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자

by 호운

젊은 관희가 도망치는 뒷모습이 점점 멀어졌다.

'아 씨...'


20년 전의 나는 빨랐다.

'젠장, 체력이...'

더 이상 따라잡을 수 없었다.

숨을 헐떡이며 무릎에 손을 짚었다.


'설득은 실패했지만... 어디로 갈지는 안다.'

20살의 내가 갈 곳은 뻔했다. 집.


나는 서둘러 지름길로

집에 먼저 달려가서 기다리기로 했다.


계단에 몸을 숨기고 기다렸다.

얼마 후, 예상대로 젊은 관희가

터덜터덜 걸어오는 게 보였다.

"야."


젊은 나는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어, 어떻게 여기를...?"

"내가 너잖아. 네가 어디 가는지 다 알지."


젊은 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 그만 좀 따라다니세요!"

"이야기 좀 더 하자."

"싫어요! 무서워요!"


젊은 나는 고개를 흔들며 뒷걸음질 쳤다.

"내일. 내일 다시 얘기해요.

지금은 머리가 너무 복잡해요."

"그래도..."

"제발요!"


젊은 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녀석의 눈가가 붉어져 있었다.

'너무 밀어붙이면 안 되겠구나.'

나는 한숨을 쉬며 물러섰다.


"알았어. 내일 보자. 어디서 볼까?"

"꼭 봐야 돼요?"

"나 진짜 나쁜 사람 아냐.

내일은 나랑 시간 좀 보내보자고. 응?"

"...생각해볼게요."


젊은 나는 대충 둘러대고는

황급히 집으로 들어갔다.

현관문이 쾅-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멍하니 그 문을 바라보다가 발길을 돌렸다.


'그래, 여유 있게 하자. 어차피 내 손바닥 안이다.'

그런데 문득 현실이 떠올랐다.

'...오늘은 어디서 잔담?'

주머니를 뒤적여봤다. 역시나 텅 비어있었다.


마침 저번에 왔을 때 호프집이 생각났다.

'이번엔 결과를 확실히 알고 있으니

돈 좀 벌어볼까?'

나는 휘파람을 불며 호프집으로 향했다.


"사장님, 자리 하나요!"

"혼자세요?"

아주머니가 나를 맞았다. 나를 모르는 눈치였다.


'그래, 여긴 아직 저번 일이 일어나기 전이니까.'

"네. 근데 저기... 이기면 공짜죠?"

"네, 그렇죠~"

공짜로 먹을 수 없다는 것은

지난번 경험으로 뼈저리게 배웠다.

나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저하고 내기하실 분 없나요?"

주변 테이블 사람들이 고개를 돌렸다.

"내기요?"

"네. 저는 우리나라가 진다에 만 원 걸겠습니다."

몇몇 아저씨들이 수군거렸다.


"에이, 그래도 이번엔 이기지 않을까요?"

"그럼 아저씨는 이긴다에 거세요.

오천 원만 거셔도 됩니다."

"오, 정말요? 그럼 한번 해보죠!"


한 아저씨가 관심을 보이자

점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나도!"

"나도 껴줘요!"

"뭐, 저 빼고 여기 스물세 분이나

이긴다에 거셨네요. 좋아요, 한번 해봅시다!"

'후훗, 애송이들. 캬캬,

돈 따서 젊은 나자신에게

맛있는것좀 사줘야겠다.'


이번엔 기본 안주와 맥주 한 잔만 시켰다.

돈을 내야 할 것이기 때문에...


킥오프 휘슬이 울렸다.

토고의 선제골이 터졌다.

"아악!"

호프집이 탄식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좋아!"

나도모르게 강냉이를

한 움큼 입에 넣으며 소리쳤다.

아저씨들이 나를 매국노 보듯 노려봤다.


어색한 눈웃음으로 상황을 무마하고

여유롭게 맥주를 들이켰다.

'이대로만 가면 돼. 돈 벌기 쉽구만.'


그런데.

후반 20분.

이천수의 발끝에서 공이 골대를 흔들었다.

"우와아아아!!!"

호프집이 폭발했다.

나는 강냉이를 든 채 굳어버렸다.


"...어?"

그리고 5분 뒤.

안정환의 추가골.

"골-! 골-! 골-!"

사람들이 서로 얼싸안고 환호했다.

최종 스코어: 대한민국 2 - 1 토고


'...이게 왜 바뀐 거야. 분명히 졌었는데.'

'...X됐다.'

호프집 안은 열광의 도가니였다.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사람들은 승리에 취해 아직

내기 따위는 까맣게 잊은 것 같았다.


'이 틈에 도망쳐야겠다.'

슬금슬금 자연스럽게 빠져나가려던 찰나.

"아저씨, 어디 가요!"

걸려버렸다.

"저 양반 지금 도망가는 거 아냐?"

최대한 자연스럽게 대처했다.


"도망이라뇨~ 화장실 좀 가려고요. 하하."

"화장실 안쪽에 있어요."

눈치 없는 사장님이 훼방을 놓았다.

"아, 그런가요? 하하하..."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화장실로 향했다.

'일단 가서 생각하자.'

생각이고 자시고, 사실 나에게 정답은 하나였다.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화장실에서 나와 슬쩍 주변을 살폈다.

사람들은 여전히 승리의 기쁨에 취해 있었다.


"대~한민국!"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나는 틈을 노려 뒷문 쪽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아무도 나를 눈치채지 못했다.

뒷문 손잡이를 조심스럽게 잡았다.

드르륵.

뒷문을 열고 나왔다.


느끼한 치킨기름냄새가 코끝을 맴돌았다.

'휴, 성공...'

한숨을 내쉬며 발걸음을 옮기려던 순간,

담벼락 그늘에서 누군가 움직였다.


파란 양복 재킷에

형광 초록 넥타이를 맨 할아버지...

손목에는 뭔가 번쩍이는

멋드러진 스마트워치 같은것을 차고 있었다.

'...저 패션은 뭐야.'


"혹시 시간 여행자세요?"

할아버지가 물었다.

삐- 삐- 삐-

레이더 소리 같은 효과음이 점점 커지는 게 느껴졌다.

할아버지 손목의 시계같은 것에서 나는 소리였다.


"당신이군요. 관희 형님은 어떻게 하셨죠?"

상황을 미루어 짐작해봤을 때,

이 사람도 미래에서 온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일단 생각나는 대로 둘러댔다.

"뭘 어떻게 했다는 게예요, 제가? 이상한 소리하시네요."


그러자 할아버지는 짚고있던

지팡이를 번쩍 들고 고함을 치며 나에게 달려왔다.

"관희 형님을 어떻게 한 거냐고!!!!!!!!!!!"


꽈직-!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