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마문학관, 단단한 바위처럼 새겨진 시간

by 맑고온화한






통영의 바다는 유난히 깊고 차가운 청록빛을 띠고 있었다.

바람에 실린 짠내와 잔잔히 부서지는 파도를 따라, 나는 청마문학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곁에서 딸아이가 조용한 발걸음으로 전시실을 오가며 작품 하나하나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영재원에서 백석의 「꼴뚜기」로 산출물을 발표했던 아이답게, 그 눈빛은 이미 또래보다 한층 깊고 예리했다.



그 온기를 느끼며, 나는 청마 유치환이 평생 탐구했던 ‘생명의 본질’에 대해 천천히 생각을 더듬었다.



청마의 시를 관통하는 것은 결국 강한 ‘의지’였다.

그는 삶의 허무를 피해 가지 않았다. 오히려 그 공허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그 위에 자신의 존재를 세우려 했다.

「깃발」의 소리 없는 아우성은 닿을 수 없는 이상을 향한 끝없는 갈망이었고,

「생명의 서」의 열렬한 고독은 스스로를 단련하며 버텨내는 고요한 투쟁이었다.



그 많은 시 가운데에서도 내 마음을 가장 오래 붙잡은 것은 「바위」였다.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에 물들지 않고

희로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처음에는 그 선언이 지나치게 단호하고 메마르게 느껴졌다.

감정마저 밀어내는 태도가 낯설고 차갑게 다가왔다.



그러나 이순신공원 해안 절벽 앞에 섰을 때, 문장은 완전히 다른 무게로 살아났다.

거칠게 몰아치는 바람과 부서지는 파도 속에서도, 아무 말 없이 제자리를 지키는 바위들.

그 묵직한 침묵이야말로 시인이 끝내 도달하고자 했던 내면의 형상이었다.



공원을 걷는 동안 딸아이와 나눈 짧은 대화가 오래 남는다.



이 바다를 지켜낸 이순신 장군처럼,

그리고 흔들림 없이 서 있는 저 바위처럼,

아이가 삶의 중심을 잃지 않는 단단한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 바람은 청마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요구했던 삶의 태도와 깊이 닮았다.



문학관에서의 사유와 공원의 거친 풍경, 그리고 곁을 함께 걸어준 딸아이.

이 하루는 단순한 관람이 아니라, 마음을 가만히 붙들어보는 시간이었다.



언젠가 아이가 삶의 거센 파도와 마주하게 될 때,

오늘의 바다와 바위가 희미하게라도 떠오른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위대한 개츠비, 허영이 아닌, 준비된 자유를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