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월드컵

by 호운

창문을 닫은 관희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더 소란스럽게 했다가는

엄마, 아빠는 물론 동네 사람들에게도 민폐일 것 같아 일단 후퇴하기로 했다.


'아 씨, 나 잘 곳이 없잖아?'


집도 절도 돈도 없이

추억을 떠올리며 정처 없이 동네를 떠돌았다.


꼬르륵-


배에서 소리가 요란하다.


그때

사람들이 빨간 티를 입고

"대~한민국!" 외치는 소리가 길가에 울려 퍼졌다.


'아, 월드컵 기간이었지...'


한 호프집 유리에 붙은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대한민국 이기면 오늘 전 테이블 공짜!!


나는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대한민국 대 토고전. 결과는 2대 1 승리.'

'잘됐다. 뽕 뽑아야겠다.'


나는 당당하게 호프집 문을 열고 들어갔다.


"사장님, 자리하나요."

"혼자 오셨나요?"

"네. 안주 요거, 요거, 요거, 요거.

맥주 2000 주세요."


아주머니가 황당하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혼자서 너무 많은 거 아녜요?"

"다 먹습니다. 다 주세요."


킥오프 휘슬이 울렸다.

기억이 완전하진 않았다.

세부 장면들은 흐릿했지만 결과만큼은 확실했다.


'역전승했었지?'


토고의 선제골이 들어갔다.

가게 안은 초상집 분위기가 됐다.

사람들은 머리를 감싸 쥐며 욕설을 내뱉었지만, 나는 닭다리를 뜯으며 속으로 외쳤다.


'조금만 기다려라, 이천수가 곧 프리킥 넣는다.'


그러다 갑자기 머리가 번뜩였다.


'난 천재야.'

"여러분, 우리나라 절대 안 져요!

지면 제가 여러분들 술값 다 내드립니다!"


사람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걸려들었어.'

"근데 저도 밑지는 장사는 할 수 없으니, 우리나라가 이기면 여러분들이 저에게 오천 원씩만 주시는 건 어떨까요?"


"어이, 아저씨! 원래 이기면 공짜야."

'아 씨 여기까지 생각을 못했네. 더 세게 치자.'


"알죠. 지면 제가 여러분들께 술값 플러스 만원씩 더 드리겠습니다. 대신 이기면 딱 오천 원씩입니다. 대한민국 승리에 그 정도 투자 못 하십니까?"

내 당당함에 분위기가 묘하게 바뀌었다.


'미친놈'이라는 눈초리였지만,

우리 내기의 민족 대한민국 사람들은 하나둘 테이블을 두드리며 찬성하기 시작했다.


후반전이 시작됐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나라의 프리킥 찬스가 왔다.

나는 입가에 묻은 양념을 닦으며 조용히 읊조렸다.


"자, 이천수 들어갑니다."

휘익—

공은 골대를 살짝 빗나갔다.


"아아아악!"

호프집이 탄식으로 가득 찼다.

'어? 뭐야?'

나는 당황했지만 애써 침착함을 유지했다.


'괜찮아, 이천수가 아니었나?

분명 2대 1로 이겼어.'


하지만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갔다.

후반 35분, 40분, 추가시간...

그리고 마침내 경기 종료 휘슬이 울렸다.

최종 스코어: 대한민국 0 - 1 토고


'X 됐다.'

"아아아아악!"


호프집은 완전히 패배의 분위기에 잠겼다.

사람들은 하나둘씩 나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빨간 티셔츠를 입은 아저씨가

천천히 내 테이블로 다가왔다.


"자, 아저씨. 술값 계산 좀 해볼까요?

사장님 전체 계산!!"


아주머니가 계산기를 두드렸다.


"전 테이블 합쳐서... 어휴, 사십이만 삼천 원 나왔네요."

'사십이만 삼천 원?! 사람은 삼십 명은 족히 될 것 같은데...'


"저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시치미 작전을 시행했다.


"여기 사람들이 다 증인인데?"


사람들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순간 기발한 생각이 또 떠올랐다.

'오늘따라 두뇌 회전이 아인슈타인급이군.'


손을 주머니에 넣고 이상한 장치의 버튼을 눌렀다.

"어이, 공짜 술 잘 먹었다 이 쉐키들아! 난 사라질 거다! 메롱 에뤠뤠~~"


그런데...

난 여전히 호프집 한가운데 있다.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