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 한 번만 잘 쉬어도 충분하다

by 온유


정신없이 바쁠 땐 아프지도 않다.


계획적이기보다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나는, 많은 일이 겹치면 일상의 긴장도가 높아진다. 혹여나 충동성 때문에 준비하던 무언가를 시간 내에 끝내지 못할까 봐 그렇다. 결국 그 무언가가 끝날 때까지 긴장된 상태를 잘 내려놓지 못한다. 그렇게 무언가를 마치고 나면 맥이 탁 풀려 어딘가 아프곤 한다.


대학원을 다니며 심리상담 수련을 하고, 논문 준비와 알바까지 하던 바쁜 때가 있었다. 여러 일을 동시에 한다는 건 물리적인 시간의 부족함보다는 정신적 피로가 더 큰 것 같다. 시간이 없다기보다 정신이 없는 나날들이었다.


그러던 중 약속된 일이 캔슬되어 한낮에 시간이 떠 버렸다. 이미 강남구청역 근처에 와서 대기 중이던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탔다가 봉은사에서 충동적으로 내렸다. 아무래도 붕 뜬 시간에 긴장이 풀린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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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끌시끌한 코엑스를 건너 작은 골목에 들어서니 다른 세상처럼 봉은사가 나타났다. 처음 와 본 터라 낯설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두리번거렸다. 그중 신발이 많이 놓인 곳이 눈에 띄었다. 가까이 가 보니 불상 앞에서 사람들이 조용히 앉아 명상을 하거나 책을 펼쳐 공부하고 있었다. 나도 조심스럽게 들어가 삼배를 하고 바람이 드는 문턱 근처에 앉았다.


가만히 앉아 시끄러운 내 머릿속을 들여다봤다. 해야 하는 일들, 하고 싶은 일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잡다한 생각들. 분주했다. 생각들을 내려놓자 감정이 올라왔다. 오늘 일정이 취소되어 허탈하기도 하고 실망스럽기도 한 마음. 아, 괜찮다고,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구나. 마음을 들여다 보지 않았던 거구나. 옷장에서 옷을 하나씩 꺼내 곱게 개어 넣듯이, 마음속의 떠오르는 것들을 소중히 바라보고 정리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앉아있지 않았는데도 마음이 깨끗하게 청소된 듯했다. 홀가분하기도 했고, 발걸음이 가벼워진 것 같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지금의 긴장감을 잠시 내려놓고 스트레스를 털 수 있었다. 서광 스님의 자기 연민 명상 강연에서 들었던 말이 기억난다.


호흡 한 번만 잘 쉬어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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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훈련하려니, 처음엔 명상이 어렵게 느껴졌다. 하지만 알고 나면 명상으로 마음을 청소하고 들여다보는 것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저 호흡 한 번 잘 쉬면, 아주 잠깐의 시간 동안에도 복잡한 생각을 내려놓고, 머릿속을 비워낼 수 있다.


요즘도 가끔 바쁜 일이 있거나, 긴장되는 순간에는 크게 한 번의 숨을 집중해서 쉰다. 눈을 감고 공기가 수욱 코를 따라 목, 가슴, 배까지 따라가는 길, 그리고 그 숨이 내 몸에서 완전히 빠져나가기까지를 집중해서 바라본다. 한 번의 호흡만 잘 쉬어도 손끝 발끝까지 이완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특히 공황장애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다. 내가 이렇게 되기까지 나를 엄청나게 몰아붙였다고. 얼마나 후회하는지 모른다. 과거로 돌아가면 하루만 숨 좀 돌리라고, 채찍질 좀 그만하라고 말하고 싶다고 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함께 안타깝고 속상하다. 힐링이라는 게 꼭 해외여행을 가거나 엄청난 시간 여유가 있어야 하는 일이 아니다. 생각보다 가벼운 먼지를 털어내는 일이다. 다만 그것이 오랜 시간 쌓이고 막혀서 마음의 병을 만들기도 한다. 바쁘고 숨이 찰 때, 한 번의 호흡을 잘 쉬어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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