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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유 Aug 20. 2021

충청도식 사랑

스무 살 때 어떤 선배가 물었다.


"너 혹시 충청도가 고향이니?"

"아뇨, 어머니가 청주 출신이시긴 한데... 그걸 어떻게..."


주변 사람들이 빵 터졌다. 왜 웃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분명히 서울말을 쓰고 있는데...?


<서울촌놈>에 나온 영상을 보고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울에 사니까 당연히 서울말인 줄 알았는데, '충청도 화법'이 나에게 스며들어 있었다. 게다가 충청도식 약속 정하기와 성격까지 있다니! 이범수가 말한 모든 특징을 우리 엄마와 할머니가 가지고 있다.


특히 절대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해주지 않고, 물어봐도 끝끝내 대답하지 않으며, 마지못해 수락하긴 하는데 그게 사실은 물어봐주길 기다렸다는 것인지, 아니면 마지못해 수락하는 것인지, 쓰면서도 알쏭달쏭한 청주인들의 마음...



나는 머릿속 습관이 있다. 상대방이 말하는 내용보다 그 속에 숨은 속마음을 읽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 습관은 내가 심리상담사가 되도록 만들어 주기도 했다. 그리고 청주 사투리를 보다가 한 가지를 깨달았다.


나는 엄마의 진심이 궁금했던 것 같아.


엄마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도대체'라는 표현을 빼놓을 수 없다. 나는 충청도 말투는 가지고 있지만, 충청도 성격까지 물려받지는 못해서 아주 어릴 때부터 엄마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도대체 왜' 저렇게 빙빙 돌려서 표현할까?

'도대체 왜' 솔직하게 말하지 못할까?

'도대체 왜' 저렇게까지 자신을 신경 쓰지 말라고 할까?

'도대체 왜' 저렇게까지 참고 살까?


심리상담사가 된 이후에도 종종 궁금했던 것이 있는데, '나는 왜 이렇게 인간의 마음에 호기심이 강할까?'였다. ‘그게 달란트라는 걸까? 적성인가?' 돌이켜보니 절대 말하지 않는 엄마의 진심이 궁금해서 시작된 습관이 마음공부로 이어졌던 게 아닐까 싶다.


나는 이제야 엄마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심리상담 공부 후에도 여러 수련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그제야 속이 시원해졌다. 아주 어릴 때부터 십수 년을 가지고 살던 묵은 체증이 내려갔다. 개운하다.


(TMI: MBTI가 뼛속까지 T 사고형인 나는, 특히 Ti 내향사고가 주기능인데, 무언가 모호했던 것의 원리를 이해할 때마다 체증이 내려가고, 속이 개운해지며, 마음이 충전된다.)


호기심과 답답함이라는 안개를 거두고 나니 비로소 ‘청주식 엄마’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논리적으로 옳은 표현’으로 바꾸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니 더 이상 엄마의 화법이 답답하지 않다.


<우리 엄마가 있는 그대로 온전한 존재였어.>

이건 상담 공부를 하는 내내 숙제였다. 이 문장을 과연 받아들일 수 있을까?’ 강하게 의문을 가졌었다. 많이 늦었지만 이제야 엄마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내가 세 번이고 열 번이고 물어봐 줄 수 있고, 때로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청주 할머니댁은 어떤 식물이든 무럭무럭 자란다.


사실 어릴 땐 이성적인 엄마를 갖고 싶었다. 모호하고, 수동적인 엄마 말고, 똑 부러진 엄마를 갖고 싶었다. 실수를 해도 대충 괜찮다고 하고, 허용해주는 거 말고. 엄마가 괜찮다고 했는데, 친구들한테 놀림받게 만드는 그런 엄마 말고, 나에게 이끌려 다니는 약한 엄마 말고.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도록 올바른 길을 제시해주는 누군가가 있기를 바랐다. 의지하고 배울 수 있는 대상. 더 멋있고 당당한 엄마를 갖고 싶었다. 그것은 나에게 결핍이었고 좌절된 의존욕구였기에, 내 자신을 그런 존재로 만드느라 어지간히 애를 썼다.


살다 보니 이성적이지 않은 것들 중에 얼마나 소중한 게 많은지 절실히 배워간다. 나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사람은 많지만, 화내고, 성질부리고, 실패하고, 열등감에 사로잡힌 순간들의 내 모습까지 받아줄 사람은 많지 않다. 가족이지만 가족에게 그 모습을 마음 편히 드러낼 수 있었다는 것도 복이었다.


이미 큰 사랑 속에 살고 있었음을 모르고, 한평생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 ‘쓸모 있는 사람’ ‘가치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얼마나 아등바등 살아왔는가.


내가 가끔 쉬운 일을 잘 해내지 못할 때, 친한 사람에게만 하는 말이 있다.


나 진짜 쓸모없는 사람이야~
나랑 친구 해줘서 고마워.


자존감이 낮아서 하는 부정적 말이 아니라, 나는 가끔은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는 순간이 있다. 그래도 우린 좋은 관계를 맺어 나갈 거고, 곁에 있어줘서 고맙다는 말이다.


명상을 하다가 가끔 나도 스스로가 낯설 만큼 따뜻하고 뭉클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내 안에 왜 이렇게 큰 사랑이 들어있지? 그건 아마도 상대를 판단하지 않고, 속에 꽁꽁 눌러두었다 살포시 전해주는 청주식 사랑이 들어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어떤 마음은 표현되지 못하는 시간을 견디면서 농밀해지니 말이다. 내일은 청주에 내려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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