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길거리에서 인사를 할까 말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반면 시부모님이 사는 도시에는 고작 천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산다. 동네를 산책할 마다 왕복 이십 분 정도 짧은 거리에서  ‘안녕하세요’, ‘좋은 점심입니다!’ 하며 무려 스무 번 가까이 인사를 주고받는다. 노하우를 써먹을 겨를도 없다.


물론 까다롭기론 스몰 톡이 더하다. 인사하는 상황은 상대가 받아주든 무시하든 몇 초 안에 끝나기 때문이다. 주변에 나 말고도 스몰 톡을 어려워하는 친구들이 종종 있는데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얼마나 길게 얼마나 깊게 이야기해야 할지 알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편하게 이야기를 걸어와 마치 친구에게 하듯 대답을 했는데 냉정한 얼굴로 ‘이건 너무 민감한 이야기 아니니?’라는 사람과 잔뜩 긴장해서 간단히 할 말만 하면 ‘아니, 이렇게 불친절한 인간이 있다니!’라고 반응 사람 사이에서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몰랐던 적도 많다. 한 번은 기차를 타고 이웃 도시로 가는 길에 대뜸 내 국적을 물어보던 한 청년과 스몰 톡을 하게 되었다. 낯선 사람이 이것저것 물어보는 게 퍽 당황스럽긴 했지만 이것이 이곳 사람들 문화인가 싶어 친절하게 대답해주었다. 하지만 이동 시간 내내 끝이 나지 않는 스몰 톡에 곤욕을 치르다 결국 이메일을 주고받고 나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그리고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외향적이지도 내향적이지도 않은 사람이다. 예를 들어 그는 나처럼 모르는 사람과 인사를 나누는 것은 어려워하면서도 반대로 그들과 스몰 톡을 나누는 데는 스스럼이 없다. 택시기사에서부터 파티에서 처음 만난 건너 건너 아는 친구까지 쉴 새 없이 떠든다. 건너편에서 모르는 할머니가 걸어오면 인사를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도 할머니가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밖에 내놓은 재활용품들을 보고 불평을 하면 '사실 저는 여기 그래서 더 자주 옵니다! 건질게 많더라고요.'라며 넉살 좋게 웃어 보이는 사람이다. 그러면 노여운 표정을 짓던 할머니도 뭐가 우스운 지 같이 한바탕 웃고는 다시 서로 갈길을 간다. 따라서 코블렌츠에서 카이저스라우턴으로 가는 2시간여의 기차여행에서도 남편이 말동무를 찾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 건너편에는 머리카락은 이미 모두 하얗게 새었지만 아직 눈에서는 생기가 흘러나오는 것처럼 보이는 노부부가 앉아있었다.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글을 쓰며 남편에게 물어보자 그 또한 ‘당신들도 9유로 티켓으로 여행을 다니시오?’와 ‘아직도 마스크를 안 끼면 호들갑 떠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게 놀랍지 않소?’ 사이에서 결정을 하지 못했다. 물론 아무렴 어떻냐는 생각이 들었다. 첫마디가 무엇이었건 남편은 누가 무엇을 주제로 말을 걸어도 늘 재치 있게 답을 하는 사람이다. 노인은 라인란트팔츠(Rheinland-pfalz)의 사투리를 사용해 독일인 남편에게도 그가 하는 모든 말을 알아듣기에 쉽지 않아 보였다. 스몰 톡에 재능도 흥미도 없는 나는 그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몇 년간 연마한 외국인 짬밥으로 ‘아하’, ‘정말요?’, ‘흥미롭군요!’ 따위의 추임새를 넣으며 그 둘의 대화가 물 흐르듯 흘러가길 도왔다. 스몰 하지 않은 스몰 톡이 시작된 지 삼십 분 후 기차에서 독일어 안내방송이 나왔다. 목적지가 아닌 다른 역에 정차해야 하니 승객들은 다음 역에 내려 기차를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몇 분 전 에어컨을 틀어달라는 승객들의 항의에 “에어컨이 고장 났으니 알아서 열차 내 시원한 구석을 찾으세요.”라 말하던 사람과 같은 목소리였다. 영어로 번역된 방송은 나오지 않았다. 독일 기차여행 이틀째였다. 그럼 그렇지.


독일 열차의 갑작스러운 변덕으로 또 모든 것이 흐트러졌다. 우리는 원래 정차하기로 한 역에서 다른 기차를 갈아타야 했기 때문이다. 돌발상황을 싫어하는 나는 바로 핸드폰을 꺼내 들어 경로 탐색에 들어갔다. 반면 대부분의 승객과 건너편 노부부도 당황한 기색 없이 태평해 보였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그렇지! 아인슈타인이 말한 시간이 상대적으로 흐른다는 것은 우주적 관념에서만 한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 이 나라와 이 남자에겐 나와 다른 시간이 흐르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때 노인이 입을 열었다.

“이 근처에서 요즘 선로 공사를 하는 중이라 그래. 자네들 카이저스라우턴 간다 했지? 다음 역에 내리면 열차가 금방 올 거야. 그 열차를 타고 ㅇㅇ역에 내리면 십 분마다 ㅇㅇ번 버스가 다녀. 그거 타고 쭉 가면 돼.”

남편이 그새 만든 스몰 톡 친구는 유용한 정보를 슬쩍 건네주고 우리 여행이 무사히 끝나길 바란다는 인사를 하고 유유히 떠났다.



“와! 정말 흥미로운 도시야!”

“그러게! 여기 안 왔으면 큰일 날뻔했네.”


남편과 짧게 반어법으로 지루하기 짝이 없는 도시에 대한 감상을 주고받았다. 카이저스라우턴은 코블렌츠보다 규모가 작은 도시였다. 왕년에 축구로 이름을 날렸다는 것 외에는 볼 것도 즐길 것도 없어 보였다. 유럽여행을 계획하는 한국 친구들 대부분은 독일을 경유지로만 생각한다. 그래서 다음에 독일에 놀러 갈게 하며 말을 해도, 막상 독일에 오는 친구는 거의 없다. 아, 물론 전혀 섭섭하지 않다.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다른 유럽 나라들이 저마다 특색 있는 문화와 볼거리 그리고 전통음식으로 가득한 데에 비하면 독일은 단조롭게 느껴지는 것은 나에게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물론 독일에도 베를린, 프랑크프루트, 뮌헨 등 유명한 도시들이 많지만 파리, 로마, 암스테르담 마드리드 등에 비하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카이저슬라우턴에 도착했을 때의 첫 감상은 만약 어떤 한국인이 독일 여행 중 우연히라도 카이저스라우턴에 도착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그 후엔 독일을 경유지라도 오지 않을 정도로 도시가 주는 따분함에 진절머리가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매우 개인적인 감상이다.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카이저슬라우턴이 다르게 다가올 수 있다. 카이저스라우턴은 카이저스라우턴 축구 클럽(F.C Kaiserslautern)과 그 팬에게는 상징적인 도시이다. 축구 클럽은 1950년대에는 서독의 대표적인 축구팀으로 이름을 날렸고 1990년대엔 DFP(Deutscher Fußball-Bund Pokal: 독일 축구 클럽 컵)에서 우승을 하며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도시 곳곳엔 축구와 관련한 포스터와 동상이 눈에 띄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카이저스라우턴 축구 클럽 팬클럽 이름도 붉은 악마(Die roten Teufel)이라는 것이다. 또한 역사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 도시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1990년대에 유적을 발굴하며 알려진 것으론, 카이저스라우턴에 인류가 정착한 것은 기원전 5500-5000년 전쯤이라 한다. 기원후 8세기부터는 지역 전체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300년 후에는 로마인이 정착해 길, 성당 그리고 수도원들을 만들었다. 그러나 로마 멸망 이후 카이저스라우턴은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가 기원후 800년부터 카롤링거 가문이 세력을 확장하며 그 영향권 아래에 들어섰고 그 후 크고 작은 유럽 전쟁사에 이름이 오르내리게 되었다 한다. 카이저스라우턴은 ‘바바로사 도시’로도 불리는데,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바바로사*가 현재 시청 자리에 성을 건설하며 도시의 전성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후대의 다른 신성로마제국 황제 리처드 폰 콘월(Richard von Cornwell)은 당시 독일을 방문한 후 결혼식을 카이저스라우턴에서 열었다는 대목에서 당시 도시가 얼마나 번영했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바바로사의 성은 화려한 모습을 잃은 지 오래이다. 1635년에는 30년 전쟁으로 당시 성의 일부가 소실되었고 1700년대에 다시 프랑스의 점령으로 성 전체가 파괴되어 지금은 폐허로 남아있다.


성은 파괴되었지만  흔적은 시내 중심부에 그대로 남아있다. 그리고  폐허 뒤로 카이저스라우턴의 현재 시청 건물이 우뚝 서있다. 삼층 짜리 넓고 낮은 건물 좌측 중앙에 24층짜리 높은 건물이 솟아있는  건물은 1968 완공 당시 유럽에서 가장 높은 시청사였다고 한다. 1959 공모전을 통해 28살의 어린 나이로 입상한 롤란드 오스터 (Roland Ostertag) 시청사를 출입하는 주민들이 도시 심장부에서 모든 곳을 내려다볼  있게 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건물을 지으려 했다고 한다. 놀라웠다. 독일 작은 소도시에서 유럽 전체의 역사가 얽혀있는 것도, 민주주의 정신을 아이디어로 삼은 고작 28살의 건축가가 제안한 안으로 시청사가 1960년대에 어졌다는 것도 말이다.


실제 공모전 참가 모델과 오스터탁(좌)와 그의 건축사무소 직원들, 사진 출처: https://www.bda-rheinland-pfalz.de/events/50-jahre-ratha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에겐 카이저스라우턴 곳곳을 둘러볼 시간은 많지 않았다. 도시에 도착할 무렵엔 이미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고 다음날은 또 바로 카를스루헤로 넘어가야 했다. 힘겹게 기차를 타고 돌아온 만큼 도시를 스쳐가듯 다시 떠나야 하는 게 매우 아쉬웠다. 숙소를 찾기 위해 구글 지도를 켜보니 시 외곽을 돌아가는 경로를 안내했다. 도보로 이십 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나와 남편은 고민 없이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했던 것은 카이저스라우턴에서 동북 방향으로는 보주 산맥(Die Vorgesen)의 시작점이 펼쳐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호텔은 시내 중심부에서 동북 방향에 있었다. “마치 신이 기차에 오래 앉아있던 우리를 위해 운동을 시키는 듯하네! 그래 역시 호텔이 싼 이유가 있었어.” 화가 나면 내 독일어는 모터를 단 듯 빨라진다. 오르막길을 오르는 기내용 캐리어의 바퀴소리가 작게 들릴 정도로 불평을 하며 길을 올랐다. 그러던 중 갑자기 남편이 우뚝 멈춰 섰다. 그러더니 핸드폰을 꺼내 구글 지도와 경로와 정반대 편에 있는 골목길을 번갈아보며 쳐다봤다. 남편 시선 끝에는 연립주택 사이로 난 가파른 계단이 이어져있었다.


“여기 말고 이 골목길을 통과하면 한 오분은 절약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구글이 그걸 알았으면 진작 그 길로 안내했겠지.”


평소 같았으면 남편의 말을 단칼에 자르지는 않았겠지만 모험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기차 연착에 예상치 못한 등산까지 하게 되어 인내심이 거의 바닥나기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편은 완고했다.

“제발 한 번만 믿어봐. 만약 다시 돌아가게 되면 네 캐리어까지 내가 끌게!”


솔깃한 제안이었다. 속는 셈 치고 남편의 뒤를 따라 캐리어를 이고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계단은 여러 다세대 주택 중앙을 통과하고 있었는데 주민들이 길을 돌아가지 않고 시내로 빨리 갈 수 있게 만들어 놓은 듯했다. 그 말은 즉슨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양손으로 캐리어를 번쩍 들고 조용히 올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번엔 불평도 하지 못하고 묵언수행을 해야만 했다. 가장 좋아하는 독일어 문구처럼 ‘Es geht auch vorbei(이 또한 지나가리라)’ 힘겨운 계단에도 끝은 있었다. 그리고 우연히도 계단의 끝에는 F.C Kaiserslautern의 홈구장인 프리츠 발터 스타디온(Fritz-walter-Station)이 서 있었다. 지름길로 돌아온 덕에 살면서 본 것 중 가장 웅장한 경기장을 극적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 여행의 좋은 점은 우연한 장면들을 마주칠 수 있다는 것이다. 낯선이와 건넨 인사와 대화 그리고 끝을 예상할 수 없는 갈림길에선 우연이 생긴다. 할까 말까 할 땐 해야 한다, 그래야 우연을 만날 거리가 생긴다.




카이저스라우턴, 2022, vivaJain


*바바로사: babarossa, 이탈리아 어로 붉은 수염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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