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안에 자리 잡은 우리 도서관은
사시사철 다양한 이웃들과 함께했다.
점심을 먹고 가벼운 산책을 나설 때면
볕을 쬐는 고양이를 만나는 건 예사였고,
운이 좋은 날엔 날렵한 족제비와
눈이 마주치기도 했다.
콘크리트 숲이라 믿었던 도심 한복판에서도
우리는 수많은 생명과 나란히 숨 쉬고 있었다.
어느 평화로운 오후,
정적만이 흐르던 어린이 자료실에
난데없는 소란이 일었다.
“꺄악! 쥐다!”
누군가의 날카로운 비명에 책장에 머물던 시선들이
일제히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쥐 한 마리가 나타난 것이다.
어른들의 반응은 본능적이고 빨랐다.
비명을 지르며 의자 위로 뛰어 올라가는 사람, 가방을 생존 배낭처럼 끌어안고 문으로
돌진하는 사람, 서로를 붙잡고 몸을 떨며
아수라장을 만드는 풍경이 순식간에 펼쳐졌다.
그런데 그 소란 속에서
기묘하고도 재미난 장면이 목격되었다.
아이들은 달랐다.
쥐를 발견한 아이들은 겁을 먹기는커녕,
보물을 발견한 탐험가처럼 눈을 반짝이며
쥐를 향해 달려갔다.
잡으려는 건지, 구경하려는 건지,
그저 이 작은 생명체의 등장이 신기한 건지.
방금 전까지 일면식도 없던 아이들은
어느새 ‘쥐 추격대’가 되어 하나로 뭉쳤다.
서가 밑으로 쏙 들어간 쥐를 찾으려고
다들 바닥에 엎드려 고개를 처박고 안을 들여다보는 장면은 실로 장관이었다.
열정적인 아이들의 환대에 오히려 당황한 건
쥐 쪽이었을 테다.
어른들의 공포 섞인 비명을 피해 도망치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포위망과 마주쳤으니,
그 쥐 입장에서도
꽤나 혼란스러운 오후였을 것이다.
소동이 가라앉은 뒤, 아이들의 그 반짝이던
눈동자가 잊히지 않았다.
우리의 마음속 벽은 처음부터 쌓여있던 게
아니었다. 쥐가 징그럽다거나 피해야 한다는
학습된 공포
그것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물려준 유산이었다.
아이들은 아직 그 마음의 벽을 쌓는 법을 배우지
않았을 뿐이었다.
처음부터 미운 것은 없다.
우리가 미워하고 기피하는 것들의 대부분은
자라면서 습득된 편견일지도 모른다.
도서관 한편에 나타난 쥐 한 마리가, 두꺼운 인문학
서적보다 더 깊이 있는 가르침을 주고 간 오후였다.
"편견은 학습된 것이다. 누구도 편견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다. 가르침을 받는 것이다."
— 찰스 스윈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