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벤지

by 호운

번쩍-!

눈을 떴을 때,

나는 익숙한 골목 입구에 서 있었다.

'여기는...'

저 멀리 담배를 피우며

벽에 기댄 누군가가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익숙한 뒷모습.


"야, 편의점 가서 맥주 좀 사와. 빨리."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거... 또?'

정확히 지난번과 똑같은 순간이었다.

준영이 형과 20살 관희가 마주한, 바로 그 장면.

"형... 지금 집에 가야 해서..."

"10분이면 되잖아. 왜 이래?"

준영이 형이 젊은 내 어깨를 툭툭 치며 웃었다.


지난번에는 여기서 바로 뛰쳐나갔다가

선빵 맞고 KO 당했었다.

'이번엔 다르다.'


나는 심호흡을 하며 침착하게 다가갔다.

준영이 형이 다시 젊은 관희 어깨에 손을

올리려는 순간,

나는 정확한 타이밍에 끼어들었다.


"준영아."

준영이 형이 고개를 돌렸다.

"누구세요?"

"관희 그만 괴롭히고 꺼져."

"뭐? 이 아저씨가..."


준영이 형이 거침없이 다가오는 순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지난번에 당한 그 주먹이

어느 각도에서 날아오는지.

살짝 고개를 틀었다.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어?"

준영이 형이 당황하는 찰나, 나는 움직였다.

손목을 잡아채고, 몸을 낮추고, 체중을 실었다.

플라잉 암바!

이번엔 진짜였다.

"으악! 팔뿌러져요!!!"

준영이 형이 바닥에 깔려 비명을 질렀다.

"준영아, 지난번엔 내가 봐줬어.

이번엔 안 봐준다."

"뭐, 뭔 소리... 으악!"

팔에 힘을 조금 더 주자

준영이 형이 바닥을 탁탁 쳤다.

"알겠어요! 잘못했어요!"

나는 천천히 팔을 놓아주었다.

준영이 형은 부들부들 떨리는 팔을 부여잡으며

일어나더니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쳤다.


"저, 저기..."

뒤에서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20살 관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준영이 형 이름을 아세요?"

"아, 그게..."

나는 잠시 말을 고르다가 대답했다.

"난 다 알아. 너에 대한 건."

"아... 그렇군요."

젊은 나는 이 사람은 뭘까 하는 표정이었다.

당연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한 상황이었다.


"저기, 음료수라도 하나 사줘라.

어차피 저 새끼한테 삥 뜯길 거 아니었어?"

"집에 가야 하는데..."

"아! 누가 집에 못 가게 하냐고~! 딱 한 잔만."

젊은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편의점이나 가시죠."


우리는 나란히 골목을 빠져나왔다.

"이름이 뭐예요?"

"관희. 김관희."

"어? 저도 김관희인데요."

"오, 그래? 동명이인이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편의점에 도착해 콜라 한 캔씩 사서 나왔다.

젊은 나는 콜라를 들고 여전히

경계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근데 아저씨, 진짜 누구세요?"

"그냥... 지나가던 사람."

"지나가던 사람이 준영이 형 이름을 알고,

제 이름도 알아요?"

'역시 20살 때부터 눈치는 빨랐구나.'


나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이거 봐."

"오, 이거 뭐예요?"

"이건 미래에서 온 스마트폰이라는 거야."

젊은 나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무슨 영화 얘기예요?"

"진짜야. 봐봐."


나는 갤러리를 열어 사진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먼저 주희와의 결혼식 사진.

젊은 나의 눈이 커졌다.

"와, 화질 쩐다. 이게... 뭐예요?"

"미래에는 이런 걸 그냥 다 가지고 다녀.

내 결혼식. 아니, 네 결혼식 사진이야."

"말도 안 돼요. 저 여자친구도 없는데..."

"주희라고 해. 10년 뒤에 만나게 될 거야."

"그럼 저 주희라는 분 만나기 전 10년 동안은

저 여친 또 없나요?"

'정말 나 다운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이 자식아, 네가 알아서 해 그건!"

'나의 화려한 과거사를 말해주고 싶었지만

이 시절의 나는 찐따 그 자체였으니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다음은 부모님 사진. 나이 든 부모님이 활짝 웃고 있는 사진.

"이건... 우리 엄마 아빠?"

젊은 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응. 20년 뒤 모습이야."

"...장난치시는 거죠? 근데 진짜 우리 엄마 아빠 같긴 한데."

"장난 아니야. 나는 20년 뒤에서 온 너, 김관희야. 40살."


젊은 나는 콜라를 든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증거가 더 필요해?"

나는 갤러리를 계속 넘겼다. 우리 집 사진,

동네 풍경, 그리고...

"도어락 번호 4292 맞지?"

젊은 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어떻게...집 비번까지 아시는거죠?!"

"나 자세히 봐봐. 너 닮지 않았어?

내가 살이쪄서 그러지 잘 봐보라구!"

젊은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믿기 힘들겠지만, 나는 정말 미래에서 왔어.

그리고 너한테 부탁할 게 있어."

"...무슨 부탁이요?"

"네 정자가 필요해."

"네?!"


젊은 나가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이거 신종 도를 아십니까 인건가요?!"

"아니 잠깐! 오해야!"

"이거 미래 어쩌구 저쩌구 사진은 어디서

합성해 온 거 아녜요?!"

"들어봐! 설명할게!"

젊은 나는 이미 뛰기, 아니 도망치기 시작했다.

나는 황급히 뒤를 쫓았다.

'아 씨, 이것도 쉽지 않네.'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