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국

by 호운

꽈직-

순간적으로 몸이 먼저 반응했던 것 같았다.

블랙벨트의 본능이란 이런 건가.


할아버지가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아이고 허리야..."

할아버지가 신음을 내뱉으며 바닥을 짚었다.

나는 황급히 쪼그려 앉았다.

"죄,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

"이 사람이... 갑자기 업어치기를 하다니!"

할아버지가 부들부들 떨리는 팔로 나를 가리켰다.


"일단 일어나세요."

내가 팔을 잡아 부축하자 할아버지가 끙끙대며 겨우 몸을 일으켰다.

"젊은 놈들이 다 어디 갔는지, 우리 같은 노인네가 현장까지 나와야 하다니."

할아버지가 허리를 두드리며 투덜댔다.

'고령화 사회가 진짜 나중에 문제가

되기는 하는구나...'


"근데 관희 형님을 어떻게 했냐고 했잖아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80살 김관희. 우리 연구소 베타테스터야.

내 오랜 동료."

"분명히 2026년으로 테스트 여행을 갔는데

로그에 2006년이 두 번이나 기록되어 있더군.

물론 움직일 수는 있어.

근데 정작 형님은 보이지 않고 당신만

여기 있잖아."


"아, 그게..."

"형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아니요, 형님이 저를 보낸 거예요. 직접."


할아버지의 눈썹이 꿈틀 했다.

"... 형님이?"

"네. 사정이 있어요."

"무슨 사정?"


나는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들으시면 좀 길어요."


나는 처음부터 차근차근 이야기했다.

난임 판정, 주희의 주사 자국, 그리고 80살의 나를 만난 것까지.

할아버지는 중간에 끼어들지 않았다.

팔짱을 낀 채 조용히 듣고 있었는데,

주희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리고 80살 관희 형님 이야기가 나오자

"이 형님이 진짜..."

나지막하게 혼잣말을 내뱉더니 이내 입을 다물었다.

이야기가 끝났다.


골목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할아버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니까... 당신이 40살 김관희?"

"네."

"그 말은 즉, 나중에 80살이 되면..."

"네, 저예요."

할아버지의 눈이 커졌다.

그러더니 갑자기 자세를 바로잡았다.


"형님!!!!"

"네?"

"형님이 그런 사정이 있으셨군요!!!!

진작에 말씀해 주시지!!!"

"아니 왜 갑자기..."

"제가 돕겠습니다, 형님!

형님 일이 곧 제 일인데 당연히 도와야죠!"


할아버지가 눈을 반짝이며 내 손을 덥석 잡았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방금 전 나를 지팡이로 후리려던 사람이 맞나?'

"근데... 어떻게 도와주실 건데요?"

"그게..."


할아버지가 잠시 머뭇거렸다.

"이 동네가 어떤 동네예요?"

"네?"

"2006년이잖아요. 저 그때 초등학생이었거든요."

"..."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시대를 잘 몰라요."

나는 잠시 할아버지를 바라봤다.

방금 전까지 당당하게 추적자 행세를 하던 사람이었다.


"도와주신다면서요."

"네, 형님 곁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006년도 모르면서요?"

"그래도 뭔가 할 게 있지 않겠습니까!"

"..."


'이게 도움이 되는 건지 짐이 되는 건지.'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골목 밖을 바라봤다.

저 멀리 어딘가에 20살의 내가 있을 것이다.

설득해야 할 사람이 하나 더 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아군이 생긴 건 맞았다.


"이름이 뭐예요?"

"박진국입니다, 형님!"

"... 그래요, 한번 해보자 진국아."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