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지는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쯤,
나는 욱신거리는 턱을 문지르며 일어났다.
바지에 묻은 흙먼지를 툭툭 털어내며
아무도 없는 골목을 향해 중얼거렸다.
"봐줬다, 인마. 나 아니었으면 너 오늘 골절이었어."
혹시라도 누가 이 한심한 꼴을 봤을까 봐
사방을 휙휙 둘러보았지만,
다행히 길고양이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욱신거리는 통증 덕분에 정신이 확 들었다.
진짜 2006년이 맞긴 한 모양이다.
죽을 때까지 다시는 안 마주칠 줄 알았던
그 인간 말종 김준영까지 본 걸 보면.
나는 젊은 내가 어디로 향할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저 녀석이 결국 돌아갈 곳은 집뿐이니까.
익숙한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한참을 걷다 보니 가로등 불빛 아래 낯익은 건물이 나타났다.
2026년에는 재건축 소식으로 시끌벅적했던
그 오래된 아파트가, 이곳에선 아직 팔팔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복도식 아파트 4층. 우리 집 창문 너머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계단으로 올라가 창틀 사이로 안을 훔쳐보았다. 복도식 아파트는 사생활 보호가 참 안 된다는 사실이 오늘따라 절실히 체감됐다.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보던 아버지는
아직 머리숱이 까맣고 풍성했고,
주방에서 움직이는 어머니의 모습은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작고 가냘팠다.
지금 내 눈엔 두 분 다 형님,
누님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젊어 보였다.
당장이라도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엄마, 나 배고파!"라고 외치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나는 겨우 숨을 죽인 채 어두운 계단 구석에 몸을 숨겼다.
그때였다. 터덜터덜,
복도 끝에서 익숙한 발소리가 들렸다.
아까 골목에서 나를 버리고 도망쳤던,
또 다른 나였다.
녀석은 현관문 앞에 멈춰 서서 한참 동안이나 한숨을 내쉬었다.
준영이 형한테 당하고 온 직후라 그런지
힘없는 모습이었다.
녀석이 도어록 번호를 누르려는 순간,
나는 어둠 속에서 나지막이 이름을 불렀다.
"관희야."
녀석이 옆을 돌아봤다.
녀석은 나를 확인한 순간,
대답 대신 미친 듯이 번호를 눌렀고,
도어록 해제음이 울리자마자 집 안으로 잽싸게 몸을 던졌다.
쾅-!
철문이 닫히는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나는 당황하지 않았다. 여기가 어떤 구조인지 내가 모를 리 없으니까.
나는 현관 바로 옆,
복도 쪽으로 난 작은 방 창문 앞에 섰다.
얇은 알루미늄 새시와 방범창 하나가 전부인,
내 방 창문.
역시나 안에서 녀석이 헐떡이는 숨소리가 창틈으로 고스란히 흘러나왔다.
나는 방범창에 바짝 다가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문 잠근다고 해결될 거 없어. 너 지금 방바닥에 가방 던져두고 침대에 주저앉아 있지?"
안에서 들리던 거친 숨소리가 딱 멈췄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
창문이 드르륵 하고 슬그머니 열렸다.
방범창 너머로 겁에 질린 관희의 눈동자가 보였다.
"아저씨, 도대체 왜 이러시는 거예요?"
떨리는 목소리였다. 나는 창살을 가볍게 쥐며 녀석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잘 들어, 관희야. 나 절대 미친 사람 아니야. 그리고 너 해치러 온 것도 아니고."
"그런데요?"
"나는 20년 뒤에서 온 너, 김관희다."
녀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창문이 도로 닫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