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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제인 Oct 27. 2021

너는 시집살이 안 해서 참 좋겠다

나에게 없는 것


재작년 결혼식 준비를 하러 간 한국에서 나는 한 달 동안 청첩장을 돌리기 위해 몇몇 친구들을 만났다. 결혼식은 연말이었고, 휴가일은 그리 많이 남지 않았던 남편은 동행하지 못했다. 그는 결혼식 일주일을 전에 한국에 올 예정이었다. 준비한 청첩장이 거의 다 떨어져 갈 때쯤 대학교 동기 한 명을 만났다. 나보다 4년 먼저 결혼식을 올린 그녀의 초롱하던 눈밑에는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가느다란 주름이 놓여있었다. 식사를 하며 반쯤 마신 맥주를 뒤로하고 자리를 옮긴 우리는 다시 커피를 사이에 두고 앉았다. 아직 해는 중천에 떠있었지만 커피숍 안은 마치 비행기를 타고 다른 시간대의 나라로 온 듯 어두컴컴했고 은은한 조명만이 둘 사이의 작은 식탁을 밝혀주고 있었다. 최근 커피 공부를 시작했다는 그녀는 나에게 몇 가지 원두 종류를 추천해주었지만 나는 그저 ‘덜 신 것’을 시켜달라 하고는 커피 자루 옆에 놓인 높은 테이블 의자에 걸쳐 앉았다. 잠시 후 커피를 받아온 그녀도 발꿈치를 살짝 들어 올리며 자리에 앉았다.


 잠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그녀는 대뜸 혼잣말처럼 나지막이 질문을 던졌다.

“넌 그래도 외국사람이랑 결혼하니 시집살이는 안 해도 되겠네? 부럽다 야.”
 

시집살이라… 머릿속에 많은 장면들이 지나갔지만 나는 쉽게 답할 수 없었다. 그녀는 의외라는 듯 다시 나의 얼굴을 살폈다. 잠시 머릿속에서 말을 고르던 나는 어색한 미소를 간신히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지. 시부모님은 아직 어렵지만, 아무래도 한국의 시집살이와는 비교할 수 없지.”


그녀는 대답을 들으며  눈을 빤히 들여다보았지만 어정쩡한 나의 반응에서 비치는 미묘한 감정을 미처 알아채지 못한 듯했다. 그녀는 이내 한 시간 가량 쉬지 않고 자신의 시댁 이야기를 했다. 물론 즐거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야기를 마치고 결혼식에서 보자며 작별 인사를 할 때 그녀는 대뜸 당시 영화관에서 상영 중인 ‘며느라기’라는 영화를 추천해주었다.

“독일 가기 전에 꼭 봐, 나는 우리 친정엄마랑 같이 봤어.”

잠시 씁쓸함이 스쳐가는 듯했지만 어느새 그녀는 다시 처음 만났을 때처럼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오랜만에 바라본 그녀의 눈은 우리가 너무나도 어렸던 대학교 신입생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커피숍을 나서자 해는 서쪽을 향해 등을 돌리고 있었고 나는 그 뒤를 쫓아 걷기 시작했다. 홀로 생각에 잠겨 걷다 보니 금세 지하철 세 정거장 정도의 거리를 지나 집 근처에 다 달았다.


 집에 돌아오니 부모님은 모두 집에 계셨다. 엄마는 찌개를 끓이고 있었고 아빠는 그 옆을 분주히 돌아다니며 소고기를 굽고 계셨다.

“일찍 왔네? 빨리 손 닦고 앉아. 밥 금방 되니까.”

엄마는 집에 돌아온 나를 힐끔 쳐다보고는 다시 찌개를 향해 몸을 돌리고는 말했다. 저녁을 먹고 나는 엄마와 같이 ‘며느라기’를 보러 영화관에 갔다. 영화가 끝나자 엄마는 나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사실 영화는 엄마를 위한 것이었지만 엄마는 모르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나는 그녀에게 결코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물음은 어쩐지 나의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나는 외국 남자와 결혼했기 때문에 부모님도 당연히 외국분이시다. 명절에 친정보다 시댁에 먼저 가서 남, 아니 남편의 조상을 위해 제사상을 차리는 일도 없다. 러시아에서 이민오신 남편의 부모님은 독일어를 유창하게 하시지 못하기 때문에 안부 전화도 남편이 드린다. 물론 친정에 전화를 하는 것은 나의 일이다. 한 달에 두어 번 시부모님 댁에 가긴 하지만 빈손으로 가서 두 손 가득히 음식을 들고 와도 언짢아하시지 않는다. 나는 시집살이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에게도 ‘며느라기’ 시절이 있었다. 2015년 독일에 다시 돌아왔을 때 남편의 부모님은 나를 무척 반기셨다. 한상 가득 러시아 가정식을 해주셨고 집에 돌아갈 때는 정원에서 기른 장미를 한 아름 안겨주셨다. 나는 손해 보는 것을 싫어하는 만큼 도움을 받고 돌려주지 않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남편 부모님 집을 갈 때면 나도 항상 음식을 해갔다. 시댁에서 받아 온 음식을 먹는 것은 그와 나 둘이었지만, 음식을 다시 해가는 것은 나 혼자였다. 이상하지 않았다. 그저 빚지는 것을 싫어하는 나의 성격 탓이라고 생각했다. 시부모님의 생신에는 한국음식을 유난히 좋아하시는 시어머님을 위해 조그만 주방에서 꾸역꾸역 김밥을 말았고 나도 아껴서 먹어야 하는 귀한 김치를 한솥 가득 넣어 김치찌개를 끓여가기도 했다. 가끔 나도 모르게 서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저 유별난 성격 탓을 하며 넘겼다.


남편은 응석받이까지는 아니지만 어려서부터 귀여움을 많이 받고 자랐다. 친척들과 함께 자란 남편은 어릴 때부터 군것질을 못하게 하는 엄마를 피해, 여기저기 친척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유머를 하나 설명하고는 그 대가로 두 손 가득 군것질거리를 받아왔다고 한다. 남편의 이모들은 이미 몇 번이고 들은 그 이야기를 매번 나에게 해주신다. 그 시절 귀여웠던 남편을 떠올리는 듯 애정 어린 시선과 함께 말이다. 특히 남편에 대한 어머님의 사랑은 유별나다. 간혹 남편과 어머님 가까이 있으면 내가 슬쩍 자리를 피하고 싶을 마음이 들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인지 남편은 청소나 음료수 나르기 등의 잡일은 많이 했어도 부엌과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 자라게 되었다.   

 

시댁에 가면 식사 준비는 역시나 시어머니가 하신다. 남편과 시아버님은 주로 거실에서 이야기를 하며 앉아있다. 러시아 가정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나는 그 옆을 어정쩡하게 맴돌다 결국 식사 준비를 거든다. 시어머니는 나의 도움을 마다하지 않으신다. 서툰 독일어로 그릇은 어디 있는지 음식은 어디서 내와야 하는지 일러주신다. 함박미소를 지으며 묵묵히 일을 하면서도 나는 속으로 ‘내가 여자라서가 아니라, 그저 예의 있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일 뿐이다’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하지만 시댁에 갈 때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나는 점차 불편함을 느꼈다. 한국에 우리 엄마가 남편에게 부엌일을 부탁하는 일은 없다. 남편도 자연스레 소파에서 한국어 방송을 구경하며 기다린다. 가슴 한편에서 밀려오는 불편한 마음이 커지는만큼 음식을 해가는 일도 줄게 되었시댁에 가서도 어머님 혼자 음식을 하시면 남편에게 조용히 가서 도우라고 이야기를 했다. 남편은 별말 없이 어머님에게로 가 일을 도왔다. 이제 나는 모르는 척 아버님과 러시아 티브이 프로그램을 본다. 요즘 남편은 종종 모두에게 앉아있으라 하고는 혼자 차와 다과를 내오기도 한다. 시부모님의 속은 알 수 없지만 어머님의 시선이 가끔 텔레비전을 보는 뒤통수에 머무는 게 느껴질 때가 있다. 모른 척 웃으며 앉아있는 나에게 두 분은 별말하지 않으신다. 한국이었다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한가로운 며느리의 가슴이 먹먹해지는 때도 있다. 오랜만에 시댁에 찾아간 날 어머님은 남편이 살이 쪽 빠졌다고 걱정하셨다. 당시 남편과 나는 둘 다 살이 빠진 상태였다. 남편은 워낙 식욕이 없는 편이었고 나는 초봄의 오락가락하는 날씨에 평소 활발하던 식욕을 잃은 터였다. 하지만 어머님의 걱정은 남편만을 향해있었다. 시어머님은 가끔 집에서 무엇을 해 먹느냐며 사진을 보여달라고 하신다. 남편을 걱정하는 마음이 당연하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왜 그래? 알레르기. 남편에게는 말할 수 없었다. 밥맛이 없으면 나는 친정엄마가 무척 그립다. 밥 먹는 모양새가 왜 그러냐면서 툴툴대면서도  밥그릇 쪽으로 바짝 반찬을 밀어주던 엄마였다. 업무에 하루 종일 바빠 점심을 김밥으로 때우면서도 자식들을 위해 하루에 함께 먹는 저녁 한 끼 제대로 먹이려고 두 손 가득 장을 봐오던 엄마였다. 독일에서 밥맛이 없으면 나는 무엇도 할 수 없다. 독일 슈퍼마켓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은 밥맛을 돌려주긴커녕 떨어뜨리는 것들로만 가득이다. 그러다 결국 라면 봉지를 뜯는 것이다.


 이렇게 작은 순간에서 나는 부재를 느낀다.  편에 서있는 사람의 부재 말이다. 부모라는 그 이름의 존재가 너무나 그리워지는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시집살이는 하지 않는다. 그저 타향살이를 할 뿐이다.




그림: Soorimm - https://www.instagram.com/soorimmki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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