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독실한 무교다. 종교도 없지만, 윗사람에 대한 존경도 모르고 자랐다. 오히려 약간의 반항심을 순종적인 미소 속에 숨기고 지내왔다. 나에게 윗사람, 선생님, 교수님, 팀장님이란 그저 사회적인 예를 갖춰 대할 뿐, 진정으로 윗사람에 대한 존경이나 배움의 자세를 가져본 적은 없었다. 윗사람도 아랫사람도 내겐 그저 다 같은 사람일 뿐이었다. 평등을 가장한 위아래 없는 태도로 살아왔다. 그랬던 나에게 '머리를 조아려하는 인사'는 낯설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어느 뜨거운 여름날. 예기치 못한 어떤 것이 몸 안에서 발견되어 작은 수술을 하고 난 뒤. 몸도 마음도 회복이 필요했던 시기였다. 명상을 배우고 싶어 불교의 교육기관인 '선원'에 갔다. 불교 신자가 아니어도 누구나 들을 수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그래도 부처님께 예를 갖추기 위한 몇 가지 규칙을 안내받았고, 그 시작은 삼배였다.
삼배를 할 때는 이마와 두 손, 팔꿈치, 두 무릎이 모두 바닥에 닿아야 한다. 나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한껏 숙였다. 눈 앞에 바닥이 가까워졌다. 생각보다 허리를 많이 숙여야 했다. 이마가 땅에 닿았다. 순간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처음 드는 감정은 ‘수치심’이었다. 이마가 바닥에 닿도록 인사를 하다니. 내 이마가 바닥에 닿은 것도 난생처음인 것 같았다. 우당탕 넘어지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나를 낮추어가며 누군가에게 인사해 본 경험이 없었음을 깨달았다. 자존심이 상했다. 나를 한껏 낮추어 가르침을 구하는 자세라니. 난 그냥 명상이 뭔지 배우러 온 거라고. 순간, 그런 나 자신을 알아차렸다. 자존심이 상하면서 괜히 반항심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어린아이 같은 내 마음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그다음에는 놀랍게도 '높이는 마음'이 들었다. 이 감정을 어떤 단어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존경심과 비슷한데 '나보다 높고 큰 존재가 내 앞에 있음을 인정합니다.'라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종교를 가진 사람이라면 잘 알 것 같은 감정이지만, 내 앞에 엄청 큰 존재가 있다는 느낌은 나에겐 너무도 생소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안도감과 함께 뭉클한 감동' 이 찾아왔다. 그것이 감동인지 바로 알아차리지는 못했었다. 그냥 갑자기 울컥하며 눈물이 핑 돌았다. '갑자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생소한 감정들이 연달아 지나가는 통에 나의 첫 삼배는 분주했다. 자리에 앉아 가만히 마음을 느껴보았다. 안도감, 편안함, 뭉클함. 그런 감정들이 찬찬히 느껴졌다.
울다가, 편안했다가, 그렇게 남은 명상 시간을 보내고 난 후 내 감정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의지할 누군가가 없어서 나 자신을 강하게 키우기로 마음먹었었다. 어린 내 눈에 부모님은 어딘가 늘 삶이 힘겨워보였고, 동생은 내가 지켜줘야 한단다. (별로 지켜준 적은 없다.)
그러다 보니 힘든 일은 삼켰고, 뭐든 혼자서 고민하고, 해결하고, 결정을 내려왔다. 결과적으로 남들이 보기엔 혼자서 척척 해내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지만. 나만 볼 수 있는 내면에는 나약하고 쓰러질 것 같던 과정들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그렇게 나는 겉보기엔 그럴듯하나 속은 텅 비어있는 사람으로 자라났고, 쓰러지지 않기 위해, 나약한 내면을 들키지 않으려 애를 쓰며 살아왔다.
서른 살이 넘어서야 비로소 나는 의지하는 법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심리상담을 받으며 나의 의존 욕구를 마주하고, 애쓰던 나를 위로하고 나서야 조금씩 노력했다. 힘들 때 징징대고, 못할 것 같다고 말하고, 나약한 과정을 상담 선생님과 나누었다. 다음엔 베프 친구와. 그다음엔 더 많은 사람들과.
그런 나에게 부처님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나보다 큰 존재를 인정하며, 나를 작은 존재로서 인정하는 것은
어릴 때부터 의지할 곳 없던 어린 나의 반항심이 자존심 상한다며 습관적으로 나타나는 일이었고, 그다음 성인이 된 내가 그래도 괜찮다고, 너보다 큰 사람도 있고, 그에게 의지할 수 있다고, 의지하고 싶은 마음 있는 거 다 안다고 위로해주는 일이었던 것이다.
강해지고 싶을수록 약함을 두려워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멘탈이 강해지고 싶다고 말한다. 강한 정신력, 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마음이 솟구칠수록 약해선 안된다는 두려움도 커진다. '강해야만 해'라는 말은 곧 '약해선 안돼'란 말과 같고, 결과적으로 약한 내 모습을 마주할 용기가 점점 더 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이다. 사람은 그렇게 늘 강한 존재가 아니다. 때로는 좌절하고, 무기력하고, 포기하고 싶어 하며, 어린아이처럼 숨어서 울고 싶기도 하다. 스스로에게 그런 약한 모습을 허락하는 사람이야말로 실컷 약해지고, 실컷 무너지고, 무너짐 이후에 낮은 계단들을 차근차근 밟을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도 누군가에게 기대고 안락함을 느끼고, 이후에는 다시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는 이가 되어줄 수 있다.
머리를 조아리고 나보다 높고 큰 존재(그것이 신이든 자연이든)가 있음을 받아들인 순간. 나는 약해져도 괜찮았다. 힘든 감정을 마음껏 느껴도 괜찮았다. 그것은 울컥하는 참아왔던 서러움이기도 했고, 드디어 쉴 곳을 찾은 안도감이기도 했다.
Vulnerability is the best measure of courage.
취약해질 수 있는 능력이야 말로 가장 좋은 용기의 척도이다.
-Brene Brown
*Ted 강연 'The power of vulnerability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