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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제인 Dec 22. 2022

5. 오분만 더 잘게

겉과 속이 다른 카를스루에 여행


부부로 산다는 것은 서로의 가장 맨 앞줄 관객이 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돈과 시간도 꽤 들어가는 극 프리미엄 1열 1번 좌석을 차지하는 것 말이다. 때로 이 프리미엄 좌석의 주인은  다른 관객들과 다르게 주인공과 극에 대해 상의도 하고 어떨 땐 직접 무대에 함께 뛰어들어할 때도 있다. 하지만 보통은 자리에 앉아서 극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주인공은 어떤 시련을 겪고 어떤 열매를 따는지는 묵묵히 지켜볼 뿐이다. 그리고 여기 내가 연애 시절을 합쳐 맨 앞줄에서 십 년 가까이 관찰 중인 한 남자가 있다. 나는 이 남자가 한 지붕 아래서 남자가 행복하고, 슬프고, 힘들고, 아파하는 모습을 모두 본다. 때때로 이 남자에겐 자랑하고 싶은 것이 있지만 꾹 참는 경우도 있고 화가 나긴 하는데 웃겨서 조금 당황스러운 경우도 있다. 또, 사람들을 웃기고 싶은데 체면 때문에 말을 못 꺼낼 때 짓는 표정도 안다. 어떤 주제에 눈을 반짝이고 어떤 뉴스에 화를 내는지는 말할 것도 없다.


지난 몇 년 사이 남자에 눈가엔 주름이 몇 개 더 늘고 흰머리가 예전보다는 더 자주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햇살에 반짝하고 빛나는 초록색의 눈동자가, 잘 말린 나뭇가지 향기가 풍겨올 것 같은 연 갈색의 머리카락이 아직 그의 청년이 지나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학생 때 입던 허름하고 구멍 난 반팔 티 대신 멀끔하게 차려입고 회사에 갈 때는 사뭇 진지해 보이기도 하지만, 주말 오후 함께 담요를 덮고 시시덕 거리고 있노라면 지나간 그의 소년시절 모습도 보이는 듯하다. 그리고 이런 그가 잘 때면 마치 그가 아기였을 때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든다. 그는 아주 평온하고 행복한 얼굴로 정말 천사같이 잠을 잔다. 그러나 문제는 단 하나, 이 남자는 진짜 신생아처럼 오래도 잔다는 것이다.


연애 초 대부분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 취향에 맞추려는 노력을 많이 한다고 한다. 나도 그래서 그동안에 남편을 따라 아주 많이 잤다. 연애초 같은 기숙사에서 만나게 된지라, 심심해서 그의 방을 찾으면 그는 열에 아홉은 누워 낮잠을 자거나 영화를 보고 있었다. 그럼 나는 그 옆에 들어가 똑같은 모양으로 누워 잠을 잤다. 마치 따뜻한 곳을 찾아 몸을 욱여넣는 고양이처럼 말이다. 그의 품을 파고들면 그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와 함께 잠에 들었다. 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나를 안고 잠에 드는 것이라 다.




“너 지금 안 일어나면 우리 조식 못 먹어.”

“….”


평소 잠귀가 매우 밝은 그는 이미 내가 옷을 입고 헛기침을 하는 동안 이미 잠에서 깼을 것이다. 하지만 고집스럽게도 그는 베개와 이불로 몸을 둘둘 말고 있다. 남편옷스타일이 변하고 얼굴에 미세한 주름이 잡혀버린 그 십 년 동안에도 끈질기게 변하지 않는 것 몇 있다. 바로 그가 오래 자는 것과 우리가 여행을 갈 때마다 싸우는 이유이다. 번데기가 되어버린 남편을 보니 그와 며칠 전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다. 때는 함께 여행을 계획하던 어느 오후였다. 남편은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이번 여행엔 조식도 같이 포함해! 사실 나도 너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고 싶어. 여행 가면 새로운 것도 좀 보고 그래야지.”

“진심이야? 있잖아… 나 또 싸우기 싫어.”

“아니야. 나 못 믿어? 이번에도 안 일어나면 그냥 나를 흔들어 깨워도 좋아.”

나는 장난스레 약속하는 그를 사방으로 훑어본다. 그는 거짓말을 할 때 눈 모양을 바꾼다. 물론 입 꼬리도 잊지 말고 관찰해야 한다. 눈과 입이 다른 표정을 짓고 있을 때 그는 거짓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알았어. 그럼 너 또 그냥 자버리면 나 이번에는 진짜 화낼 거야!”


지난 일을 회상해 봐도 어쩔 수 없었다. 이런 일이 반복될걸 뻔히 알면서도 그를 믿은 나 자신을 탓해야지. 배가 고파 참을성이 없어지자 짜증 섞인 한숨이 뱃속 깊은 곳에서 흘러나왔다. 그러자 숨소리가 남편 귓구멍에 들어간 듯 베개와 이불의 골짜기가 부스럭 거리며 지진을 일으켰다. 하지만 천둥소리 대신 들려오는 건 처절한 남편의 애원이었다.


“제발 오 분만! 날 사랑한다면 제발 오 분만 더 자게 해 줘!”


어제 분명 열 시 전에 잠든 남편이었다. 간절한 목소리에 기가 차지만 어쩐지 애처로워서 청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오 분 뒤 그는 또다시 내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인질로 십오 분을 더 자게 해 줄 것을 요구했다. 더 이상 협상에 응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 나는 홀로 방열쇠를 챙겨 식사를 하러 갔다. 삼십 분 후 졸린 눈을 한 남편이 한가로이 식당으로 내려왔다. 그는 몇 가지 남지 않은 음식들 중 자기 취향을 반영한 수박 세 조각과 커피 한잔을 야무지게 골아 담아 와서는 여유롭게 내 앞에 앉는다. 그래도 머쓱하게 웃는 게 어딘가 미안한 기색이다. 그 모습에 할 말이 없어진 나는 그저 남편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수박을 한입에 털어 넣고 커피잔을 손에 쥔 채 만족스럽게 창밖을 바라보는 남편을 보자, ‘그래 본인이 좋다는데 어쩔 수 없지’ 싶어 픽 하고 웃고 만다.


작은 소동을 뒤로하고 숙소를 나오니 바깥엔 날씨가 화창했다. 한여름을 맞은 독일의 식물들은 말 그대로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만약 식물이 동물처럼 울음소리라도 낼 수 있다면 그날의 카를스루에(Karlsruhe)는 분명 꽤나 시끄러웠을 것이다. 산책을 하려 구글 지도에서 도시 주변을 찾아보다 재밌는 것을 발견했다. 카를스루에 성을 중심으로 도시가 마치 축구공처럼 동그란 모양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지도를 확대해보니 그 중심에는 카를스루에 성이 부채꼴 모양으로 서 있다. 성은 샛노란색에 바로크 형식을 갖은 낮고 긴 건물인데 마치 성이 두 팔을 벌리고 도시 중심에 서있는 것처럼 보이고 부채꼴의 뒤편에는 넓은 공원이 펼쳐져 있다. 공원 안에는 누구나 제약 없이 모든 구역을 드나들 수 있었다. 온실을 만들어 이국적인 식물들은 전시한 곳도 잘 손질된 된 여러 가지 꽃과 분수가 있는 곳도 말이다.


이곳을 지나다 보면 마치 독일에 작은 독립적인 도시국가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마침 성의 중앙에 한 깃발이 펄럭이는 게 보였다. 깃발을 향해 성 뒤편에서 성을 향해 걸었다. 기온은 꽤 높았지만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했다. 가까이서보니 노란색과 붉은색으로 바람에 펄럭이던 것은 바덴(Baden) 지역 깃발이었다. 카를스루에는 18세기 빌헬름 후작에 의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후 200년 동안 바덴주의 수도였다. 그러나 성 앞 쪽에는 빌헬름 후작이 아닌 칼 프리드리히(Karl-Friedrich)의 동상이 서 있었다. 바덴 주의 노예제를 폐기한 문서를 오른손에 든 동상은 1844년 처음 이곳에 세워졌다고 한다. 그러나 독일 대부분의 크고 유명한 도시들이 그렇듯 카를스루에는 세계 2차 대전 무렵 폭격을 당했다. 성도 동상도 마찬가지이다. 샛노란 페인트로 깨끗이 칠해진 외관은 모두 예전 건축 양식에 따라 현대에 다시 복원된 것이라 한다. 하지만 내부는 예전 모습대로가 아닌 신식으로 채워져 있다고 한다. 이어 다음으로 향한 곳도 안과 겉이 다른 특별한 장소였다.


ZKM(Zentrum für Kunst und Medien)은 카를스루에 부채꼴 아래쪽에 있었다. 삼십 분을 걸어 도착한 곳엔 오 층짜리 건물이 놓여있었다. 건물의 뾰족한 지붕은 학교를 연상시켰으나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유리로 된 구조물이 건물 중앙에 연결되어 있었는데, 커다란 유리 상자가 건물 앞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것처럼 말이다. 안에서 본 것은 또 밖에서 본 것과 달랐다. 유리 건물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니 한옥의 중원처럼 내부는 넓게 트이고 네모 모양으로 위층과 연결된 복도와 계단이 중원을 둘러싸고 있었다. ZKM은 1914년과 1918년 사이 나치 독일 하에서 지어진 군수 공장이었는데  그 후 1988년 카를스루에 문화부에서 시작된 아이디어로 이곳을 현대미술과 기술의 접합으로 지금 세상을 더 잘 이해하고 소통하기 위한 장소로 바꾼 것이다. 이곳이 ‘미술관(Museum)’이 아닌 ‘센터(Zentrum)’로 이름을 지은 이유도 예술가를 위한 요람이 되고 싶은 마음에서란다.


오랜만에 미술관에 온 남편은 어쩐지 긴장한 듯 보였다. 남편과 여행을 할 때 지키는 규칙 중엔 ‘하루에 미술관 또는 교회 등 종교 건물은 하나 이상 가지 않는다.’가 있다. 남편은 유럽 교회들을 지루해한다. 한국 사람들이 절에 크게 열광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란다. 그렇다면 미술관은 왜 안 되냐 물으니, 현대 미술은 이해하기 어렵고 그 이전 시대 작품들은 재미가 없단다. 하지만 이 날 남편은 평소와는 다르게 성을 본 후임에도 미술관에 군말 없이 따라왔다. ZKM에서는 전시품과 관람자가 센서 또는 카메라를 이용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남편은 등을 쓰다듬으면 행복해하는 물고기를 만지고 , 딥 페이크(Deep-Fake) 기술로 만들어진 도널드 트럼프의 얼굴을 구경하며 재밌어했다. 그럼 그렇지! 남편은 어렸을 적 값비싼 컴퓨터를 뜯어보다 혼났으며, 좋아하는 TV 시리즈는 빅뱅이론이며 납땜을 재밌어하는 사람이다. 평소 관찰한 것을 토대로 남편을 위해 전시를 고른 터라 뿌듯했다. 하지만 한 시간 후 남편은 허기가 지는지 서둘러 전시관을 나와 미술관 안 카페로 내 손을 이끌었다. 케이크를 포크로 크게 나누며 남편은 전시가 재밌었다고 말했다. 미소를 지었지만 살짝 내려간 입꼬리를 보니 내가 홀로 조식을 먹던 얼굴이 이러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 표정에서 남편은 나를 위해 이곳에 와준 것이구나를 깨달았다. 다시 케이크를 입에 넣고 이번에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을 하던 남편은 “반드시 내일은 일찍 일어날게!” 하며 반짝이는 눈빛을 지었다. 아이고.





유리 건물을 나와 다시 성을 향해 걸었다. 해는 이미 서쪽을 향해 이었지만 햇살은 여전히 뜨거웠다. 성을 지나 뒤편 공원 안 성의 뒤통수가 빼꼼 보이는 곳에 놓인 의자에 앉아 땀을 식혔다. 나무가 많은 공원이었다. 마치 숲 속 공터에 누군가 벤치를 몇 개 버려둔 것 같이 말이다. 그러나 공원 바닥엔 쓰레기도 없었고 나무의자들은 깨끗했다. 독일에는 이렇게 꾸미진 않았지만 잘 관리된 소박한 공원들이 많다. 독일에서 나는 공원을 사랑하게 되었다. 함께 말이 없던 남편에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냐 물으니 남편은 진지한 눈빛으로 나무의 종류를 궁금해하고 있었다고 한다. 다시 웃음이 피식 나왔다. 남편은 웃는 나를 보고 따라 웃는다. 노란색 빨간색 깃발펄럭이는 성 아래 초록색 공원에 앉아 평생 이 남자가 행복해하는 것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피할 수 없이 흐린 날에는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관객석에서 그를 묵묵히 안아주며 말이다. 


카를스루에 성 앞 사자와 싸우고 있는 삼손, vivaJain,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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