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어를 쓰는 독일인 남편의 부모님

러시아 독일인의 후손인 남편의 이야기

by 비바제인


남편이 독일인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일단 그는 독일 국적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럼 독일 국적을 갖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독일에서 태어났거나, 부모님이 독일인 이거나, 아니면 독일에서 오래 거주하고 교육을 받아서 독일 국적을 받은 것일 수도 있다.


독일에 다른 나라를 대입해 보아도 비슷하게 생각할 것이다. 프랑스가 될 수도 있겠고, 캐나다나 호주로 한번 생각을 해봐도 얼추 비슷하게 상상이 될 것이다. 부모님의 문화와 출신 국가가 자신의 것과 일치하고 그 국가의 테두리 안에서 고유한 문화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으며 그 국가의 언어가 모국어인 사람.


대한민국에서 한국인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 한국어로 교육을 받으며 자란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는 조금 이해하기 힘들수도 있겠다. 당연한걸 왜 굳이 풀어서 설명하는거지? 하며.


한편으로는 아니, 뭐 독일인 남편에 대해서 왜 이리 복잡하게 설명하느냐 하는 독자들도 있겠다. 하지만 얘기를 조금만 더 들어보자. 왜냐하면 나의 남편에 대해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봐야하기 때문이다. 남편은 굉장히 평범한 독일의 성을 가졌기에 나조차도 처음에는 남편이 그냥 독일인 인 줄로만 알았다. 아직 남편이 남자친구였을 무렵 나는 그가 부모님과 통화하는 것을 잠시 들은적이 있다. 그가 5분도 채 안되는 짧은 통화를 하는동안 옆에 앉아있던 나는 굉장히 놀랬던 기억이 있다. 그가 독일어도 영어도 아닌 생전 처음 듣는 언어로 부모님과 통화를 했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물으니 그는 쑥스러운듯 웃으며 외계어처럼 낯설게 들리던 그 언어가 러시아어라고 말해주었다. 그렇다, 남편은 독일어를 쓰지만 남편의 부모님은 두분다 독일어보다 러시아어를 훨씬 유창하게 하신다. 즉 러시아어가 그 분들의 모국어이다. 그럼 부모님은 러시아분들이신가? 실제로 나는 시부모님께 같은 질문을 드린적이 있었는데, 그 대답은 '아니다'였다.




내 남편의 부모님은 소련이 해체되기 직전 러시아에서 이민을 오셨다. 그럼 러시아 사람아니냐고? 굳이 따지자면 그것 또한 아니다. 부모님 두 분 다 독일인의 핏줄을 가졌기 때문이다 (남편의 성이 독일 이름인 이유가 이것이다). 독일에서는 흔히 이런 사람들을 일컬어 'Russlanddeutschen'이라고 부른다. 혹은 'Deutsch-Russe‘라고하며 독일어로 'Deutsche in Russland und Deutsche aus Russland'을 의미한다. 한국어로 직역하자면 '러시아에 거주하는 독일인 혹은 러시아에서 온 독일인'이라는 뜻이다. 이는 짧게 ‚러시아 독일인’이라고 불린다. 남편의 아버지, 그러니까 나의 시아버지의 부친은 독일인, 모친은 러시아인이라고 한다. 남편의 어머니이자 나의 시어머니의 부계는 독일, 모계는 우크라이나이다. 지금으로부터 250여 년 전 두 분의 조상들은 각각 독일에서 러시아로 이민을 가셨고, 그 후 시간이 지나서 남편의 부모님 세대에서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는 카자흐스탄에서 서로 만나 남편의 누나와 남편, 이렇게 자식 둘을 낳고 가정을 꾸리셨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흘러 1990년대 초 소비에트 유니언이 붕괴되고 동독과 서독으로 나뉘여 있던 독일이 통일을 한 후 다시 자식들과 함께 독일로 이민을 오셨던 것이었다.


평소 호기심이 많은 나는 남편과 시부모님께 종종 이민 오게 된 시절과 그 이유에 대해서 종종 물어보곤 했었다. 늘 단편적으로 들었던 이야기를 이번기회에 정리를 해보려고 한다. 이제는 남편이 된 이 독일인 남자는 나와 가족이 된 만큼 그의 가족이야기는 나의 가족이야기 이기도 하기때문이다. 뿐만아니라 이것은 꽤 실제로 흥미로운 이야기이기도 하다. 2015년 기준으로 독일에 사는 러시아 독일인은 195만 명 정도라고 한다. 2015년 독일 총인구가 8천120만 명 정도이니 당신이 독일에 산다면 종종 러시아 독일인을 마주칠지도 모르는 일이다. (혹시 독일의 유명한 가수 헬레네 피셔를 아는가? 그녀 또한 러시아 독일인이다!)


독일인의 러시아 이주는 사실 1200년 경 무역을 위해 독일인들이 현재 러시아 영토에 상주하기 시작한 것을 시작하면 상당히 오래된 이야기이다. 하지만 시아버지와의 대화에서 알게 된 것을 미루어 보아 내가 알아야 할 부분은 거의 천년 가까이 흘러간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야기는 정확히 256년 전 러시아에서 예카테리나 여제가 즉위한 시점으로 돌아간다.




본인 스스로도 독일 출신인(당시의 프로이센) 예카테리나 여제는 남편 표트르 3세를 이어 러시아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1762–1796). 그녀는 1762년 즉위 후 영토확장과 농토 개간을 위해 대대적인 이민정책 추진했다. 이후 20세기 초반 러시아 혁명까지의 많은 독일인들이 러시아로 이주를 해왔다. 1763년 그녀가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시작된 이민 정책은 당시 굉장히 구미가 당기는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예카테리나 여제가 즉위 후 1762년에 상원에 보낸 서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러시아에는 정착 인구가 현저히 적은 불모지 지역이 많고 많은 외국인들이 이러한 불모지 지역에 정착할 수 있도록 허가를 요청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분야에 관련된 고문들과의 협의에 따라 이 명령을 통해 상원에 영구적인 권한을 부여하여 - 이것은 정치적 사안이기 때문에 - 장차 유대인을 제외하고 러시아에 정착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을 받아들이고자 합니다."


"Da in Rußland viele öde, unbevölkerte Landstriche sind, und viele Ausländer uns um Erlaubnis bitten, sich in diesen öden Gegenden anzusiedeln, so geben Wir durch diesen Ukas Unserem Senat ein für allemal die Erlaubnis, den Gesetzen gemäss und nach Vereinbarung mit dem Kollegium der auswärtigen Angelegenheiten - denn dies ist eine politische Angelegenheit - in Zukunft alle aufzunehmen, welche sich in Russland niederlassen wollen, ausgenommen Juden."



예카테리나 2세는 러시아의 볼모지를 개척할 미래의 이민자들에게 종교의 자유와 군 복무의 면제를 약속해주었고, 무엇보다도 초기 이민자금의 지원뿐만 아니라 30년간의 세금 면제 또한 보장해 주기로했다. 이외에도 주택 건설 비용, 가축 구입 비용의 지원과 10년 동안 이자 없이 대출을 해주는 특권이 이주민 모집 공고에 포함되어 있었다(이와같은 조건이라면 지금 시대에도 지원자가 많을 것이다!).


당시 독일의 라인(Rhein), 뉘른베르크와 뮌헨을 포함한 북부 바이에른(Nord-Bayern), 바덴(Baden)과 헤센(Hessen) 지역 및 팔츠 (Pfalz) 지역의 주민들은 1756년부터 1763년까지 이어진 7년 전쟁으로 상당히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렇기에 신문과 교회를 통해 적극적으로 이어졌던 러시아 이주 선전은 전쟁의 고통으로 힘들어하던 독일 지역 주민들에게 달콤한 유혹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림 1: 1763년 7월 22일 자 예카테리나 2세 황후의 선언문



그렇게 1764년부터 1767까지 삼 년 사이에 장인과 농민으로 이루어진 이민자들이 고국을 떠나 춥고 낯선 러시아 땅을 향해 길을 떠났다. 그들 중 독일에서만 3만 명의 이민자들이 모집에 응하여 다수를 이루었고 그 외에는 네덜란드와 프랑스, 덴마크 등의 지역에서 소수의 공동체가 이민을 결심하였다. 그들의 출신과 사정은 다를지언정 정든 고향을 떠나는 이유는 같았다. 그건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이었다. 하지만 행군길에서 이미 수천은 굶주림과 피로로 러시아 땅도 밟지 못한 채 낙오되었고 그중 고된 행군을 견디고 살아남은 자들만이 러시아에 입성할 수 있었다. 지친 육신에 낡은 옷차림을 한다 그들 사이에 내 남편의 조상들도 섞여있었다.


하지만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주민들은 깨달았다. 자신들은 수 세기 전 러시아에서 독일인 전문가로 대접을 받고 거주할 수 있었던 자신들의 조상들과는 현저히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이주민들은 약속과 다르게 자신이 정착할 지역을 선택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정부가 지정해 준 지역으로 끌려가다시피 해서는 형편없이 척박한 땅을 새로이 일구어야 했었다. 그들 중 평생을 장인으로 살아온 사람들은 자신의 업을 포기해야만 했고, 농부로 살아온 사람들도자신이 원하는 땅을 선택할 수 없었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 알아보면서 김영하 작가의 '검은 꽃'의 줄거리가 생각이 났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멕시코로 떠났지만, 사실은 속아서 일손이 달리던 멕시코의 농장으로 채무노예의 신분으로 팔려간 1000명의 우리 조상의 이야기가 어쩐지 겹쳐졌기 때문이다. 물론 러시아 독일인들은 땅은 환경은 척박할 지언정 개척지에서 자유민으로 신분으로 살았기에 우리 조상들이 영문도 모르고 노예로 팔려가 겪은 고통에는 비하지 못할 것이다.


당시의 러시아에 도착한 독일인 정착민 중 한명인 크리스티안이(Christian Gottlob Züge) 자신의 책 "러시아 개척자(Der russische Colonist)" 남긴 이야기는 우리에게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우리를 이끌던 사람이 갑자기 우리에게 발걸음을 멈추라고 말을 했다. 우리는 아직 밤을 보낼 막사에 도착하려면 멀었다는 것을 알았기에 굉장히 놀랬다. 그리고 이내 우리가 최종목적지에 도착했음이 분명하다고 무리 중 누군가 말했을 때는, 우리의 놀람은 절망으로 변해갔다. 작은 숲과 잡초가 무성한 들판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이 곳에 내동댕이쳐진채 우리는 충격에 빠져 서로를 바라보았다. 우리 중 그 누구도 자신의 수레에서 짐을 풀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 조금씩 충격에서 깨어나자 우리 모두의 얼굴에서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기색이 역력히 보였다… 함께 온 동포 중 하나가 절망에 빠져 한탄을 했다. ’이곳이 정녕 우리에게 약속되었던 신천지란 말인가!’ (…)"


크리스티안은 그의 책에 이어서, 도착한 곳의 형편은 기대보다는 현저히 떨어졌지만, 지역을 조사한 후에는 처음 도착후 두려워했던 것 만큼 척박한 땅은 아니라고 적었다. 하지만 그들이 조국을 떠나기전 약속된 조건은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우선 주택 건설을 위한 목재가 충분치 않아 일부 정착지의 주민들은 흙으로 만든 오두막에서 몇달 동안을 혹독난 날씨를 견뎌야만 했다고 전한다.


이렇게 정착민 중 일부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주변에 남을 수 있게 되었지만 대부분은 사라 토프 근처의 볼가 지역으로 가야 했다. 아래 지도는 러시아 독일인 이주자들이 러시아로 실제 이동했던 루트이다. 남편의 조상들은 1763년 프랑크푸르트 근교에서 류벡(Lübeck)으로 약 500Km를 이동한 후 배를 타고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도착해 다시 1500Km 여를 이동해 볼가 지역의 사라 토프로 이동했을 것으로 예상된다(진한 회색으로 표기된 1763년의 경로 참고). 이는 18세기 초의 도로의 상황과 교통수단, 그리고 남녀노소가 모두 섞여있을 이주민들의 상황을 고려하면 상상할 수 없이 고된 여정이었음을 예상할 수 있다.


그림 2: 1763년부터 19세기 중반까지 러시아로의 독일 이주


초기에 볼가 지역에서는 이만오천명이 조금 넘는 이주자가 정착해 마을과 땅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척박한 땅과 혹독한 기후조건, 그리고 해충과 전염병 외에도 이주민들이 겪어야 하는 고난은 남아있었다. 사라 토프는 당시 유목민 생활을 하던 투르크계의 카자흐족과 인접한 곳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무자비한 유목민들은 러시아의 독일인 이민자 정착지를 파손하고 주민들을 강탈하고 노예로 만들고는 했다. 이리하여 그들이 이주해온지 10년이 지났을 때는 초기 정착 인구의 3분의 2만이 남게 되었다. 이것이 남편의 조상들이 처음으로 독일에서 러시아로 이주를 하게 된 이야기이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남편의 조상들은 이렇게 250여년 전 살아남기 위해 낯선 러시아으로 이주해와서는 주어진 땅을 개척해야 했고 새로운 삶에 적응해야 했을 것이다.



다시 시간은 시부모님이 기억할 수 있는 시점으로 흘러간다. 약 백 년이 지난 후 19세기 후반인 1871년부터는 러시아에서는 이주민들을 대상으로 '균등화법(Angleichungsgesetz)'이 실시되었다. 이는 독일인 이주자 구역의 특별자치제도가 사라지고 러시아의 다른 지역과 같게 취급하게 되는 것을 의미했다. 이때부터 러시아어는 국가의 표준어로 제정되어 모든 지역에서 모든 행정업무를 러시아어로만 해야 했다. 그로부터 삼 년 후(1874)에는 러시아내의 독일인 이민자에게도 국방의 의무가 강제되었다. 이러한 조치는 한편으로는 독일인 이민자들의 발언권을 높여주었고(이제는 러시아의 소수민족으로 취급되지 않고 행정상 러시아인처럼 취급되기 때문이다. 당시는 러시아도 산업화 시대에 들어선 시점이라 그동안 소수민족으로 살아오던 독일인에게는 도시화와 산업화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전국적으로 ‚러시아화(Russifizierung)가 강력히 진행되는 것을 의미했다.


‚러시아화’의 다른 의미는 러시아화 되지 않은 것들 혹은 순전히 러시아에 뿌리를 두지 않은 것들에 대한 경계를 뜻했다. 균등화법의 실시로 러시아 독일인들은 이제 자신들이 일구어온 농업공동체를 떠나거나 경작지를 매매하여 농장사업으로 전환할 수도 있었다. 1861년 러시아의 황제인 알렉산더 2세는 농노제를 폐기했는데, 토지개혁 없이 폐기된 농노제는 결국 농민들이 땅 없이 빈손으로 거리에 나앉게 되는 사태로 이어졌고 이 중 대다수는 독일인들의 농장의 일꾼이 되었다. 이는 러시아 농민들 사이에 러시아 독일인에 대한 시기와 미움이 커지는 계기가 되었다.


게다가 균등화법이 실시된 1871년은 독일제국(Deutsches Reich)의 건국의 해이기도 하다. 이 전까지 퍼즐 조각처럼 분할되어 있던 독일이 하나의 제국으로 합쳐지면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되자, 러시아에서는 국경을 마주하게 된 독일제국과 독일인에 대한 경계가 커져갔을 것이다. 독일제국은 1795년 폴란드의 세 번째 분할 이후 러시아와 국경을 공유했기에, 이전 폴란드 지역에서 독일인이 러시아로 이주를 해오기도 했다(그림 2에서의 밝은 갈색으로 표기된 화살표 참고).


그림 3: 코카서스의 러시아 독일인인 Hummel 가족의 1863 년 사진


이렇게 19세기 후반의 제국주의 성격의 짙은, 아니 제국주의의 일부로서의 러시아화는 러시아 내부에서 점차 확대되고 강력해지는 독일인 이주자들의 행태를 ‚독일화 (Germanisierung)’이라 일컬으며 견제하기 시작했다. 세계 1차 대전이 시작되자 러시아인들은 무려 삼십만 명의 러시아 독일인이 러시아 군대를 위해 전투에 참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잠재적인 반란의 싹’ 혹은 ‚내부의 적‘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1914년 러시아의 마지막 차르인 니콜라우스 2세는 공공장소에서의 독일어 사용을 금지하였고, 1915년에는 모스카우에서 독일인에 대한 박해가 벌어지기도 했다. 같은 해인 1915년에는 러시아 내에서의 독일 신문과 서적의 발행이 전면적으로 금지되었다. 1917년 러시아의 정치개혁은 더 심해질 수도 있었던 러시아 독일인에 대한 박해를 멈추어 주었지만, 이미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시베리아로 유배 보내진 후였고 그들이 이루어 놓은 공장 및 모든 사유지들 또한 먼지가 되어 사라진 후였다. 나의 시부모님의 조부들도 이에 따라 그동안 일구어놓은 모든 것을 잃고 시베리아로 보내졌다고 한다.


1920년 러시아 내전 이후 러시아는 1922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등과 연방을 설립하며 소비에트 유니언의 전신을 만든다. 이때 시부모님의 조부모님과 부모님 세대의 가족들은 카자흐스탄으로 이민을 가게 되고, 그 후 남편이 만 5살 때 독일로 이민을 오기까지 그들은 카자흐스탄에 정착해 살게 된다.


그 후로는 러시아의 근현대사와 남편의 가족사는 어느 정도 큰 물결을 같이 한다. 그들은 세대를 거듭하며 러시아에서 정착해 지내는 동안 문화와 언어적 측면에 있어 이미 동화되게 되었고 종종 독일인 조상을 가졌다는 이유로 차별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크게 불이익을 받지는 않았다고 시부모님은 말씀하셨다.


남편은 카자흐스탄에서의 어린 시절을 굉장히 행복하게 기억한다. 신발도 없이 강아지들과 들판을 뛰놀았던 일이며 집 뒤편에 소와 돼지를 기르던 헛간 등을 그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고 한다. 배고픔은 일상이었고 목욕은 특별한 일로 기억하지만, 그는 아직도 그때 이야기를 하면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시부모님 말에 의하면 당시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웬만한 모든 것들은 자급자족할 수 있었고, 가족들과 이웃사이에는 정이 넘쳐서 힘든 일보다는 즐거운 일이 더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소비에트 유니언이 붕괴되고 독일이 통일을 이루자 그들의 삶은 다시 변환점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 후 조부모와 부모님들, 그리고 시아버님의 세분의 형제들과 그의 가족들, 그리고 이웃들까지 그들은 250년 그들의 조상들이 그랬듯 다시 이민길을 떠나게 된다. 이번엔 다시 독일로.




참고자료:


1. 혁명의 러시아 1891~1991, 올랜도 파이지스, 조준래 옮김

2. 세계사 편력 2. 3., J 네루, 곽복희, 남궁원 옮김

3. 위키피디아 - 독일 내 소수민족의 역사: https://de.wikipedia.org/wiki/Russischsprachige_Bevölkerungsgruppen_in_Deutschland#Geschichte

4. 위키피디아 - 저명한 러시아 독일인(독일어): https://de.wikipedia.org/wiki/Russlanddeutsche#Bekannte_Russlanddeutsche

5. 위키피디아 - 러시아에서의 독일인(독일어): https://de.wikipedia.org/wiki/Geschichte_der_Russlanddeutschen#Vorgeschichte_–_Deutsche_in_russischen_Städten

6. 위키피디아 - 폴란드의 분할 (독일어): https://de.wikipedia.org/wiki/Teilungen_Polens#/media/Datei:Partitions_of_Poland_german.png

7. 위키피디아 - 독일제국: https://de.wikipedia.org/wiki/Deutsches_Reich

8. 나무 위키 - 예카테리나 여제: https://namu.wiki/w/예카테리나%202세

9. 나무 위키 - 알렉산드르 2세: https://namu.wiki/w/알렉산드르%202세

10. 나무 위키 - 카자흐족: https://namu.wiki/w/카자흐

11. 러시아 독일인의 역사 - 균등화법(독일어): http://www.russlanddeutschegeschichte.de/geschichte/teil2/rahmen/angleichung.htm

12. Bundeszentrale für politische Bildung - 예카테리나 2세 시절 독일인의 러시아 이주(독일어): https://www.bpb.de/gesellschaft/migration/russlanddeutsche/252006/von-der-anwerbung-unter-katharina-ii-bis-1917

13. 러시아 독일인의 역사 - 독일인 이주민들에게 약속된 특권(독일어): http://www.russlanddeutschegeschichte.de/geschichte/teil1/abwerbung/privilegien.htm

14. 러시아 독일인의 역사 - 예카테리나 여제가 상원에 보낸 서한(독일어): http://www.russlanddeutschegeschichte.de/geschichte/teil1/abwerbung/manifest14.htm

15. 러시아 독일인의 역사 - 1763년 7월 22일 자 예카테리나 2세 황후의 선언문(독일어): http://www.russlanddeutschegeschichte.de/geschichte/teil1/abwerbung/manifest22.htm

16. 러시아 독일인의 역사 - 개척지에서의 첫인상(독일어): http://www.russlanddeutschegeschichte.de/geschichte/teil1/ankunft/erste.htm


그림 출처:


표지 사진: 1988 년 10 월 모스크바에서 러시아 독일인 대표단 사진 - 출처 LmDR 기록 보관소

1. Manifest oder Kolonistenbrief. (© Museum für russlanddeutsche Kulturgeschichte/ Inv.Nr.: 2010/270)

2. Deutsche Auswanderung nach Russland von 1763 bis Mitte des 19. Jahrhunderts. Lizenz: cc by-nc-nd/3.0/de/ (bpb, mr-kartographie)

3. Familie Hummel im Kaukasus. Foto von 1863. (© Museum für russlanddeutsche Kulturgeschichte/ Fotoalbum "Deutsche im Kaukasus" von Theodor Hummel, Berlin-Zehlendorf, 1933. Inv.Nr.: A6e HD 23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