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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제인 Nov 01. 2021

독일에서 사주를 보다

한국에서 전해 들은 나의 운명


최근 독일에서 사주를 봤다. 의아해하겠지만 그대가 이 문장을 잘 못 읽은 것은 아니다. 독일에서 사주를 보게 된 경위는 이렇다. 최근 함께 독일에서 지내고 있던 친구가 한국에 다녀왔는데, 그녀는 독일 교포인 남편의 ‘한국 방문 위시리스트’에 적혀있던 사주보기를 했다고 한다. 재치 있는 입담은 물론 전생까지 들여다보는 듯 모든 것을 맞추었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순간 혹한 마음이 들었다. 시시콜콜 그녀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었냐며 묻는 나에게 그녀는 카톡으로 해외 상담도 한다는 사주 아저씨의 연락처를 넘겨주었다. 아무래도 나의 호기심을 알아챈 듯했다. 못 이기는 척 연락처를 저장해두었지만 채팅하기를 누르기까지는 며칠이 걸렸다. 21세기는 미신을 없애지는 못해도 통신 기술의 발전은 오히려 미신의 전파에 도움을 주는구나 싶었다.


‘아니야, 그놈의 한국 미신을 독일에 와서까지 믿어야 하나?’

철학과 과학의 나라 독일에서 사주라니? 그렇지만 사주가 무속신앙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다. 무슨 동자, 무슨 할아버지와 접신한 무당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저 내 이름 석자와 생년월일로 보는  통계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통계? 이름과 생년월일로 유추할 수 있는 통계는 없다.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타로는? 별자리 운세는? 내가 독일에 와서 가장 놀랐던 것은 꽤 많은 독일인들이 별자리를 믿는다는 것이었다. 별자리에 심취한 몇은 단순히 생년월일로 나뉜 12개의 별자리뿐만 아니라, 태어난 날에 태양과 달 그리고 행성의 위치에 따라 사람들의 성격과 운명을 알 수 있다고 믿는다(물론 모든 독일 사람이 별자리 운세를 믿는 것은 아니다. 몇몇은 별자리 운세가 히틀러가 신봉한 신비주의에서 왔다며 이를 혐오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인 중 혈액형에 따라 성격을 유추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 사람들도 혈액형 유형에 대한 농담이나 짧은 글들을 읽는데 별다른 거부감이 없는 것처럼 독일 사람들에게는 별자리 운세가 그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래, 불쉿(Bullshit)이야.’

아무래도 요즘 정신상태가 말이 아닌가 보다 싶었다. 몇 주 전 다녀온 스페인의 따사로운 햇살을 아직 못 잊은 채 독일에서 지내자니 몇 년간 잊고 지내던 우울증도 슬금슬금 다시 생길 판이었다. 신년 계획의 마감일은 다가오는데 연말이 다되도록 이룬 것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아, 물론 한 손으로 말이다. 프리랜서라고 어디 가서 이야기를 하면 농담처럼 돌아오는 파울 랜서(faul-lancer, 독일어 형용사 ‘게으른(faul)’과 프리랜서(freelancer)의 합성어 신조어로 프리랜서를 부정적으로 이르는 말)를 웃음으로 넘기기가 힘들어진 때이기도 했다. 아니 그렇다고 불확실한 미래를 더 불확실하게 느껴지는 사주에 의지를 해? 너도 참 밑바닥이다. 머릿속에는 조롱과 회의로 가득한 목소리가 울려왔다.


‘아냐, 뭐 재미로 보는 거지. 좋은 것만 새겨듣고 나쁜 건 흘려들으면 되는 거 아냐?’

재미로 볼 거면 오만 원을 주고 사주를 본다? 그것도 참 아이러니다. 지난번에 외주 받은 글쓰기의 대가는 오만 원이 채 안되었고, 반년 동안 틈틈이 스톡 이미지를 만들어 판 돈도 겨우 오만 원이 넘었을 뿐이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나의 손은 ‘채팅하기’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그래. 연락만 해보자. 지금 바로 상담할 수 없으면 그냥 잊어버리자. 한국에서 날아온 답장은 다른 이야기를 했다. 한국은 이미 저녁시간을 넘겼을 정도로 늦은 시간이었지만 바로 상담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해왔고, 요금 또한 상담 후 지불할 수 있다고 했다.


그 뒤로 나는 얼굴도 모르는 사주 아저씨와 한 시간 가량 통화를 했다. 사주를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지만, 나의 사주에 대해 무지한 상태는 아니었다. 친정 엄마는 고민이 있을 때마다 ‘심리상담’보다는 ‘사주상담’을 선호했고, 우리 남매의 대학 진학이나 진로 상담도 우리보다는 사주 상담에게서 답을 얻곤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낯익은 이야기들을 묵묵히 들으면서도 참 신기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래, 수많은 사주 상담가들이 같은 이야기를 하는 거 보면 아예 헛소리는 아닐 수 있어.


“앞으로 제가 쭉 외국에 살게 될까요?”

“제인씨는 한국에서 살 운명이 아니에요. 한국과 인연이 별로 없는 사주입니다. 비석도 외국에 세울 팔자예요.”


“프리랜서로 일을 하고 있긴 한데… 원래 생각했던 방향도 아닌 데다 일을 하는 것 자체에 회의가 와요.”

“원래 올해까지는 공부를 할 사주라 그래요. 올해 연말이 지나면 갈팡질팡하던 마음도 사라지고 새로운 변화가 올 거예요.”


그동안 가슴에 담아두고 있었던 고민들을 타인에게 늘어놓고 있다 보니 마음이 슬며시 열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 내용을 완전히 신뢰해서가 아니라, 그 끝을 가늠할 수 없이 길게만 느껴지는 터널에 끝이 있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안심이 되었다.


‘사주는 제인씨의 인생을 결정하는 예언서도 아니고 그저 지금 현재 어디에 와있는지 대략적으로 알려줄 뿐이에요.’ 통화를 끝내고 잠시 혼자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사주가 내 인생을 예언해 주지 않아서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결말을 알고 보는 소설과 악당이 누구인지를 알고 보는 영화는 세상에서 가장 지루하게 느껴질 것이다. 사주를 보기 전과 비교해 새롭게 알게 된 것 또한 없었지만, 내가 어떤 질문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는지를 스스로 알게 되었다는 것 자체가 해소감을 안겨주었다.


한 시간 동안 통화하며 들은 내용을 빼곡히 받아 적은 공책을 접고 책을 꺼내 들었다. 나의 길이 어디 있는지, 이 길고 어두운 터널의 끝이 어디일지는 내가 정하는 것이다. 잠시 책에서 눈을 떼고 핸드폰을 꺼내 ‘사주 상담사’ 아저씨의 연락처를 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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